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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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플로리다주 보카러톤에 사는 피에트로스 마네오스(44)는 시인이다. 간단한 코딩 방법도 모르는 그는 천생 ‘문과’다. 그러나 연 수익률 33%를 내는 전문 투자자이기도 하다. 노트북 한 대로 72개에 달하는 퀀트 투자(컴퓨터의 계량 분석에 기반한 투자) 전략을 동시에 실행한다. 그중에는 S&P500지수 상승분의 세 배 수익률을 가정하고 베팅하는 초고위험 전략(트리플 레버리지)도 있다. 마네오스는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혼자만의 블랙박스를 가진 것과 같다”며 “나는 72개의 (투자) 전략을 갖춘 헤지펀드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초개인화 투자가 가능해진 것은 알고리즘 덕이다. 컴포저, 알파카마켓 등 온라인 트레이딩 플랫폼을 이용하면 아마추어 투자자도 거대 헤지펀드와 비슷한 방식으로 어렵지 않게 돈을 굴릴 수 있다. 컴퓨터에 내장된 알고리즘이 실시간으로 가격 추세를 예측해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를 사고판다. 인간의 뇌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정보량을 몇초 만에 처리하고,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지도 않는다. 알고리즘이 바꿔놓은 미 월가 풍경이다.
딥러닝으로 주식가격 추세 예측…문과생도 투자고수 만든 알고리즘

패시브 자금, 액티브 첫 추월

고(故) 짐 사이먼스 르네상스테크놀로지스 회장이 일으킨 ‘퀀트 혁명’은 머신러닝과 딥러닝에 기반한 인공지능(AI) 물결을 타고 또 한 번의 변혁기를 맞았다. 컴포저의 고객 수는 출시 3년 차인 작년 한 해에만 전년 대비 다섯 배로 불어났다. 4500명이 넘는 컴포저 유저들은 메시지 플랫폼 ‘디스코드’에 모여 투자 팁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눈다.

알고리즘 투자는 액티브 투자에도 사용되지만 특정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전략과 찰떡궁합이다. 펀드평가사 모닝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미국에서 패시브 전략 기반 펀드의 운용자산(AUM) 규모는 13조2900억달러(약 1경8473조원)로, 관련 통계를 집계한 1993년 이후 처음으로 액티브 펀드(13조2300억달러)를 넘어섰다. 수익률도 더 우수했다. 대형주 중심 혼합형 펀드에서 패시브 전략이 1928억달러(약 268조원)의 순이익을 낼 동안 액티브 전략은 486억달러의 손실을 봤다.

RA 시장 급성장

빅테크를 중심으로 미 증시가 활황세를 나타내고, 이들 종목을 편입한 ETF 등 투자 상품에 자금 쏠림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교한 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알고리즘 매매는 상승 곡선을 타는 지수를 더 효율적으로, 더 저렴하게 추종할 수 있게 했다. 다양한 지수가 끊임없이 출시되며 이를 적절하게 섞어 원하는 수익-리스크 조합을 찾기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

그 결과 1976년 뱅가드가 최초의 인덱스 펀드를 내놓은 지 약 50년 만에 ‘패시브의 시대’가 도래했다. 모닝스타는 “인덱스(패시브) 펀드가 공식적인 승리를 거뒀고, 이는 AI를 통해 반복될 것”이라고 짚었다. 10년 안에 패시브 펀드가 시장 점유율 70%를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패시브 시장 최선봉에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한 로보어드바이저(RA)가 있다. 하나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세계 RA 시장 규모는 2021년 1조4000억달러를 넘어섰고, 연평균 18% 불어나 2026년에는 3조1000억달러(약 4308조원)로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글로벌 시장에서 RA 플랫폼이 계속 인기를 누리고 있는 데 비해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성과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스템 리스크’ 위험도

알고리즘에 기반한 트레이딩 덕에 시장 전반의 유동성은 한층 풍부해졌다. 하지만 인간이 직접 투자할 주식을 고르고 매매 시점을 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규칙성이 제거된 탓에 오히려 시장 전체의 시스템 리스크가 커지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시장을 이기기 위해 개발한 알고리즘이 수없이 많아지며 수익률이 시장 수익률에 수렴하는 역설적인 상황도 생긴다. 시장의 가격 발견 기능이 강화되면 적정 주가로의 수렴이 빠르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개별 종목을 고르지는 않더라도 다양한 지수를 묶어 시장 수익률 이상의 수익(α)을 추구하는 ‘액티브 같은 패시브’ 투자 경향도 강해지고 있다. 송교직 성균관대 경영대 교수는 “액티브 같은 패시브 투자가 늘어나면 결국 시장이 효율적이라는 가설에 따라 투자하는 패시브의 장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