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이 지난 12일 제주 서귀포시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에만 있는 규제를 하루빨리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경협 제공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이 지난 12일 제주 서귀포시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에만 있는 규제를 하루빨리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경협 제공
“한국 기업만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뛰는 형국입니다.”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은 지난 12일 제주 서귀포시에서 연 ‘2024 한경협 CEO 제주하계포럼’ 기자간담회에서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우리나라 규제만 과거에 머물러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류 회장은 한국 경제의 근본적 문제를 ‘올드’(OLD)라는 용어로 정의했다. 올드는 △낡은 제도(outdated) △낮은 출산율(low) △정체된 산업구조(dormant·활동을 중단한)의 알파벳 앞 글자를 딴 말이다.

류 회장은 글로벌 스탠더드와 맞지 않는 규제로 정부가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을 꼽았다. 이사(경영진)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다. 류 회장은 “제도 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인 시대인 만큼 정부는 제도를 만들 때 현상에 집착하다 본질을 놓치면 안 된다”며 “글로벌 무대에서 격전을 치르고 있는 우리 기업들이 뒤처지지 않도록 제도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글로벌 사례를 참고해 유통기한이 지난 규제는 하루빨리 업데이트하거나 없애야 한다”고 덧붙였다.

낮은 출산율에 대해 류 회장은 “인구 유지를 위해 필리핀 등지에서 이민을 받는 것도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입양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도 있다”고 했다. 정체된 산업 구조와 관련해선 “2000년과 2023년 10대 수출 품목을 보면 새로 포함된 건 세 개에 불과하다”며 “기업과 기업인을 존중하는 풍토를 조성해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젊은 경영인이 많이 배출돼야 새 먹거리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최고 ‘미국통’ 경제인으로 꼽히는 그는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돼도 한·미 관계는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자국 기업을 보호하려는 경향이 있는 미국 민주당과 달리 공화당은 미국에 투자한 기업을 미국 기업과 똑같이 대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트럼프 후보가 더 나을 수도 있다”며 “우리 기업들이 노조가 없는 주에 주로 투자한 것도 트럼프 후보와 (궁합이) 더 맞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류 회장은 다음달 22일 한경협 회장 취임 1주년을 맞는 데 대해 “평생 이렇게 열심히 한 적이 없다”며 “본업(풍산그룹)에서 이렇게 했으면 돈을 더 많이 벌었을 것”이라며 웃었다. 한경협의 전신인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리면서 위기를 맞았다. 류 회장이 취임하면서 4대 그룹(삼성·SK·현대자동차·LG)이 재가입하는 등 협회의 위상을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귀포=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