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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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대출 급증 문제가 악화한 데는 민간 은행들의 책임도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어설픈 대출 규제를 내놓으면 은행들이 규제의 허점을 파고든 새로운 금융상품을 선보여 가계부채 수요를 자극했다. 대출을 억제하기 위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시행되자 은행들이 앞다퉈 만기가 40~50년인 장기 주택담보대출을 출시해 대출 한도를 높여주는 ‘꼼수’를 부린 게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40년 주담대, 대세 자리 잡아

DSR 규제로 대출한도 줄자…은행권, 40~50년 만기로 '꼼수 우회'
국내 주담대 상품은 2021년까지만 해도 만기가 30년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2022년 지방은행들이 만기가 40년인 주담대를 새로 선보인 이후 시중은행들도 그해 상반기까지 앞다퉈 40년 만기 주담대를 새로 출시했다. 현재 금융시장에선 4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이 30년 만기 상품을 제치고 대세로 자리 잡았다.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40년 만기 주담대를 판매한 이유는 만기가 길수록 개인에게 더 큰 금액의 주담대를 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개인의 연간 대출 원리금 상환액을 소득의 일정 비율 이하로 제한하는 DSR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선 대출 만기가 길수록 유리했다. 만기가 길면 소득과 대출금리가 동일하더라도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줄어 대출 한도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지난해엔 은행들이 만기가 50년인 초장기 주담대를 줄줄이 출시했다. 한국은행의 고금리 기조로 인해 개인에게 내줄 수 있는 대출 한도가 제한적인 상황이 이어지자 만기를 늘려 최대한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예컨대 연봉 1억5000만원인 개인이 연 3.5%의 금리로 주담대를 낼 때 만기가 50년인 주담대를 택하면 최대 13억9000만원을 빌릴 수 있다. 30년 만기를 택할 경우의 대출 한도(11억원)에 비해 2억9000만원 큰 액수다.

은행들이 50년 만기 주담대를 내놓자 가계대출은 빠른 속도로 늘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작년 1월 1000억원에 불과하던 50년 만기 주담대 대출액은 그해 8월 5조1000억원으로 급증했다. 보다 못한 금융당국은 지난해 9월부터 만기가 50년인 주담대라도 DSR은 40년 기준으로 산정하는 규제를 신설했다.

○정책대출 따라하는 은행들

규제의 빈틈을 찾아 꼼수를 부린 것은 민간 은행들이지만 방법을 먼저 알려준 것은 정부였다.

금융당국은 공기업인 한국주택금융공사를 통해 정책대출인 ‘보금자리론’의 만기를 기존 30년에서 최대 40년으로 늘렸고, 2022년엔 50년 만기 보금자리론을 출시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내 민간 은행들은 모두 정부의 보금자리론 만기가 연장되는 것을 벤치마킹해 40~50년 만기 주담대를 내놨다”고 했다.

체계적이지 못한 DSR 규제와 은행의 탐욕이 맞물려 최근 1~2년 사이 40년 만기 주담대가 대세로 자리 잡은 부작용은 농협,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업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상호금융업계는 규정에 따라 만기를 최대 30년까지만 설정할 수 있다. 은행권의 40년 만기 주담대에 비해 대출 한도가 낮을 수밖에 없어 고객이 이탈하고 있다.

이로 인해 최근 은행권 가계대출이 급증하는 동안 상호금융업권의 가계대출 규모는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 1~6월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20조6000억원 늘었지만 상호금융업권 가계대출 잔액은 12조3000억원 감소했다.

한 상호금융업체 여신담당 임원은 “2금융권은 주담대 위주로 가계대출 잔액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어 전체 여신의 건전성까지 악화하고 있다”며 “가계 빚 급증 문제를 해소하면서 가계대출의 지나친 1금융권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해선 40년 만기 주담대의 DSR 적용 기준을 30년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