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철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18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사진=허세민 기자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18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사진=허세민 기자
지난 4월 총선에서 국민의힘 저출생 공약을 설계한 홍석철(사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고령화 속도가 빠른 한국에선 현행 의료시스템이 지속될 수 없다”며 “의대 정원을 늘리고 의사들의 독점적 권한을 간호사 등 다른 직역에 개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령화로 의료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만큼 의사 공급을 늘려 서비스 가격을 낮추고 건강보험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얘기다. 총선 전까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상임위원을 역임한 그는 인구 문제에 앞서 보건의료 분야의 국내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홍 교수는 18일 서울대학교 연구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한국 의료시스템의 미래와 과제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홍 교수는 인구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선 의대 증원을 넘어 구조적인 의료 공급 확대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의료계는 건강이라는 용어만 들어가면 의사들만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칸막이를 치지만 비의료인도 자격만 있다면 영양, 운동관리 등의 분야를 맡을 수 있다”며 “의료 역할의 유연성을 높여야 의사 부족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증·만성질환은 비대면 진료로 관리하고, 디지털 헬스케어 등 의료 기술을 혁신하는 것도 의료 공급 확대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홍 교수는 유례없는 속도의 저출산·고령화가 건보 재정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2070년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이 50%에 달할 정도로 고령화 속도가 빠르다”며 “고령화로 늘어나는 건보 지출은 매년 2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러면서 “건보 적자를 감당하기 위해선 8%로 묶인 건보료율 법정 상한을 높이고 국고 지원을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며 “건보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고자산가 노인에게 더 많은 건보료를 걷는 미래도 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생애 마지막을 보내는 방법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에 따르면 사망 한 달 전 연명치료 등에 투입되는 의료비는 생애 의료비 지출의 12.5%에 달한다. 그는 “생명 연장도 중요하지만 극도로 비효율적인 영역에 과도한 의료비 지출이 이어지면 남은 가족이 고통받고 사회적으로도 큰 부담”이라며 “이런 영역에 대한 고민을 통해 의료비 지출을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출산율 반등을 위해선 대기업 규제 완화 등 구조개혁이 수반돼야 한다고 홍 교수는 역설했다. 전체 근로자의 85%를 고용하고 있는 중소기업이 저출생 대책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진입하는 순간 적용받는 규제를 풀어줘야 급변하는 인구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고 했다.

홍 교수는 신설 예정인 인구전략기획부와 관련해 “국민과의 소통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좋은 저출생 정책을 발굴할 수 있다”며 “특별회계로 별도 재원을 마련해야 재정당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적극적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허세민/황정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