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증시가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미국 대선발(發) 뉴스에 요동치고 있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커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이 나올 때마다 시장이 반응하는 데다 조 바이든 행정부도 대중 무역 제재 강화 등 선거를 겨냥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트럼프’ 겹악재 싸인 반도체

'두 입'에 글로벌 반도체 시총 700兆 날아가…일각선 "피크아웃"
18일 아시아 주요 증시와 전날 뉴욕증시를 뒤흔든 건 미국 정부가 반도체 산업에서 중국에 대한 제재를 강화할 계획이라는 블룸버그통신의 보도였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동맹국 반도체 업체가 중국의 첨단 반도체 기술 접근을 계속 허용하면 가장 엄격한 무역 제한 조치를 시행할 전망이다. 동맹국들이 자체적으로 대중국 제재를 강화하지 않으면 미국이 나설 수도 있다는 일종의 사전 경고다. 이 때문에 매출에서 중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50% 안팎인 네덜란드 ASML과 일본 도쿄일렉트론 주가가 급락했다. 전날 네덜란드 주식시장에서 ASML 주가는 2020년 3월 이후 가장 큰 폭인 11% 하락하며 870.90유로로 장을 마쳤다. 427억유로(약 64조4390억원)가량의 시장 가치가 증발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도 반도체주에 부담을 줬다. 전날 트럼프 전 대통령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대만이 미국에 방위비를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대만이 미국 반도체 사업의 100%를 가져갔다고 비판했다. CNBC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은 11월 대선에서 승리했을 때 중국의 공격이 있으면 대만을 방어하겠다는 미국의 약속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며 반도체 주가는 급락했다. 17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가 전 거래일보다 6.81% 급락하며 반도체주 시가총액이 5000억달러 증발했다. 마켓워치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20년 3월 이후 미국 증시에 닥친 ‘최악의 하루’”라고 평가했다.

○변동폭 커지는 증시

반도체주 급락은 일시적인 주가 조정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기업 호실적 발표가 잇따르고 있어 반등할 여력이 충분하다는 관측도 있다. 이날 TSMC는 올해 2분기(4~6월) 순이익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36% 증가한 2478억대만달러(약 10조5000억원)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블룸버그 전망치 2350억대만달러를 웃도는 결과다. TSMC는 올해 3분기 매출이 작년 동기(173억달러) 대비 최대 34% 늘어난 224억~232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정치적인 변수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11월 미국 대선이 다가올수록 증시 변동폭이 확대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 역시 점차 커지는 움직임이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 이후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이 무역과 국가안보 개념을 정치화했다”고 지적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이날 중국군이 1주일 이내에 지상 부대를 대만에 상륙시킬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일본 정부가 분석했다고 보도했다. 기관투자가들은 ASML의 대중국 수출 증가가 미국과 네덜란드 정부 간 외교적 긴장까지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시장 전문가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반도체 동맹에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엔비디아로 대표되는 기술주가 지속적으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스콧 부르너 골드만삭스 글로벌마켓 전무는 “미국 증시 조정은 이제 시작 단계”라며 “이날을 기점으로 증시가 조정을 위한 주요 전환점을 맞았다”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