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보 1호는 그림… 가로 5m 넘는 '청명상하도'의 비밀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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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상하도
톈위빈 지음
김주희 옮김 / 글항아리
256쪽│2만2000원
톈위빈 지음
김주희 옮김 / 글항아리
256쪽│2만2000원
![북송시대 궁중화원 장택단이 그린 '청명상하도'의 후반부. /글항아리 제공](https://img.hankyung.com/photo/202407/01.37375839.1.jpg)
지난 2015년 청명상하도가 베이징 고궁박물원에서 처음 공개됐을 때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7시간 동안 줄을 서거나 밤새 대기한 이들도 있었다. 정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이 일제히 내달리면서 '고궁박물원 오픈런'이란 조어까지 등장했다. 무엇이 이 그림을 특별하게 만든 걸까.
![<청명상하도>(톈위빈 지음, 김주희 옮김, 글항아리, 256쪽, 2만2000원)](https://img.hankyung.com/photo/202407/01.37375949.1.jpg)
청명상하도는 지금의 허난성 카이펑시인 북송 동경의 청명절 풍경을 묘사한 그림이다. 동경에선 겨울철 빙하 피해를 막고자 제방을 세웠다. 4월께 청명 절기를 전후로 얼음이 녹으면 둑을 무너뜨렸다. 이때 선박들의 물길이 뚫렸는데, 그림 제목의 '상하'가 바로 이러한 상황을 의미한다.
![북송시대 궁중화원 장택단이 그린 '청명상하도'의 중반부. /글항아리 제공](https://img.hankyung.com/photo/202407/01.37375837.1.jpg)
청명상하도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났다. 송 휘종(1082~1135) 재위 초기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휘종은 예술 방면으로는 두각을 드러냈지만, 정치에는 어두운 혼군(昏君)이었다. 1127년 북송이 금나라에 의해 멸망하자 작품은 여러 권력가의 손을 거쳤다. 태평양전쟁이 끝나면서 민간으로 흘러나왔다가 1953년부터 고궁박물원이 소장하고 있다.
![북송시대 궁중화원 장택단이 그린 '청명상하도'의 도입부. /글항아리 제공](https://img.hankyung.com/photo/202407/01.37375836.1.jpg)
숲을 지나면 도시를 가로지르는 수로가 나온다. 태평성대처럼 왁자지껄한 모습이지만, 은연중에 긴장감이 도사린다. 주인의 통제를 벗어난 말은 민가로 내달리고, 줄기 가운데가 잘린 버드나무는 지나가는 상인들을 덮치기 일보 직전이다.
![북송시대 궁중화원 장택단이 그린 '청명상하도'의 중반부. /글항아리 제공](https://img.hankyung.com/photo/202407/01.37375835.1.jpg)
도로변 약국의 광고판에는 '술로 얻은 병을 치료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향락에 찌들며 병들어가는 사회를 풍자한 걸까. "단도직입적으로 이 간판은 시대의 병폐를 명확하게 짚고 있다. 광고판은 황제의 주의를 환기하는 동시에 건의하는 것이기도 하다."
![북송시대 궁중화원 장택단이 그린 '청명상하도'의 후반부. /글항아리 제공](https://img.hankyung.com/photo/202407/01.37375838.1.jpg)
청명상하도의 제목에 얽힌 재미난 추측은 하나 더 있다. 24절기 중 하나인 청명절이 아닌, '정치가 맑고 깨끗하다(淸明)'를 의미한다는 주장이다. 중국 국보 1호의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다.
안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