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TSMC, 대만 '정치 절제'의 승리
이달 장중 시가총액 1조달러를 찍고 조정받고 있는 대만 TSMC는 흔히 삼성전자와 비교된다. 양국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 규모에 반도체 맹주를 다투고 있어서다. 하지만 창업 과정과 기업 소유 구조를 놓고 보면 TSMC와 가장 닮은 한국 기업은 포스코다.

TSMC는 철저히 대만 정부 중심의 기획과 투자로 1987년 설립됐다. 당시 장징궈 정부는 도요타와의 합작 자동차 공장 건설을 포기하고 TSMC에 국력을 집중했다. 대만 유력 매체 톈샤(天下)는 2018년 특집기사 ‘TSMC는 어떻게 이기는가’에서 당시 상황을 전했다.

‘모리스창이 창안한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산업은 반도체 기업 선두를 달리던 텍사스인스트루먼트도 자신이 없어 선뜻 투자에 나서지 못했다. 당연히 TSMC 설립 지원을 담당한 경제부장(장관), 재정부장도 생소하게 생각했다. 대만 과학기술의 대부, 리궈딩 정무위원이 설득해 대만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정부 투자가 집행됐다.’

포스코와 TSMC의 다른 점

대일 청구권자금을 쏟아부어 일으킨 1968년 포스코 창업을 연상시키는 대목이 많다. 창조력과 추진력을 겸비한 기업인 모리스창은 박태준 전 총리, 미래를 내다보고 과감한 결단을 내렸던 리궈딩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역할과 정확하게 겹친다.

하지만 TSMC와 포스코의 행로는 곧 엇갈렸다. 박 전 총리는 신군부 등장으로 포스코가 정치적 압박을 받자 “최소한 울타리는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정치에 발을 들인다. 이후 포스코는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크고 작은 부침을 겪고 있다.

반면 모리스창은 1987년부터 2018년까지 TSMC를 이끌었다. 한국으로 치면 전두환 정권 말기에 취임해 문재인 정부에서 물러난 셈이다. 이후 최고경영자(CEO) 자리도 연구개발과 사업에서 회사 안팎의 인정을 받은 인물들이 승계한다. TSMC가 민영화된 이후에도 대만 정부는 6.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인사에 일절 개입하지 않는다.

1987년까지 38년간 계엄령 통치를 한 국민당과 여기에 저항한 집권 민진당의 관계는 한국 여야 이상으로 나쁘다. 여기에 국공내전 이후 이주해온 외성인과 대만 원주민 사이의 민족 갈등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럼에도 대만 정치권은 “국부의 원천이 되는 기업에 정치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굳게 지킨다.

정치 절제가 기업 승패 갈라

TSMC 다음 규모인 폭스콘만 봐도 그렇다. 창업자 궈타이밍은 2019년 이후 국민당 계열의 대선 후보로 나서며 민진당 정부를 비판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를 빌미로 폭스콘에 규제나 보복을 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에선 문재인 정부 청와대 참모를 지낸 한 정치인이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대기업 총수들이 어떻게 자신의 비위를 맞췄는지 자랑한다. 2020년 즈음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의 한 핵심 인사는 임원 회의에서 TSMC와 격차가 벌어진 몇몇 계기를 복기하며 그 핵심 원인으로 정치 및 사법 리스크에 따른 리더십 공백을 들었다.

최근 여야는 앞다퉈 ‘반도체 특별법’을 내놓으며 전력망부터 각종 보조금까지 지원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정치권이 입맛대로 기업과 경영자를 흔들지 않겠다는 정치 절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한국 기업이 TSMC를 넘어서긴 당분간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