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의 등장으로 바뀐 것은 투자자만이 아니다. 투자금을 모아야 하는 기업들은 알고리즘 덕에 이전보다 훨씬 큰 규모의 자금을 매우 빠르게 끌어모을 수 있게 됐다. 이는 유망 기업의 빠른 성장을 돕는 한편 기업 간 편차를 심화하는 ‘승자 독식’ 메커니즘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16일 시빌리스리서치 자료에 따르면 미국 증시(장외거래 포함)에서 상위 500대 기업의 시가총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69%에서 지난해 말 82.8%로 급격히 상승했다. 이 비중은 2019년(83%) 이후 5년째 80%를 웃돌았다. 상위 500대 기업의 시가총액도 2010년 말 17조달러에서 작년 말 50조8000억달러로 급증했다.

시장 규모가 커진 것은 전반적인 경제 성장과 글로벌 금융위기 후 양적완화 통화정책 등이 두루 작용한 덕이지만 이 자금이 상위 기업에 쏠리는 것은 또 다른 이유 때문이다. 알고리즘을 활용한 트레이딩이 가속화하고 상장지수펀드(ETF) 같은 패시브 펀드가 활성화하면서 뛰어난 기업들이 더 많은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액티브 펀드와 달리 기업을 일일이 고를 필요가 없는 패시브 펀드는 낮은 수수료율을 바탕으로 투자의 저변을 넓혔다. 투자자는 기업 정보를 확인하고 분석하는 번거로움을 덜고 더 큰 금액을 더 적은 비용으로 투자하며 액티브 펀드와 비슷한 수준의 투자 수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는 결과적으로 대형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핵심 투자자 10명에게 비즈니스 모델을 설득할 수만 있다면 이들의 전략을 추종하는 1만 명 또는 10만 명의 자금을 받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재무학자들은 ETF가 등장하며 시장의 유동성이 급격히 증가하고 질적으로도 개선됐다는 연구 결과를 여럿 발표했다.

대신 패시브 펀드는 특정 지수에 포함된 기업에 더 많은 투자 자금이 몰리게 한다. 지수에 포함된 종목의 투자 수요가 급증하고 다른 기업들에 대한 수요는 상대적으로 줄어들면서 가격 왜곡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필리프 회플러 독일 괴테대 교수는 “시장 전체 분위기가 가격에 더 영향을 미치게 돼 기업별 정보의 특징이 덜 반영되고 기초자산을 구성하는 주가의 변동성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