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 6월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국민의힘 당 대표 출마 선언을 마친 뒤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사진=뉴스1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 6월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국민의힘 당 대표 출마 선언을 마친 뒤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사진=뉴스1
한동훈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가 '나경원 후보 패스트트랙 공소 취소 청탁' 폭로 논란으로 뼈아픈 실점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 가운데, 한 후보의 지지자들은 한 후보가 전격적으로 사과한 데 대해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신선한 정치인은 처음"이라며 오히려 한 후보를 일제히 치켜세우는 모습이 포착됐다. 나 후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강성 지지층인 '개딸'과 한 후보의 팬덤이 닮아보인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19일 정치권에 따르면 한 후보가 폭로 논란 이후 사과한 뒤 한 후보의 '정치 팬덤'으로 불리는 네이버 카페 '위드후니'에는 한 후보의 사과를 극찬하는 게시물들이 쇄도하고 있다. "'유감'이 아닌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정치인은 처음 봤다", "실수를 이렇게 사과하는 신선한 정치인 본 적 있나", "사과는 저렇게 하는 것이다. 군더더기 없이 얼마나 깔끔한가", "정치 신인이라고 하는데, 중고 정치인들이 보고 배워라" 등의 반응이었다. 관련 보도에도 한 후보의 지지자로 추정되는 네티즌들은 비슷한 취지의 댓글을 달았다.

한 후보 캠프의 정광재 대변인도 전날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상당히 아쉬운 발언이었지만, 더 놀라운 것은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재빠르게 사과하고 신속하게 사과하는 건 새로운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치인의 사과는 타이밍과 진정성에 달려 있다"며 "배경과 동기가 어찌 됐건 한 후보의 이번 사과는 속이 시원한 면이 있었다"고 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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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논란의 당사자인 나 후보는 정반대의 평가를 내놨다. 나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한 후보의 사과에는 진정성도 진실됨도 없었다"며 "본인이 궁지에 몰리고 불리하면 우발적으로 또는 계획적으로 누군가와의 사적 대화든 업무상 비밀이든 꺼내서 상황을 모면하려 하지 않겠냐"고 했다. 원희룡 후보도 "'가짜 사과'로 동료 의원과 당직자 등 당원들의 가슴을 후벼팠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원내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에 한 후보가 결국 고개를 숙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심이 움직일 수 있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한 후보가 당연히 사과해야 했다. 개인적 비리가 아니라 진영 대결에서 나온 문제에 대해 얘기한 것이기 때문에 사과하는 게 맞았다"면서도 "정치인의 사과는 빠르면 빠를수록, 조건을 달지 않을수록 좋기 때문에 한 후보의 사과는 잘한 사과라고 본다"고 했다.

신 교수는 다만 한 후보 팬덤의 두둔에 대해선 "나 후보가 라디오에 나와 민주당 강성 지지층인 '개딸'과 한 후보의 팬덤이 똑같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 상황에서의 팬덤의 평가는 설득력이 없다"고 했다. 나 후보는 전날 YTN 라디오 '신율의 뉴스정면승부'에서 한 후보의 팬덤에 대해 "우리 당의 전통적 당원과 매우 다른 행태를 보이고 있다. 문자 폭탄도 오고 별별 일이 다 있나 보더라"라면서 개딸과 상당히 닮아있다고 보인다고 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 선거 캠프 사무실 앞에 놓인 지지자들의 화환. / 사진=뉴스1
한동훈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 선거 캠프 사무실 앞에 놓인 지지자들의 화환. / 사진=뉴스1
앞서 한 후보는 지난 17일 CBS에서 열린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 토론회에서 나 후보에게 "본인의 패스트트랙 사건 공소 취소를 부탁한 적 있지 않으냐"고 했다. 2019년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태'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이던 나 후보는 특수공무집행 방해 등 혐의로 재판받고 있는데, 한 후보가 법무부 장관 재직 시절 나 후보가 이 사건의 공소 취소를 청탁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이후 당내에서 원내·외와 계파를 가리지 않고 한 후보를 향해 일제히 비판이 쏟아지자, 한 후보는 결국 사과했다. 그는 전날 페이스북에서 "신중하지 못했던 점 죄송하게 생각한다. 법무부 장관이 개별사건에 개입할 수 없다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예시로서 나온 사전에 준비되지 않은 말이었다"면서 "당 대표가 되면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 재판에 대한 법률적 지원을 강화하고, 여야의 대승적 재발 방지 약속 및 상호 처벌불원 방안도 검토, 추진하겠다"고 했다. 기자들과 만나서도 "말하고 아차 했다. 이 얘기를 괜히 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한편, 정치인들이 "죄송하다"고 빠르게 사과하는 모습을 좀처럼 보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정적(政敵)들의 공격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 사과가 미칠 영향에 대한 정무적 판단에 상당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단,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정치인은 처음 본다"는 한 후보 지지자들의 주장은 개인적인 감상일 뿐 사실이 아니다. 일례로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이던 2022년 1월, 김건희 여사가 유승민 전 의원과 홍준표 대구시장도 '굿'을 했다는 취지로 발언한 데 대해 "늘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