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기억해보며 다가서는 길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던 2000년은 21세기의 시작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바흐 서거 250주년을 기리는 다양한 음악회들이 기획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1998년에서 2003년까지 진행되었던 ‘강충모 바흐 피아노 음악 전곡 시리즈’ 역시 세기의 전환점이자 바흐 서거 250주년이었던 해를 포함하고 있다.

19세기 지휘자이며 음악평론가이기도 했던 한스 폰 뵐로가 ‘피아노 음악의 구약성서’라고 지칭하기도 했던 바흐의 건반음악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제2권의 연주가 이 시리즈의 마지막이었고, 10회에 걸쳐 펼쳐진 이 공연은 그 대단원의 막을 2003년 12월 20일에 내렸다.

이 공연을 기억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 마지막 공연에서 전자악보가 사용되었기 때문인데, 지금은 손가락 하나로, 나아가서는 눈짓만으로도 악보를 넘기는 것이 가능한 전자악보를 처음 마주한 순간이었다. 페이지 터너가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육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위치의 객석에 앉아 연주를 들으며 원격으로 페이지를 넘기던, 조금은 아슬아슬했던 그 기억이 새롭다.
독일 아이제나흐에 복원되어 있는 바흐의 생가 및 박물관 / 사진제공. 필자
독일 아이제나흐에 복원되어 있는 바흐의 생가 및 박물관 / 사진제공. 필자
‘달빛을 받은 푸가’에 대해 정리해보는 길

피터 F. 오스왈드 지음의 도서 <글렌 굴드-피아니즘의 황홀경>에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는 글렌 굴드에 대한 생각을 잘 표현하고 있다. 잠시 인용해 본다.

“내가 헝가리에 있었던 1960년대는 여전히 암흑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1950년대 보다야 나아졌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완전히 고립되어있는 상태였지요. 우리는 시험에 바흐를 연주해야 했는데, 아주 지루하고 무미건조한 방식으로 바흐를 연주하곤 했습니다. 페달을 많이 사용해서 달빛을 받은 푸가 같았죠. 그런데 굴드의 그 녹음이 나타난 겁니다. 아주 생기있고, 독특한 리듬감을 보여주는 연주였지요. 탄력적이면서도 자유분방했어요. 그 연주는 정말 우리를 한순간에 해방시켜주는 거였어요. 나중에 내가 바흐에 큰 관심을 갖게 된 뒤에도 바흐를 달리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었어요. 물론 꼭 굴드를 흉내 내자는 뜻은 아닙니다. 십 대에 이미 나는 굴드가 독특한 예술가이기 때문에 그를 흉내 내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러나 그가 우리에게 바흐를 꼭 19세기식으로 연주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쇼팽이나 리스트를 연주할 때처럼 페달을 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만은 확실합니다.”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 / 사진. ©Nadja Sjöström, 제공. 마스트미디어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 / 사진. ©Nadja Sjöström, 제공. 마스트미디어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는 바흐의 건반 음악을 향한 탐구 및 연주를 계속하며 바흐의 건반 음악에 대한 의견 역시 꾸준히 피력해 왔다. 그리고 아마 바흐 건반 음악 연주에 대한 그의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질문 하나는, “Why should I use pedal in Bach?”이지 않을까 싶다. 오랜 시간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에게 회자하는 ‘구약성서’라는 표현이 일리 있는 것이라면,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그 안의 모든 음표는 명징하게 표현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댐퍼 페달, 소스테누토 페달, 소프트 페달의 흔적이 입혀지는 순간 이미 그 성서 구절의 올바른 의미는 퇴색을 시작하는 것이라, 난 거기에 한 표.

오케스트라 모든 악기 음역대를 품은 거대한 음악적 기계인 피아노를 다시 생각해 보는 일
피아노 건반을 기준으로 표현하는 다양한 악기 및 목소리의 음역 / 사진제공. 필자
피아노 건반을 기준으로 표현하는 다양한 악기 및 목소리의 음역 / 사진제공. 필자
피아노는 양털의 펠트로 둘러싸인 해머가 현을 때려 소리를 내니 타현악기로 분류되고, 지속음이나 현악기들처럼 강약에 변화를 줄 수 없으며, 음들이 분절되어있는 까닭에 음과 음을 이어 소리를 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악기다. 하지만 피아노는 뚜렷한 장점도 가지고 있다. 아마 가장 매력적인 점은 음색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 그 하나이지 않을까. 정돈이 깔끔하게 되어있는 피아노라면, 88개의 건반 모두가 하나의 형용사로 표현할 수 있는 음색을 지니게 된다. ‘따듯한’, ‘두터운’, ‘명징한’, ‘어두운’, ‘밝은’ 등등의 표현이 가능한. 페달의 발달이 이뤄지지 않았고, 건반악기의 종류 역시 다양하게 존재하던 시기인 바로크 시대 그리고 바흐가 작곡하던 그 시절 건반악기의 음색은 어떠했을 것이며, 오늘은 어떤 음색으로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을 들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청자의 즐거운 몫이지 않을까 싶다.

오케스트라 내 악기들이 지닌 모든 음역대를 포함하면서 그 악기들이 각각 발산하는 형형색색의 음색과 음량을 그 소리와 동일한 음가로 균일하게 치환할 수 있는 피아노는, 청자들에게 풍부한 상상력을 제공해 주는 보고와도 같다. 쉬이 바흐의 건반작품 중 하나인 <이탈리안 협주곡>의 예를 들어보자면, 1악장은 솔로 악기와 오케스트라 간의 대화로 상상해 볼 수 있고, 2악장은 선율을 받치는 왼손 위로 아름다운 선율을 뽐내는 목관악기의 솔로를 상상해 볼 수 있고, 3악장은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5번 1악장 속 쳄발로의 카덴차처럼, 부단히 질주하는 건반악기의 아름다움으로 치환해 볼 수도 있다.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제1권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제1권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은 제1권과 제2권으로 나누어져 각각 BWV 846-869, BWV 870-893의 작품번호가 붙여져 있다. 24개의 작품으로 치면 48개의 작품, 하나의 작품을 구성하는 프렐류드와 푸가를 분리해서 번호를 세보자면 96곡. 바흐의 건반작품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에 다가서려면 청자가 자신의 노선을 분명하게 세우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일 것 같다. 피아노의 음색은 명징한 것을 선호하며, 페달의 사용을 최소화하는 피아니스트를 찾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96개의 각 작품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붙여보는 것. 이렇게.

평등하게, 96개의 작품에 이야기를 붙여가는 길 그리고 그중 몇몇

① BWV 877 Fugue가 떠올려준 호수의 풍경

‘강기슭’이란 이름의 객석에 앉아 푸른 달빛이 내린 얼음 호수를 바라본다. 오른손으로 등장하는 여성은 마치 세계 제일의 피겨 스케이터처럼 등장해 서서히 얼음을 지친다. 이윽고, 왼손으로 등장하는 남성은 함께 페어를 이룬다. 흔하고 익숙한 곡선과 속도와 우아함을 보이며, 마치 선녀의 세안을 몰래 바라보는 나무꾼처럼 푸른 빛의 어둠은 그 신비함을 더한다. 손가락에 조금씩 힘을 더하는 피아니스트의 양손은 두 명의 선남선녀에게 구름으로 오르는 사다리를 만들어주고 있다. 아니면 손을 잡고 오르는 나선형의 얼음기둥이어도 좋고. 나도 강기슭이란 객석을 떠나 그 둘과 시선을 맞추기 위해 함께 오른다.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에 다가서는 몇 갈래의 길
이제 ‘구름’이란 객석에 앉았고, 그 아름다운 한 쌍은 이제 얼음 구름을 지치기 시작한다. 슬픈 천국 같은 이 스케이트장에서 둘은 다시 얼음 호수에서의 동작을 반복하고, 하늘 위 밝아진 경기장은 선명해서 오히려 모든 것이 더욱 슬픈 것 같기도. 두 남녀의 안무가 끝나가고, ‘구름이 걷히듯’이란 낯익은 표현처럼 비어버린 허공이 잠시, 두 남녀는 서로 꼭 끼어 안고, 천천히 천천히, 지상으로 내린다.



② Joanna McGregor가 들려주는 짧은 언급과 연주 BWV 862 Fugue

푸가를 시작하는 음에 7음절의 우리말을 붙여주는 일

너-무-나-도-예-뻤-어

위 일곱 음절이 푸가 속에서 음절로, 어절로, 뭉치로, 덩이로, 피아니스트의 언급처럼 그 변주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대화하는지. 그 모습을 즐기며 감탄해 보기.



③ BWV 851 Prelude – 레트로, 거꾸로 걷는 걸음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에 다가서는 몇 갈래의 길
지하철 2호선 이대 입구 전철역의 에스컬레이터. 그 에스컬레이터를 처음 보던 날을 떠올려본다. 45도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기다란 동굴 같던 그 에스컬레이터는 익숙하지 않은 낯선 풍경이었다. 그리고 상향하는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와 내려가는 내 걸음, 그 둘이 함께 시간을 돌고, 추억의 꼭짓점을 향해 목표를 잡은 걸음으로, 지름을 줄이며 원을 걷는다. 높음과 낮음, 모서리와 모난 구석을 가진 추억이 걸음 속에 떠오르고, 이대 입구를 향한 길을 따라 놓였던 수많은 옷집과 분식점들, 대학교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3층 커피집 '심포니'의 추억에 잠시. 가장 빠른 속도가 붙은 걸음으로 꼭짓점에 이르면, 어려운 문제 하나를 풀어낸 듯 마음이 따뜻해진다.



④ BWV 887 Prelude – 슈퍼 마리오를 중계하는 3D 영화관

화면 가장 왼쪽 아래에서 주인공이 등장한다. 점프를 위한 가장 짧은 도약부터 시작한다. 하나-둘-으이챠 으이챠-점프. 화면의 뒷공간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 주인공은 오른쪽으로 걷기 시작한다. 도약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주인공 점프의 높이도 함께 높아지고, 도약이 빨라질수록 체공 시간 역시 함께 길어진다. 화면의 위에서는 금빛 동전들이 무수히 떨어진다. 빙글빙글 돌며 떨어지는 금박이 동전들은 온전히 동그란 모습을 보일 때만 반짝인다. 좌우 그리고 앞뒤의 3차원 공간을 채우며 내려오는 금박이 동전들은 낙하산을 메고 있는 모양이다. 속도를 늦추는 금박이 동전들에서 불쑥 낙하산이 펴진다. 빠른 속도로 직 하강하던 동전들은 마치 폼을 잡는 것처럼 좌우로 앞뒤로 공간을 휘저으며 천천히 하늘거리며 떨어진다. 주인공은 이제 가장 긴 도약과 가장 높은 점프와 가장 긴 체공 시간을 위한 마지막 점프 한 번만이 남았다. 으이챠!! 힘을 내고 가장 공들인 도약으로 가장 빠르게 달음질을 시작한 주인공이 화면을 나르며 금박이 동전의 낙하산을 얻어 매고 천천히, 천천히, 아름답고 부드럽게 착지한다.

▶▶▶[관련 영상] 안젤라 휴이트의 바흐 평균율 클라이버 곡집 제2권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가 2012년 5월 피렌체에서 밝힌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인용해 본다.

“내게 바흐의 음악은 그저 흑백인 게 아니라 오색찬란이 영롱하게 빛난다. 내 상상 속에서 저마다의 조성은 하나의 다른 색상에 대응된다. 각기 24개의 프렐류드와 푸가가 들어 있는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두 권은 그런 공상에 적합하다. 상상해 보자. 처음에는 C장조로 눈처럼 새하얀 무구함(‘하얀’건반들만), 마지막에는 b단조, 죽음의 조성. 첫 권의 b단조 푸가를 <b단조 미사>의 ‘키리에’와 비교해 보자. 그건 칠흑처럼 새카만 음악이다. 이들 양극단 사이에 중간색조들이 자리한다. 노랑, 오렌지, 황갈색, 파랑, 녹색, 핑크와 빨강(A플랫장조부터 a단조까지), 두 개의 갈색 그리고 회색. 두말할 나위 없이 이는 매우 개인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해석을 우습고 유치하다고 볼 것이다. 하지만 음악이 의미하는 바가 일련의 음표와 음 이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나의 이 작은 공상이라는 죄를 용서하실 것이다.”

필자의 공상 역시 용서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