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비버리힐스에서 열린 '밀컨 컨퍼런스 2024'에 참석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REUTERS
지난 5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비버리힐스에서 열린 '밀컨 컨퍼런스 2024'에 참석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REUTERS
“연내 LG에너지솔루션보다 생산 비용을 낮추지 못하면 4680 배터리 사업을 접겠다.”

최근 시장에선 테슬라의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놓고 암울한 루머가 돌고 있습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미국 IT 매체 더인포메이션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배터리 팀에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며 “그가 올해 안에 4680 배터리의 성능과 비용면에서 획기적인 개선이 없다면 사업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고 내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 보도했습니다. 머스크가 배터리 팀에 사실상 최후통첩을 했다는 얘기입니다.
테슬라 차량에 탑재되는 원통형 배터리. 1865는 초창기 배터리, 2170은 현재 모델S·X·3·Y에 들어가며 4680은 사이버트럭에 장착된다. /파나소닉
테슬라 차량에 탑재되는 원통형 배터리. 1865는 초창기 배터리, 2170은 현재 모델S·X·3·Y에 들어가며 4680은 사이버트럭에 장착된다. /파나소닉
4680 배터리는 테슬라가 2020년 ‘배터리 데이’ 행사에서 처음 발표한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지름 46㎜·높이 80㎜)입니다. 테슬라가 기존에 쓰던 2170 배터리(지름 21㎜·높이 70㎜)보다 셀 크기를 키웠습니다. 쉽게 말해 일상에서 쓰는 AA 건전지의 사이즈를 확 늘린 겁니다. 물론 제조 난도엔 엄청난 격차가 있습니다.

테슬라는 이 원통형 배터리 수백 개를 모아 하나의 배터리팩을 만들어 전기차 하부에 장착합니다. 초창기 전기차 로드스터를 만들 때부터 계속 이어진 제작 방식입니다. 테슬라는 4680 배터리로 에너지 밀도를 높이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4680 배터리는 지난해 출시한 사이버트럭에 적용 중입니다.
테슬라 기가 텍사스에서 생산한 일부 모델Y에는 4680 배터리팩이 탑재됐다. /테슬라
테슬라 기가 텍사스에서 생산한 일부 모델Y에는 4680 배터리팩이 탑재됐다. /테슬라

배터리 건식 전극이 뭐길래

조금 더 기술적 얘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2020년 테슬라는 4680 배터리를 공개하며 한 가지 기술을 더 소개했습니다. 바로 ‘건식 전극(Dry Electrode)’ 공정입니다. 테슬라는 2019년 맥스웰테크놀로지라는 스타트업을 인수해 이 기술을 확보했습니다.

배터리 제조는 기본적으로 ‘습식 전극(Wet Electrode)’ 공정을 씁니다. 습식 공정은 양극과 음극에 액체 용매를 투입해 200도 이상 고온에서 건조하기 때문에 막대한 전력이 필요합니다. 반면 건식 공정은 액체 용매를 사용하지 않아 친환경적이고 생산비용을 대폭 낮출 수 있습니다.

배터리 업계에선 건식 전극이 기존 전력 소비량의 30%, 제조 비용의 17~30%를 절감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머스크 역시 배터리 데이 당시 ‘반값 배터리’를 생산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기술이 있는데 배터리 업계는 왜 여전히 습식 전극 공정을 활용하고 있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건식 전극이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제조업은 양산을 얼마나 제대로 해낼 수 있느냐에 달린 싸움입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수율(완성된 양품의 비율)이 높지 않다면 생산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지요. 습식 공정은 표준화된 기술로 수율이 안정적입니다.
테슬라의 4680 배터리 생산 라인. /테슬라
테슬라의 4680 배터리 생산 라인. /테슬라

테슬라 배터리 팀 대규모 구조조정

테슬라는 이 건식 공정에서 벽에 부딪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배터리엔 음극과 양극이 있지요. 업계에 따르면 현재 테슬라의 4680 배터리는 음극에만 건식 전극을 도입하고, 양극엔 여전히 LG에너지솔루션과 중국 배터리 2개 업체에서 구입한 습식 전극을 사용 중입니다. 완전한 건식 전극을 적용하지 못하고 절충안을 택한 겁니다. 건식 공정의 수율이 좀처럼 올라오지 못한 게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이 회사는 텍사스 기가 팩토리에서 4680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테슬라는 일주일간 사이버트럭 1000대에 탑재할 4680 배터리를 제조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습니다. 한 달에 약 4000대 분량이라는 얘기입니다. 당초 테슬라가 계획한 연간 25만대 사이버트럭을 만들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량입니다(물론 사이버트럭 차량 생산량이 이 정도까지 올라오진 않았습니다). 4680 배터리는 향후 세미 트럭에도 탑재할 예정이기 양산이 시급합니다.
지난 3월 테슬라는 일주일간 사이버트럭 1000대에 탑재할 4680 배터리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기가 텍사스 직원들이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테슬라
지난 3월 테슬라는 일주일간 사이버트럭 1000대에 탑재할 4680 배터리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기가 텍사스 직원들이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테슬라
중국 매체 레이트포스트에 따르면 4680 배터리는 비용 측면에서도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이 매체는 테슬라 전 배터리 팀 직원의 말을 인용해 “잭 커크혼 전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배터리 사업 책임자였던 드루 바글리노 전 수석부사장을 비용 문제로 질책하곤 했다”며 “테슬라가 건식 양극 장비를 소량만 보유해 이 장비가 고장 날 때마다 수리에 최소 45일이 걸렸다”고 전했습니다.

4680 배터리 발표 후 4년이 흘렀는데도 양산이 본궤도에 오로지 못하니 머스크로선 답답할 노릇이었겠지요. 레이트포스트는 테슬라가 지난 4월 대규모 정리해고 당시 배터리 소재 사업부는 직원 절반을, 4680 사업부는 직원 20% 이상을 해고해 800명만 남았다고 보도했습니다. 바글리노 역시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20년 테슬라 '배터리 데이' 행사에서 4680 배터리를 발표하고 있는 드루 바글리노 전 수석 부사장(왼쪽)과 일론 머스크 CEO. /테슬라
2020년 테슬라 '배터리 데이' 행사에서 4680 배터리를 발표하고 있는 드루 바글리노 전 수석 부사장(왼쪽)과 일론 머스크 CEO. /테슬라

LG엔솔 “2028년 건식 공정 양산”

지난 4일 김제영 LG에너지솔루션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오는 4분기에 건식 코팅 공정을 위한 시험용 생산 라인을 완공하고, 2028년 본격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건식 공정은 LG에너지솔루션이 10년 전 시작해 경쟁업체 중 최고”라며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이 회사는 오는 8월 충북 오창 공장에서 4680 배터리의 양산에 돌입할 예정입니다. 기존 습식 공정을 활용한 제품입니다. 이 배터리는 모두 테슬라에 납품될 예정입니다. 머스크가 연내 LG에너지솔루션보다 비용을 낮추지 못하면 배터리 사업을 접겠다고 밝힌 이유겠지요. 그는 극도로 효율을 중시하는 CEO입니다. 납품업체보다 싸고 빠르게 만들지 못한다면 사업부의 존재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충북 오창 공장 전경. 이 회사는 오는 8월 4680 배터리를 양산할 계획이다. /한경DB
LG에너지솔루션의 충북 오창 공장 전경. 이 회사는 오는 8월 4680 배터리를 양산할 계획이다. /한경DB
머스크의 발언은 단순 경고로 볼 수 없습니다. 테슬라 충전망 확장을 담당하던 슈퍼차저 네트워크 팀이 지난 구조조정에서 500명 전원 해고된 사례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배터리 사업부도 이대로 존폐 위기를 맞는 걸까요. 지난 16일 레이트포스트는 테슬라 내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최근 배터리 팀이 건식 공정에서 획기적 진전을 이뤘고 연내 생산에 돌입할 계획이라고 전했습니다.

사실이라면 반가운 뉴스겠지요. 하지만 테슬라가 지난 4년간 애를 먹었던 건식 공정에서 갑자기 돌파구를 찾았다는 보도를 100% 신뢰하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테슬라가 4680 배터리의 자체 양산에 성공할지, LG에너지솔루션 등 배터리 업체에 전량 외주를 맡기는 방향으로 전환할지는 연말까지 지켜볼 일입니다.

▶‘테슬람이 간다’는
‘모빌리티 & AI 혁명’을 이끄는 혁신기업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X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백수전 기자 jer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