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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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음대 교수들은 대부분 서양에서 공부했다. 그래서 음대 수준이 미국과 비슷한데도 학비는 더 저렴하다."

지난달 경기도의 한 음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중국인 관신(Guan Xin·32)씨는 "한국 음대에서 박사 학위 딴 것을 지금도 잘했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관 씨는 북경중앙음악원 학사, 뉴욕 맨해튼 음대 석사 과정을 이수한 뒤 2021년 국내 대학원에 진학했었다.

그는 "미국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가니 직업 찾기가 어려웠다. 공부를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한국 음대가 실력도 좋고, 학비도 더 싸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현재 중국의 한 음대에서 교수로 채용돼 곧 중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K-클래식'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국내 음대 대학원으로 중국인 유학생이 몰리고 있다. 각 음대는 저출생에 따른 정원 부족 사태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일각에선 이러한 흐름이 심화할 경우 국내 클래식계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원의 3분의 2가 中유학생"...국내 음대에 무슨 일이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외국인 유학생 16만6892명 중 중국인은 6만7439명으로 약 40.4%를 차지했다. 이 중 국내 대학·대학원에 재학하는 중국인은 5만9601명에 달한다. 2015년 대비 무려 77.8% 증가한 수치다.

국내 음대 대학원도 중국인 유학생 비율이 부쩍 늘었다. 가령 서울의 A 대학원 음악학부 피아노과는 석·박사 학위 통합 과정을 포함한 총정원 230여명의 약 78%인 180여명이 중국인 유학생이다. 매년 중국 출신 유학생이 늘어나자 해당 학부는 음대인데도 두 개의 중국어 수업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B 대학원 음악학부 피아노과 역시 석사 기준으로 한 학기에 정원 외 선발로 5~6명의 중국인 유학생을 뽑고 있다. 정원 내 선발 인원이 23명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매 학기 입학생 중 21%가량이 중국 출신 학생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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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 관계자는 "중국 국적이면서 부모 중 한 사람이 한국인인 '중국동포' 학생들이 정원 내 선발로 뽑힌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중국인 유학생 수는 더 늘어난다"며 "토픽(한국어능력시험) 기준이 높은 편인데도 매년 중국 출신 지원자가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음대 대학원 교수는 "원래 음대 자체가 학교 입장에선 수익을 제대로 내기 어려운 학과다. 소수 레슨 수업이 많아 한 명의 교수가 담당하는 학생 수가 극도로 적기 때문"이라며 "여기에 국내 전공자도 줄면서 중국인 유학생마저 없으면 학과 운영 비용을 감당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나마 서울권 유명 음대는 중국인 유학생 유치 붐이 일던 10여년 전에도 유학생 수를 확 늘리지 않았지만, 최근엔 학생 수 감소를 버티지 못하고 쿼터를 점차 열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방 음대는 중국인 유학생 유치에 필요한 교육부 인증을 받지 못해 폐과된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국내 전공자 '급감'에 'K-클래식' 열풍 겹쳐

이 같은 현상은 저출생에 따른 국내 음악 전공자 수 급감과 최근 K-클래식이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과거 중국인 유학생들은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편의성 때문에 주로 국내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최근엔 국내 음대 학위가 현지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아 한국 유학을 선택한다는 설명이다.

임미정 한세대 음악학부 교수는 "7~8년 전엔 석사 학위만 소지하고 있는 중국 음대 교수들이 빨리 박사 학위를 따려고 한국 대학원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지금은 국내 클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학과 과정에 거는 기대치가 높아졌다는 게 느껴진다. 적은 비용으로 제대로 실력을 갖추려고 하는 중국 중산층 이상 가정의 대학원생들이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국내 음대 입장에서도 중국인 유학생을 통해 과거보다 줄어든 내국인 정원을 채울 수 있단 점에서 '상부상조'다. 이기정 세종대 음악학부 교수는 "국내 명문 음대라도 학생 수 감소 대책을 발 빠르게 세우지 못한 곳은 최근 중국인 유학생 유치를 점차 확대하고 있는 추세"라며 "게다가 중국인 유학생들 실력이 확 떨어진다고 보기도 어려워 학부 입장에선 이들을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대로면 'C-클래식'에 추격당한다"

일각에서는 지금같이 중국인 유학생 '러시'가 심화할 경우 앞으로 국내 클래식의 위상이 흔들릴 수밖에 없단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 10여년 간 국내 클래식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왔다. 2015년 조성진이 제17회 쇼팽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재작년 열린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선 임윤찬이 금메달과 2개 부문 특별상(청중장, 신작 최고연주상)을 수상한 바 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왼쪽)과 임윤찬. /사진=성남문화재단·반 클라이번 재단 제공
피아니스트 조성진(왼쪽)과 임윤찬. /사진=성남문화재단·반 클라이번 재단 제공
임미정 교수는 "15~20년 전까지 각광받던 일본 클래식계가 다소 주춤하고, 국내 클래식계가 떠오른 것과 유사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며 "중국은 인구가 많은 만큼 클래식 전공자도 많고, 해외 유학을 통해 실력도 빠르게 늘고 있다. 이대로면 향후 중국 클래식이 상당히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임 교수는 "이런 흐름 속에서 이제 K-클래식의 저변을 더 넓힐 필요가 있다"며 "콩쿠르 입선자 배출뿐만 아니라 국내 클래식 문화 인프라를 확충시킬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전문 연주자를 양성하기 위한 국가적 지원 등을 통해 K-클래식의 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