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겨레문학상 수상…"지켜야할 가치 무너지는 세상…글로 제동 걸고파"
차별·혐오 딛고 푸르게 자라나는 소년…하승민 장편 '멜라닌'
"내 피부는 파랗고 엄마는 베트남 사람이다.

어느 쪽이 더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
파란색의 피부로 태어난 한국과 베트남의 혼혈 소년 재일은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냉대와 이웃들의 노골적 멸시 속에 자란다.

학교에선 멀쩡한 이름 대신 '아바타' '스머프' '도라에몽' '똥남아 튀기' 등의 멸칭으로 불리며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

그런 재일에겐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대차고 강직하게 삶을 개척해가는 엄마만이 유일하게 마음을 기댈 곳이다.

그런 엄마도 가족이 미국 이민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베트남으로 떠난 뒤 돌아오지 않고, 재일은 기댈 곳 하나 없는 야생의 미국 이민 생활을 맞닥뜨린다.

하승민(43)의 장편소설 '멜라닌'은 파란 피부의 한-베트남 혼혈 소년 재일이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해 차별과 혐오를 견디고 성장해간다는 이야기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기이한 피부색과 블루칼라 가정, 변방의 아시아 혼혈 등 신 성분으로 인해 가장 낮은 계층의 존재로 취급되는 존재가 학교 친구와 교사, 이웃, 심지어 가족에게까지 멸시받는 과정이 9·11 테러, 미국의 여러 총기난사 사건, 한국 대통령 탄핵 등의 역사적 사건들과 촘촘히 맞물리며 전개된다.

자신을 아끼고 보살펴주던 가까운 사람들이 잇따라 죽거나 떠나는 상실 속에서도 끝내 한 인간으로서의 품격과 존엄, 사랑을 잃지 않으려는 한 소년의 분투가 사실주의적이면서도 환상적인 톤으로 그려졌다.

10년 넘게 IT 대기업과 모바일뱅킹 스타트업 등지에서 일하다 2020년부터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하승민 작가는 이 작품으로 올해 제29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

주인공 재일이 파란 피부로 태어났다는 설정은 세계에 만연한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보편적인 관점으로 드러내기 위한 장치라고 작가는 18일 서울 정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설명했다.

"파란 피부의 사람은 (일부 약물 부작용으로 나타난 사례 외에) 사실 세상에 없지요.

그런 설정을 한 건 특정한 소수집단을 대상으로 한 작품을 쓰기보다는 보다 넓은 범위에서 차별과 배척을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존재하는 피부색이라면 소설이 그 소수자 집단을 대상으로 한 얘기가 돼버리니까 존재하지 않는 피부색을 알레고리로 썼지요.

"
'멜라닌'은 피부색과 출신국, 직업 등으로 차별받는 소수자들의 이야기와 이들이 미국이라는 나라로 이주하면서 새롭게 맞닥뜨리는 혐오와 폭력의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전개되는 소설이다.

자연히 작가 본인의 경험이 투영돼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하승민 작가는 서울의 한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뒤 국내 IT 대기업과 모바일 뱅킹 스타트업에서 마케팅과 시장분석 등의 일을 10년 넘게 한 직장인 출신 소설가다.

이력으로 볼 때 인생의 큰 굴곡이나 상처 없이 평탄한 삶을 살아온 것처럼 보이는 작가가 쓴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멜라닌'에는 사회의 어두운 면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추악함을 드러내는 이야기들이 풍부하게 담겼다.

차별·혐오 딛고 푸르게 자라나는 소년…하승민 장편 '멜라닌'
이 작품은 올해 한겨레문학상 240편의 응모작 중 유일하게 심사위원 전원의 지지를 받아 최종심에 오르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소설가 김금희, 김숨, 편혜영 등 심사위원 7명은 "이민사의 굉장한 디테일", "매력적인 문장과 세련된 결말", "주인공 소년이 지닌 정감과 매력" 등을 이 작품의 강점으로 꼽았다.

작가는 작품에 쓴 주요 설정의 현실성을 높이고자 자료조사와 인터뷰 등 사전 취재를 오랜 기간 꼼꼼히 진행했다고 했다.

"작품에 현실성을 부여해야겠다는 생각에 사전 조사를 많이 했어요.

책 뒤에 나와 있듯이 참고도서도 굉장히 많고요.

미국에서 중고교를 다닌 지인들 얘기도 들어보고, 한국에 온 미시시피 출신 미국 노부부와 일주일간 동행하며 미국의 차별에 관한 인터뷰도 했습니다.

"
작가는 '멜라닌' 전에는 '콘크리트'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등 장르소설 4권을 펴냈다.

사회에 세상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잃지 않고 재미있는 얘기를 계속 쓰겠다는 것이 작가로서의 꿈이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꼽은 미국의 소설가 스티븐 킹 처럼 말이다.

"다른 누군가를 괴롭히고 핍박해도 되는 사회,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지켜야 할 가치들이 무너지고 그게 또 정당화되는 사회죠. 세상이 어지럽습니다.

과거엔 최소한 부끄러워하기라도 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제 글로 조금이나마 그런 세상에 제동을 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한겨레출판. 312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