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열심히 살아야 할 동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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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살아 보자'던 고도 성장기
꿈이 있어 현실 어려움 극복
리더의 비전 제시 사라지면서
사회의 지향 목표도 불분명해져
'낡은 슬로건' 동기부여 못 해
지금이라도 '지향점' 찾아야
김동수 산업연구원 산업통상연구본부장
꿈이 있어 현실 어려움 극복
리더의 비전 제시 사라지면서
사회의 지향 목표도 불분명해져
'낡은 슬로건' 동기부여 못 해
지금이라도 '지향점' 찾아야
김동수 산업연구원 산업통상연구본부장
빠른 성장의 후유증일까? 우리나라는 어느새 목표를 상실한 사회가 된 듯싶다. 경제발전 초기에 정부는 ‘잘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산업을 육성했다. 국민에게 열심히 살면 자가용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고 했다.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변방의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당당한 국제사회 일원으로서의 자부심을 느꼈다. 넉넉하게 살 수 있고 내 자녀가 풍요로운 시대에서 살 것이라는 기대에 야근해도 전혀 힘든 줄 모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덧 새롭게 도전하는 것에 대해 들뜬 느낌을 갖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 우리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이웃 일본에서는 최근 ‘고도 오지(こどおじ·어린이 방의 아저씨)’라는 용어가 널리 퍼졌다. 중년의 미혼 아들이 뚜렷한 경제활동 없이 고령의 부모 집에 얹혀살고 있는 수가 늘어난 것을 반영한 조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누워 있다는 의미의 ‘탕핑(平)’ 또는 이미 도전을 포기한 채 자포자기하는 ‘바이란(擺爛)’을 표방한 이들이 늘고 있다. 이들이 사회 문제화하지 않을까 우려도 크다. ‘고도 오지’나 ‘탕핑’은 빠른 성장에서 도태되는 보통 사람들의 자조적 태도를 대변하는 것일까?
무기력해진 우리 사회를 돌아보며 두 가지를 생각해 본다. 첫째, 열심히 살 동기가 없다는 것은 ‘꿈’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을 좇아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개개인으로서 몰입해 좇을 수 있는 목표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에는 나아가야 할 비전을 제시하는 이가 필요하다. 꿈을 꾸는 사람이 필요하다. 리더는 빌더(builder)이기도 하지만 드리머(dreamer)이기도 하다.
둘째, 열심히 살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목표가 혹은 꿈이 달성하기에 너무 요원하다는 것일 수 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두 명의 흙수저가 결혼하면 자기 자식에게 흙수저의 지위를 대물림할 뿐인 현실 자각이 있기 때문이다. 초고령화 사회로 들어서면서 인구 감소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디지털시대 선도국가 또는 글로벌 선진국과 같은 꿈은 어딘지 모르게 멀게 느껴진다.
이 이야기를 그대로 우리의 산업·통상정책으로 가져와 보자. 예전에는 ‘잘살기 위해 고가의 수입 부품을 국산으로 대체해 보자’ ‘수출을 늘려 일자리도 창출하고 기업을 일으켜 보자’ ‘일본을 넘어 세계 최초로 8인치 웨이퍼 개발로 반도체산업에서의 주도권을 잡아보자’ 등과 같은 구체적인 지향점이 제시됐다. 하지만 요즘에는 우리가 공감할 수 있고 흥분할 수 있는 꿈과 목표가 우리에게 부족하다. 과거에는 우리보다 잘사는 선진국을 좇아가는 것이 우리의 꿈이고 목표였지만 지금은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지 다소 분명하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우리의 산업·통상정책을 봐도 무언가 집중할 수 있는 목표가 제시되고 있다기보다 오래전 방식의 숫자를 제시한 슬로건이 보인다. ‘수출 1조달러 달성’ ‘일자리 몇십만 개 창출’. 어딘지 무의미하고 건조하다. 수출을 늘리고, 반도체 인력을 양성하고, 디지털 전환과 그린 전환을 서두르겠다고 하나 다소 공허하다. 연금과 노동 그리고 교육 분야에서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하지만, 구체적이고 실현할 수 있는 로드맵이 부족하다. “다 함께 이뤄 보자”라기보다 “글쎄 그게 되겠어?”라는 불신이 더 많은 듯하다. 대다수 사람이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꿈을 꾸고, 실현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우고, 달성해 내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과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면서 관련된 주체들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던 역동적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중에서 꿈을 꾸는 것과 목표를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사람들을 열심히 움직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한 표가 중요한 상황이고, 정부는 5년의 단임 정권 내에서 성과를 내려 하니 꿈을 꿀 수 없고, 기업은 돈을 벌기에 바쁘다. 학자와 연구자는 “너나 잘하세요”와 같은 조롱을 받을까 몸을 사린다. 조금 긴 호흡으로 꿈을 꿀 수 있는 그리고 단계적 목표를 세울 수 있는 사람들을 길러낼 수 있는 사회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그런데 어느덧 새롭게 도전하는 것에 대해 들뜬 느낌을 갖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 우리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이웃 일본에서는 최근 ‘고도 오지(こどおじ·어린이 방의 아저씨)’라는 용어가 널리 퍼졌다. 중년의 미혼 아들이 뚜렷한 경제활동 없이 고령의 부모 집에 얹혀살고 있는 수가 늘어난 것을 반영한 조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누워 있다는 의미의 ‘탕핑(平)’ 또는 이미 도전을 포기한 채 자포자기하는 ‘바이란(擺爛)’을 표방한 이들이 늘고 있다. 이들이 사회 문제화하지 않을까 우려도 크다. ‘고도 오지’나 ‘탕핑’은 빠른 성장에서 도태되는 보통 사람들의 자조적 태도를 대변하는 것일까?
무기력해진 우리 사회를 돌아보며 두 가지를 생각해 본다. 첫째, 열심히 살 동기가 없다는 것은 ‘꿈’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을 좇아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개개인으로서 몰입해 좇을 수 있는 목표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에는 나아가야 할 비전을 제시하는 이가 필요하다. 꿈을 꾸는 사람이 필요하다. 리더는 빌더(builder)이기도 하지만 드리머(dreamer)이기도 하다.
둘째, 열심히 살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목표가 혹은 꿈이 달성하기에 너무 요원하다는 것일 수 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두 명의 흙수저가 결혼하면 자기 자식에게 흙수저의 지위를 대물림할 뿐인 현실 자각이 있기 때문이다. 초고령화 사회로 들어서면서 인구 감소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디지털시대 선도국가 또는 글로벌 선진국과 같은 꿈은 어딘지 모르게 멀게 느껴진다.
이 이야기를 그대로 우리의 산업·통상정책으로 가져와 보자. 예전에는 ‘잘살기 위해 고가의 수입 부품을 국산으로 대체해 보자’ ‘수출을 늘려 일자리도 창출하고 기업을 일으켜 보자’ ‘일본을 넘어 세계 최초로 8인치 웨이퍼 개발로 반도체산업에서의 주도권을 잡아보자’ 등과 같은 구체적인 지향점이 제시됐다. 하지만 요즘에는 우리가 공감할 수 있고 흥분할 수 있는 꿈과 목표가 우리에게 부족하다. 과거에는 우리보다 잘사는 선진국을 좇아가는 것이 우리의 꿈이고 목표였지만 지금은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지 다소 분명하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우리의 산업·통상정책을 봐도 무언가 집중할 수 있는 목표가 제시되고 있다기보다 오래전 방식의 숫자를 제시한 슬로건이 보인다. ‘수출 1조달러 달성’ ‘일자리 몇십만 개 창출’. 어딘지 무의미하고 건조하다. 수출을 늘리고, 반도체 인력을 양성하고, 디지털 전환과 그린 전환을 서두르겠다고 하나 다소 공허하다. 연금과 노동 그리고 교육 분야에서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하지만, 구체적이고 실현할 수 있는 로드맵이 부족하다. “다 함께 이뤄 보자”라기보다 “글쎄 그게 되겠어?”라는 불신이 더 많은 듯하다. 대다수 사람이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꿈을 꾸고, 실현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우고, 달성해 내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과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면서 관련된 주체들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던 역동적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중에서 꿈을 꾸는 것과 목표를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사람들을 열심히 움직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한 표가 중요한 상황이고, 정부는 5년의 단임 정권 내에서 성과를 내려 하니 꿈을 꿀 수 없고, 기업은 돈을 벌기에 바쁘다. 학자와 연구자는 “너나 잘하세요”와 같은 조롱을 받을까 몸을 사린다. 조금 긴 호흡으로 꿈을 꿀 수 있는 그리고 단계적 목표를 세울 수 있는 사람들을 길러낼 수 있는 사회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