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사진=한경DB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사진=한경DB
HD현대그룹의 조선 계열사 주가가 파죽지세로 오르고 있다. 조선업 호황이 이어진 가운데 재무실적도, 수주실적도 앞서 나가고 있다. 여기에 STX중공업을 인수해 선박엔진 시장까지 장악하게 될 전망이란 점도 투자심리에 힘을 실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6일 HD현대그룹의 중간 조선 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은 전 거래일보다 5.63% 오른 17만8300원에 마감했다. 지주사인 HJD현대도 4.99% 상승했고, 현대중공업(4.69%)과 현대미포조선(3.63%)도 강세였다.

상승 배경은 주로 선박용 중형 엔진을 만드는 STX중공업 인수 승인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4일 HD한국조선해양이 STX중공업의 지분 35.05%를 취득하는 기업결합에 대해 시정조치를 붙인 조건부 승인을 결정했다.

공정위 심사는 독과점을 우려했다는 뜻이다. 실제 HD현대의 엔진기계사업부는 선박용 대형엔진과 중형엔진에서 각각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1980년대부터 1위였다. 현재 점유율은 대형엔진 36%, 중형엔진 30% 수준이다, 이번 STX중공업 인수로 중형엔진 분야 점유율을 더 끌어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공정위 심사의 쟁점은 엔진 자체는 아니었다. STX중공업 자회사인 KMCS가 만드는 크랭크샤프트가 문제였다. 국내에서 크랭크샤프트는 만드는 곳이 HD현대중공업, 두산에너빌리티, KMCS 뿐이기 때문이다. HD현대중공업과 KMCS가 한솥밥을 먹게 되면, 남는 건 두산에너빌리티 뿐이다.

하지만 두산에너빌리티는 추가 공급 여력이 없다. 현재 크랭크샤프트 공장 가동률이 100%에 육박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HD현대중공업이 외부로의 크랭크샤프트 판매를 막게 되면 한화엔진과 STX엔진(STX그룹 해체로 STX중공업과 별개 회사)은 엔진을 만들기 힘들어진다. 한화그룹과 HD현대그룹은 우리 해군이 발주한 특수선 수주전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다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태이기도 하다.

이에 공정위는 KMCS가 생산능력 범위 안에서는 정당한 이유 없이 계약체결을 거절하지 않도록 하고, 생산 능력을 초과하더라도 작년에 공급한 물량만큼은 매년 계약을 체결하도록 하는 시정명령을 3년간 부과했다.

STX중공업 인수가 결정되기 전부터 HD현대그룹 조선계열사들은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지난달부터 이달 16일까지 약 한달 반 동안 상승률은 HD한국조선해양 36.73%, HD현대중공업 30.15%, HD현대미포조선 42.24%에 달한다.

주가 강세는 수주 호황 덕이다. 예상 밖 해운 호황으로 컨테이너선사들이 잇따라 선박 발주에 나선 결과다. 당초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쏟아진 컨테이너선 수주 물량이 작년부터 인도돼 해운업 불황이 예상됐다. 하지만 중동지역 군사적 긴장 고조로 수에즈운하가 사실상 막히면서 운임 고공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컨테이너 운임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선운임지수(SCFI)는 지난 12일 3674.86을 기록했다. 작년 말(1759.58) 대비 2배 이상이다.

특히 HD현대그룹 조선계열사들의 수주 실적이 두드러진다. 지난 15일에도 프랑스 CMA-CGM으로 추정되는 유럽지역 선사로부터 컨테이너선 12척을 수주했다. 계약규모는 3조6832억원이다. 이번 수주건을 포함하면 HD한국조선해양 산하 조선 계열사들은 올해 들어 모두 162억7000만달러(약 22조 5400억원)어치 일감을 따냈다. 1년의 절반 남짓 지난 시점에 연초 내세운 연간 수주목표(135억달러)를 20.5% 초과 달성했다.

변용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HD한국조선해양의 컨테이너선 수주에 대해 “무엇보다 주목되는 건 선가”라며 “(현대중공업이 이번에 수주한 선종의) 클락슨리서치(글로벌 조선·해양 분석업체) 집계 선가는 2억100만달러(약 2700억원)인데, 이번 수주 건은 척당 2억2240만달러(약 3000억원)다. 시장 선가보다 10% 높은 가격”이라고 말했다.

다만 인도 시기가 너무 먼 미래라는 점은 우려할 만하다. 이번에 수주건의 계약기간은 2028년 6월 말로, 마지막 선박의 인도시기가 4년 뒤다. 4년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다.

정동익 KB증권 연구원은 국내 조선사들이 2008년에 최고 수준의 선가로 수주했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도시점에 예상에 크게 못 미친 수익성을 기록한 바 있다고 전했다. 이 사례를 들어 정 연구원은 “(이번에) 특히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인건비”라며 “매우 큰 폭으로 상승했고, 다른 비용들과 달리 한번 올라가면 다시 하락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우려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