전국 주요 생활숙박시설(레지던스)에서 분양 계약자와 건설업체 간 법적 분쟁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가 오피스텔 등으로 용도변경하지 않고 주거 목적으로 사용하는 레지던스를 불법으로 간주하겠다고 칼을 빼든 게 발단이 됐다. 실거주가 가능하다는 말만 믿고 분양받았으니, 시행·시공사가 책임지라는 게 레지던스 계약자의 주장이다.

최근 건설사 손을 들어준 법원 판결이 나와 관심을 끈다. 하지만 집단소송이 확산할 조짐을 보이면서 ‘미입주 대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레지던스 소송전 확산…"미입주 대란 터지나"

법원 “허위 사실 고지 아니야”

15일 업계에 따르면 인천지방법원은 지난달 인천의 한 레지던스 분양 계약자가 시행사 등을 상대로 제기한 ‘계약금반환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주거시설 목적으로 레지던스를 분양받은 소유주가 낸 소송이다. 오피스텔로 용도를 바꾸지 않고 레지던스를 주거시설로 사용하면 내년부터 매년 이행강제금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주차장과 복도 폭 등 규제로 용도변경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원고는 “분양 담당 직원이 레지던스에 실거주가 가능하다고 했다”며 “고의로 계약자를 속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분양계약서에 레지던스가 비주택 상품인 점을 명시하고, 일반 주거용 건축물과의 차이점을 적시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무엇보다 법원은 “거주 또는 주거 용도로 임대하는 게 가능하다고 홍보했더라도 다소의 과장을 넘어서 허위 사실 고지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021년 건축법 시행령 개정 전까지 레지던스가 사실상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주택 용도로 사용한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법원은 “(건축법) 시행령이 개정됐다 하더라도 레지던스를 장기로 임대하는 것이 가능하고, 상당 기간 거주하는 자는 전입신고도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이를 두고 “숙박업 등록을 한 뒤 장기 투숙하는 형태로 본인이 살거나 임대를 놓는 게 가능하다는 뜻”이라며 “일종의 ‘셀프 장기 숙박 계약’ 형태로 집주인이 본인의 레지던스에 머무를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레지던스 30실 이상을 모아 법인을 만들거나 위탁관리업체에 맡긴 뒤, 해당 업체에 사용료를 내고 숙박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14곳에서 소송 진행 중

하지만 앞으로 법적 분쟁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레지던스연합회에 따르면 전국 14개 레지던스에서 사기 분양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다. 경기 남양주와 안산, 부산 등 4개 단지에서도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과거엔 분양계약자 한두 명이 소송을 냈는데, 올 들어선 대단지에서 집단소송이 제기되고 있는 게 특징이다. 서울 강서구 ‘마곡롯데캐슬 르웨스트’, 중구 ‘세운푸르지오그래비티’, 경기 안산 ‘힐스테이트시화호라군인테라스’, 구리 ‘구리더리브드웰’ 등의 원고는 100명이 넘는다.

송민경 한국레지던스연합회장은 “그동안 분양 계약자가 오피스텔로 용도를 바꾸는 데 집중하느라 시행사와 척지지 않으려고 했다”며 “올해부터 집단소송이 제기된 가운데 분양 측의 책임을 증빙할 녹취록 등 자료가 풍부하다”고 말했다. 장기 투숙 형태로도 임대나 사실상 거주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세대출 등이 안 되면 임차인을 구하기 어렵고, 위탁사의 갑질 피해 사례도 있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하반기 입주가 예정된 마곡롯데캐슬 르웨스트를 비롯해 주요 단지에서 집들이 시점이 속속 다가오고 있지만, 그 전에 최종 결론이 나기 쉽지 않다. 입주 예정자가 잔금을 미납해 건설사의 자금 계획이 꼬이고, 금융권마저 타격을 입는 등 연쇄 파장이 우려된다. 애초에 주거 용도를 염두에 둔 대형 면적 레지던스일수록 준주택 전환 목소리가 크다. 등록사업자 신고 등 조건부로 레지던스를 임대주택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