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현의 시각] 3無 최저임금위원회
인상률 1.7%, 시급 1만30원. 지난 12일 새벽 결정된 내년도 최저임금을 놓고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노동계는 “정부 입맛대로 최저임금 범위를 결정하는 공익위원들의 기만적 태도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갈아 넣는 이윤 추구를 감추는 저들(경영계)의 폭력을 두고 볼 수는 없다”고 반발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2017년으로 가보자. “향후 발생할 모든 문제는 무책임한 결정을 내린 공익위원들과 이기주의적 투쟁만 벌이는 노동계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것이다.” 전년 대비 최저임금을 한꺼번에 16.4% 올린 2017년 7월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저임금 결정 직후 낸 입장문이다. 인상률이 높고 낮음에 따라 비난의 주체와 대상만 달라질 뿐 그 내용은 똑같다.

원칙도 없고 책임도 안 지는 구조

최저임금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균형임금이 아니라 정부가 정하는 정책임금이다. 그럼에도 개별 기업의 노사가 임금 협상하듯이 정하는 구조이다 보니 칼자루를 쥔 공익위원들은 자신에게 감투를 씌워준 정부의 꼭두각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는 원칙이나 결정 기준이란 것이 없다. 최저임금법 제4조 1항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근로자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해 정하도록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사실상 법문 속에만 존재하는 원칙이다.

2016년 7월의 일이다. 당시 최저임금위원회는 마지막 회의에서 2017년 최저임금 인상률을 7.3%로 결정했다. 산식은 어땠을까. 최임위가 밝힌 산식에는 유사근로자 임금 인상률(3.7%), 소득분배 개선분(2.4%), 여기에 협상배려분(1.2%)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항목까지 들어갔다. 당시 협상배려분을 놓고 최임위 안팎에선 7% 초반의 미리 정해놓은 인상률에 꿰맞추기 위한 궁여지책이란 평가가 적지 않았다. 그러더니 이듬해인 2017년과 2018년에 무려 각각 16.4%와 10.9%를 올린 뒤 2019년에는 2.87%로 급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왜 그런 인상률이 도출됐는지 설명조차 하지 않았다. 산식이랄 게 없었기 때문이다.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2022년부터 ‘경제성장률+소비자물가 상승률-취업자 증가율’이라는 그럴듯한 산식을 꺼내들었지만 취업자 증가율과 최저임금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똑 부러지는 설명은 없다.

제도 개선 의지 다시 시험대로

이런 배경에는 공익위원, 아니 공익위원 뒤에 숨은 정부의 무책임이 있다. 최저임금 결정은 항상 공익위원들이 칼자루를 쥐었다. 하지만 그들은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았고, 질 수도 없다. 책임은 오롯이 정부의 몫이지만 매번 ‘최임위의 공정하고 객관적이고 투명한 논의 결과’라는 입에 발린 소리만 되뇌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매년 여름이면 나라가 뒤집어질 듯 소동이 벌어지지만 이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점이다. 2018~2019년 최저임금이 급등하면서 2019년 한때 결정 체계 개편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이내 인상률을 확 낮추면서 없던 일이 됐다. 지난 15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소모적 갈등과 논쟁이 반복되는 최저임금 제도 개선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부디 노동계 반발을 일순간 모면하기 위한 립서비스가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