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 공연이라고 해서, 빠르게 돌고 높이 뛰는 테크닉적인 부분만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요. 오히려 말로 표현이 안 되는 아름다움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박세은 “나는 파리의 에투알 발레리나… 포기를 몰라요”
창단 35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에투알(수석무용수) 박세은(35)은 17일 예술의전당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박세은은 2011년 파리오페라발레단에 한국인 최초로 입단해 10년만에 동양인 최초 에투알이 됐다. 그는 동료 에투알 무용수들과 함께 한국에서 20일부터 닷새간 4번의 갈라 공연을 펼친다. 지난 2022년, 동료들과 함께 갈라 무대에 선지 2년만이며 출산 후 국내에 서는 첫 무대이기도 하다. 그는 이번 갈라 공연의 캐스팅과 프로그램 구성을 전담했다.
박세은 “나는 파리의 에투알 발레리나… 포기를 몰라요”
이번 갈라 공연은 2년전보다 훨씬 많은 작품을 소개한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방대한 레퍼토리 중 18개 작품을 A·B 프로그램으로 나눠 알차게 구성했다. 프로그램을 둘로 선보이는 이유에 대해 박세은은 “관객분들이 2개 공연 티켓을 다 구매하셔 보셨으면 하는 바람에서”라고 말했다. 그만큼 어떤 무대든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들리브 모음곡> 파드되를 포함한 A프로그램은 20·21일에, <르 파르크> 3막 파드되를 포함한 B프로그램은 23·24일 관객과 만난다. “1년 전부터 공연 준비를 했는데 끝이 없었어요. 자려고 누워도 ‘더 좋은 작품 없나?’ 고민을 계속 했죠. 그렇게 만든 공연이라, 어느 하나만 콕 집어 추천할 수 없을 만큼, 모든 작품이 제게는 보석 같습니다.”
박세은 “나는 파리의 에투알 발레리나… 포기를 몰라요”
이번 갈라에서는 잘 알려진 고전 발레 <돈키호테>, <신데렐라>의 파드되(2인무)가 안무가 루돌프 누레예프 버전으로 무대에 오른다. 화려한 발재간, 장식적인 동작을 많이 넣는 안무가여서 국내 발레팬들에게 발견의 즐거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운 컨템포러리 발레 작품도 대거 소개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안무가 프레데릭 애쉬튼의 <랩소디>와 윌리엄 포사이스의 <정교함의 짜릿한 전율(이하 정교함)>. <랩소디>의 2인무는 피아니스트 손정범의 라이브 선율 위에서 펼쳐진다. <정교함>은 무려 5인무로, 이 중 4명이 박세은을 포함한 에투알 무용수로 채워져있다. 이밖에 박세은은 <마농의 이야기> 중 침실 파드되, <빈사의 백조> 솔로, <백조의 호수> 중 흑조 3인무에 골고루 출연한다.

한국에서 러시아 바가노바 스타일의 발레를 익혔던 그가 프랑스 발레에 적응하는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프랑스 발레는 기량이나 노력도 중요하지만 감정선, 자연스러움을 표현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B프로그램에 구성된 <르 파르크>를 예로 들며, “같은 작품임에도 러시아 발레단 무용수들이 추는 춤과 저희의 춤을 비교해보시면 다른 점이 확연히 느껴지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세은이 파리오페라발레단 에투알이 된지도 어느덧 3년이 넘었다. 스스로에게 높은 평가를 주지 않는 성격 때문에 에투알이 주는 안정감이 솔직히 컸다고 고백했다. “에투알이라는 타이틀을 단 후로는 ‘넘어져도 나는 에투알이지 뭐’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웃음). 에투알이 되고 출산을 하며 엄마가 되면서 춤이 더 즐겁고 여유로워졌습니다.”

무용수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던 비결이 있었을까. 그는 “그런건 없다”면서도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할 생각을 단 한 번도 안 한 것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저 역시 힘들고 (주역의 기회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많았어요. 하지만 언더스터디(주역의 대타)에서 기회를 잡으며 성장했죠. 후배들이 조바심을 낼 때마다 저는 제 경험에 빗대어 각자에게 자신만의 좋은 타이밍이 올 거라고 말해줍니다.”

이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