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공단 번복서 시작된 분쟁…동성커플 2심 이어 승소 확정
동성혼 인정 물꼬 트나…기독교계 반대 등 치열한 논쟁 예고
대법서 인정된 '사실혼 동성부부' 권리…합법화 논의로 이어질까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18일 동성 동반자에 대해서도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것은 사회적으로 적잖은 파급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민법상 인정되지 않는 동성 부부도 이성 부부가 누리는 권리의 일부라도 보장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처음으로 대법원에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최고 법원의 판단에 따라 우리 사회의 견고한 '이성애 중심' 구조에 균열이 생기는 것은 물론, 동성 커플의 추가 권리 확대에 이어 궁극적으로는 동성혼이 인정되는 주춧돌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2020년 시작된 분쟁…4년 만에 동성커플측 승소 확정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이날 소성욱 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낸 보험료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남성 커플의 싸움은 소씨와 배우자인 김용민 씨가 주위에 결혼 생활을 시작하겠다고 알린 이듬해인 2020년 시작됐다.

그해 2월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인 김씨는 지역 가입자인 소씨를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있는지를 건보공단에 문의했다.

소씨가 건강 문제로 직장을 그만둔 뒤로는 김씨가 그를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두 사람이 동성이며 사실혼 관계에 있다고 설명했고, 건보공단 직원은 '가능하다'고 답했다.

이성 사실혼 부부에 대해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건보공단의 방침이 이들에게도 적용된 셈이다.

다시 말해 동성 부부에게 사실혼 지위를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건보공단은 그해 10월 이 같은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며 논란이 일자 "담당자의 업무 처리에 착오가 있었다"며 적용을 번복했다.

건보공단이 소씨를 다시 지역 가입자로 전환해 보험료를 부과했고, 소씨는 2021년 2월 이 처분을 취소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이들의 사실혼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며 건보공단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 재판부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본질적으로 같은 집단을 차별대우해 평등의 원칙을 위배했다"며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년 5개월 만인 이날 2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서 인정된 '사실혼 동성부부' 권리…합법화 논의로 이어질까
◇ '동성 동반자' 피부양자 인정…다른 제도로 확대는 아직
이날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소씨와 김씨 같은 사실혼 관계의 동성 부부도 일부나마 법적 권리를 보장받을 길이 열리게 됐다.

물론 대법원이 현행법상 혼인신고를 하지 못하는 동성 부부의 '사실혼 지위'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앞서 항소심은 두 사람의 관계를 '동성 결합 상대방'으로, 이날 대법원은 '동성 동반자'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이들이 단순히 동거하는 관계를 넘어 동거·부양·협조·정조의무를 바탕으로 부부에 준하는 '경제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한다면 사실혼 관계와 차이가 없기 때문에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따라서 이런 판례에 따라 다른 동성 커플들도 일정 수준 이상의 동반자 관계를 입증한다면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이번 판결이 동성 사실혼 부부의 다른 권리 확장으로 이어질 계기가 될지도 관심사다.

다만 이 판례가 다른 사회보장제도로 확장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국민연금법·고용보험법 등은 관련 규정에 '사실혼 배우자'를 포함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소씨 부부의 경우 대상이 되기 어렵다.

반면 국민건강보험법의 경우 사실혼 배우자를 포함한다는 내용이 1976년 개정되면서 삭제됐다.

그런데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사실혼 배우자를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등 '행정적인 재량권'을 행사해 왔고, 그 행사 과정에서 이유 없는 차별을 했다는 것이 앞서 2심의 논리였다.

다만 공고했던 과거 판단에 최고 법원이 처음으로 균열을 일으킨 만큼 변화의 물결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른 사회보장제도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동성혼 합법화 논의도 한층 활성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종교계의 극심한 반대 등으로 사회적으로 동성혼은 물론 동성애를 공론장에 올리는 것 자체를 터부시하는 분위기도 강한 만큼, 그 과정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