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근 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가 기도 환자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제공
권성근 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가 기도 환자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제공
올해 5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후두학회 학술대회. 후두질환 분야 최고 연구 실적을 낸 의사에게 수여하는 ‘카셀베리상’ 주인공은 권성근 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사진)였다. 권 교수는 2018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이 상을 받았다. 이 상을 두 번 받은 의사는 세계적으로도 권 교수를 포함해 세 명뿐이다.

○숨길 막힌 환자에게 새 숨 넣어주는 의사

'숨길 막힌' 아이들에 새 숨결…전국 소아 기도 환자 70% 치료
갑상샘암과 기도폐쇄, 성대·후두 질환을 주로 진료하는 권 교수는 숨길에 문제가 생겨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새 숨을 불어넣어 주는 의사다. 다양한 이유로 목소리가 변한 성인 환자들에겐 소리를 찾아주는 의사이기도 하다.

목에는 음식이 지나는 식도와 공기가 오가는 기도가 있다. 이들이 잘 분리돼야 음식이 공기구멍으로 잘못 들어가지 않고 호흡도 원활하게 할 수 있다. 선천적 이유 등으로 기도가 막히거나 좁아져 협착이 생긴 아이들은 갈 수 있는 병원이 많지 않다. 소아 질환을 전문적으로 보는 의료기관이 드문 데다 내시경 등을 이용해 아이들의 기도 상태를 평가하는 것도 쉽지 않아서다.

아이들 기도 질환은 다양한 원인 탓에 생긴다. 심장 폐 등의 기형으로 생기기도 하고 두개골이 잘못 형성돼 발생하기도 한다. 뇌, 근육 등에 복합질환이 있는 아이도 많다. 국내에서 이를 치료하는 복합치료 시스템을 갖춘 병원은 많지 않다. 서울대 어린이병원은 이런 환자들에겐 ‘최후의 보루’다. 권 교수는 전국 각지에서 발생하는 소아 기도 환자의 60~70% 정도를 책임지고 있다.

○새 수술법 고안해 부작용 위험 줄여

후두는 성대를 포함한 기도 윗부분이다. 권 교수가 돌보는 아이들은 기관지·후두 연골이 말랑말랑해져 숨길이 막히는 연화증, 후두의 성문 아랫부분이 좁거나 막힌 성문하협착증 등을 많이 앓는다. 이들을 수술할 땐 최대한 빠른 시간에 마무리하는 게 중요하다. 아이들은 폐가 담아낼 수 있는 산소량이 적기 때문에 수술 시간이 길어지면 뇌 손상 등 다른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과거엔 이런 수술을 할 때 기관지 부분에 관을 넣어 중간중간 산소를 넣어줬다. 산소포화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은 막을 수 있지만 제한된 시간에 기관 삽관을 반복해야 해 추가 출혈이나 주변부 손상 위험이 높다는 게 부담이었다.

권 교수는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들과 함께 기관 삽관 없이 코쪽으로 고유량의 산소를 넣어주는 방식을 2017년 세계 처음으로 소아 수술에 도입했다. 통상 산소마스크를 활용하면 분당 10L 정도 산소를 넣을 수 있지만 새로 고안한 방식으론 60~70L까지 공급할 수 있다. 그는 “많은 양의 산소를 넣어주면 레이저를 쐈을 때 불이 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500건 넘게 수술하는 동안 그런 문제는 없었다”고 했다.

기도로 땅콩 등 이물이 들어간 아이들도 권 교수의 단골손님이다. 아이의 생사에 직접 영향을 주는 수술이지만 이를 하는 의사는 점차 줄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표면이 미끌미끌한 땅콩을 잘 잡는 게 쉽지 않아요. 빼내다가 깨져 떨어지면 응급 상황이 될 수 있죠. 수술 보조 의사, 마취과 의사, 수술장 간호사 등이 참여하는 데다 내시경 장비 구축에만 1억원이 들지만 수술 수가(건강보험 진료비)는 18만원에 불과합니다. 이런 수술을 포기하는 병원이 증가하면서 서울대병원을 찾는 환자는 더욱 늘고 있죠.”

○줄기세포 활용해 성대 재건 연구도

권 교수는 후두 협착이 생긴 성인 환자, 인유두종바이러스(HPV) 감염으로 후두 등에 거대한 혹이 생긴 환자 수술도 많이 집도한다. 두 차례 카셀베리상을 안겨준 기반 연구도 ‘성대 노화’에 관한 것이다. 그는 “성대가 노화해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 사회생활에 불편을 겪고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줄기세포를 활용해 성대의 제일 아래층에 있는 근육층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했다.

2018년 1~2분에 불과한 성대 근육 줄기세포 성장인자 반감기를 늘려 7주가량 방출하는 하이드로겔 기술을 개발했다. 올해엔 난치성 기관 협착 환자의 기도를 재건할 때 3차원(3D) 줄기세포 덩어리(스페로이드)를 활용하면 기도 형태가 잘 유지되고 기도 점막도 빠르게 재생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스페로이드를 고르게 만드는 표준화를 이룬 게 또 다른 성과다. 방사선 치료 후 침샘이 망가져 불편을 겪는 암 환자를 위한 인공 타액도 개발하고 있다.

그가 돌보는 소아 환자 중엔 태어날 때부터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살아가는 아이가 많다. 이런 아이들이 호흡기를 떼고 스스로 숨쉬게 되는 것이 권 교수에겐 가장 큰 보람이다. 그는 퇴원하는 아이들에게 직접 손 편지를 써준다. 힘들고 낯선 병원 생활을 함께 잘 이겨내줘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다.

“병원에서 아이 호흡에 문제가 있다는 얘길 들어도 기관절개 등 치료에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부모님이 많아요. 부작용이 고민되겠지만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시술하는 게 좋습니다. 성인들은 목소리에 좀 더 신경 써야 합니다. 갑자기 목소리가 허스키하게 변해 3주 이상 지속된다면 암 신호일 수 있기 때문에 병원을 찾아야 합니다.”

이지현 기자

■ 약력

1996년 서울대의대 졸업
2013년~ 서울대병원 교수
2018·2024년 미국후두학회 카셀베리상 수상
2016·2019년 미국기관식도학회 브로일즈 말로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