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무리수 제재'로 세금낭비 논란 부른 공정위
지난 18일 공정거래위원회가 급하게 언론 브리핑을 열었다. 공정위가 내린 시정 조치에 기업이 반발하며 제기한 소송에서 공정위가 패소하는 일이 잦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이를 해명하는 브리핑을 한 것이다. 브리핑의 핵심은 ‘상반기 공정위의 행정 소송 최종 승소율은 90.7%(일부 승소 포함)에 달한다’는 내용이었다. 공정위는 이달에만 이런 내용의 해명 자료를 두 차례나 발표했다. 이날 브리핑 직후 곳곳에서 “똑같은 내용을 왜 굳이 브리핑하는지 모르겠다”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언론이 공정위에 대해 비판 의견을 내는 건 승소율 때문이 아니다. 최근 굵직한 사건에서 공정위의 패소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지난 1월 서울고등법원이 ‘SK실트론 사익편취 의혹’과 ‘SPC그룹의 계열사 부당 지원’에 대한 공정위 제재를 취소하라고 판결한 게 대표적이다. SK실트론 사건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분 인수를 지시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음에도 사익을 편취했다고 판단을 내려 당시에도 부실 조사라는 지적이 많았다.

공정위 제재가 취소되면 부과한 과징금뿐만 아니라 이자(환급가산금)까지 얹어줘야 한다. 이 때문에 무리한 제재로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패소로 소요된 세금도 적지 않다.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했다가 소송 패소 등으로 2015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기업에 돌려준 금액은 약 1조2596억원. 이 중 환급가산금만 1149억원에 달한다.

법조계에선 최근 내려진 공정위 제재 중 상당수가 법원에서 뒤집힐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최근 공정위 제재 수위가 부쩍 높아지고 있어서다. 공정위는 지난달 쿠팡이 알고리즘 조작으로 자체브랜드(PB) 상품을 검색 상단에 노출했다는 혐의로 1400억원이라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가 단일 유통기업에 부과한 과징금 중 최대 규모다. 공정위는 법리대로 처리했다고 하지만, 외부에선 ‘쿠팡이 그동안 공정위에 지나치게 각을 세워 밉보인 결과’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언론이 계속 같은 문제를 제기하는 건 사안이 엄중하고 경제 활동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해명자료를 읽지 않아서나 팩트를 잘 몰라서가 아니다. 공정위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다. 적은 인력으로도 잘 싸우고 있는 ‘공’은 보지 않고 ‘과’만 부각하기 때문이다. 언론이 유독 공정위를 강도 높게 감시하는 이유는 공정위의 처분이 다른 행정기관 처분과 달리 1심 효력을 갖기 때문이다. 기업이 관(官)을 상대로 수년씩 재판에서 다투면서 안는 심리적·재무적 부담을 감안한다면 그 판단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도 모자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