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자산운용 본사. 사진=신민경 기자
삼성자산운용 본사. 사진=신민경 기자
중소형 연기금 운용을 위한 1조3000억원 규모 민간 연기금 투자풀(민간풀)이 네 차례 공고 끝에 겨우 주간운용사를 구했다. 삼성자산운용이 단독 응찰하면서다. 2015년 민간풀이 출범한 이후로 주간운용사 자리를 지켜 온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입찰을 끝내 포기했다.

16일 <한경닷컴> 취재에 따르면 삼성자산운용은 이날 중 '민간풀 주간운용사' 신청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이달 초 정량평가(1차) 지원서는 이미 제출한 상태다. 이날 중으로는 투자풀 전담인력과 투자풀 관리계획, 운용보수율 제안 등 정성평가(2차) 지원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경쟁사 없는 단독 응찰인 만큼 삼성자산운용이 그대로 우선협상대상자 계약을 맺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에 따라 삼성자산운용은 오는 9월부터 2028년 8월 말까지 4년 동안 민간풀의 자금을 도맡아서 굴리게 된다.

민간풀로선 무려 네 번의 공고 끝에 유치한 주간운용사다. 민간풀 사무국을 담당하는 한국증권금융은 앞서 지난 5월 주간운용사 선정 공고를 내고 입찰받았지만 아무도 응찰하지 않았다. 이에 한국증권금융은 같은 달 21일 재공고를 냈지만 지원사는 여전히 한 곳도 없었다.

이에 기한을 6월 20일까지로 늘린 세 번째 공고를 냈고 삼성자산운용이 홀로 응찰했다. 한국증권금융은 이달 5일 낸 네 번째 공고를 통해 삼성자산운용을 최종 선정할 방침이다. 국가계약법에선 경쟁이 없는 단독 응찰은 유찰로 규정한다. 다만 재입찰도 유찰되는 경우 단독 응찰한 기업을 낙찰한다.

'민간풀' 제도는 자체적으로 기금을 운용하기 힘든 중소형 연기금을 위해 금융위가 도입한 제도다. 여러 중소형 연기금을 모아 투자풀을 형성한 뒤 특정 운용사 주도 아래 자금을 굴리는 형태다. 민간풀에는 한국증권금융 자금 약 3000억원과 증안펀드 자금 약 1000억원을 비롯해 성균관대·가천대, 연초생산안정화재단 등 30여곳의 자금이 들어가 있다.

민간풀의 현재 기준 운용규모는 1조3000억원 수준으로 당초 기대한 '규모의 경제' 효과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출범 약 2년 만인 2017년 당시 운용규모 1조원을 돌파해 기대를 모았지만, 2024년 올해까지도 '제자리걸음'인 셈이다.
이번 민간연기금투자풀 공고 내 자격요건 완화. 자료=민간연기금풀 제안요청서
이번 민간연기금투자풀 공고 내 자격요건 완화. 자료=민간연기금풀 제안요청서
한투운용이 9년간 이어온 주간사 지위를 자진해서 내려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자체적으로 굴리거나, 별도의 외부위탁운용관리(OCIO)를 도입하는 등 다른 방식으로 자금을 운용하려는 곳들이 속속 이탈하고 있어서다. 민간풀만을 위한 전담인력을 유지하면서도 규모는 늘지 않아 수익성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한투운용 관계자는 "공적 연기금풀 대비 기금 유인책이 크지 않은 가운데, 증안펀드가 들어가 있는 탓에 현상유지만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5.5bp(1bp=0.01%) 수준의 낮은 보수율로 또 한 번 장기간 이끌어 가기엔 장점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앞선 공고에서 지원하지 않은 삼성운용도 민간 투자풀의 참여 요건이 완화하면서 마음을 바꾼 것이다. 공고가 계속 유찰되자 한국증권금융은 최근 자격요건에서 '(민간풀만을 위한) 전담조직 구성' 항목을 뺐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아무리 업계가 힘들다지만 보수가 낮거나 소수의 주간사만 뽑는 입찰에 대해선 증권·운용사들도 신중히 지원하기 시작했다"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 주간사를 뽑는 기금들의 '전담조직' 선호 관행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