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해설가가 된 안은영 작가와 아홉 누에의 동거 일기
"누에의 무해한 삶에 전율이"…책 '안녕, 나의 아름다운 미물들'
누에 '집사'가 된 건 우연이었다.

어느 날, 숲 해설가인 저자에게 동료가 누에나방 애벌레가 든 상자를 내밀었다.

아이들에게 누에 한살이를 체험하게 해주라는 제안과 함께. 애벌레 양육은 팔자에도 없는 일이었지만, 이파리 한장을 나눠 먹으며 "무해한, 최소한의 삶"을 사는 존재에 그만 반하고 말았다.

그는 어느새 뽕잎을 뜯으러 다니는 '심마니'가 됐고 아홉 누에에게 이름까지 붙여줬다.

스스로를 '누에 광인'이라 칭했다.

책 '안녕, 나의 아름다운 미물들'은 아홉 누에와 동거한 집사의 관찰 일기다.

언론인 출신으로 '여자생활백서' 등을 쓴 작가이자 숲 해설가로 변신한 안은영 씨의 첫 자연 에세이다.

누에는 누에나방의 애벌레로, 흔히들 누에의 고치에서 뽑는 명주실이나 간식으로 먹는 번데기를 연상한다.

티끌 같은 생명체에 몰두하는 작가의 모습은 눈을 둘 곳이 많은 시대에 생경하기까지 하다.

작가에 따르면 누에는 봄누에와 가을누에로 나뉜다.

봄누에의 한살이는 6~7월, 가을누에의 한살이는 8월 말~10월이다.

작가는 총 세 차례 누에를 길렀는데, 책은 첫 누에를 만난 2022년 초여름의 기록이다.

"누에의 무해한 삶에 전율이"…책 '안녕, 나의 아름다운 미물들'
누에는 애벌레 기간 네 번 탈피한다.

부화 직후부터 1회 탈피까지를 1령(齡)이라 한다.

마지막 5령에 이르면 애벌레 시기를 끝낸다.

그 사이 바닥을 기고 뽕잎을 갉고 배설하는 게 누에가 하는 일의 전부다.

그러고는 곡기를 끊고 입에서 실을 뽑아내 타원형의 고치를 지어 들어간다.

번데기에서 변신과 탈피의 과정을 거치고 성충인 나방이 되어 나온다.

애벌레에서 누에나방의 삶을 마치고 소멸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50일가량이다.

작가는 성장 속도에 따라 누에가 이파리를 갉아 먹는 크기, 고개를 움직이는 반경, 잠에 빠져드는 모습까지 독자가 직관하듯 세밀하게 그려낸다.

'전지적 누에 시점'으로 직접 코멘트를 달고 그린 삽화는 누에를 의인화한 느낌을 안긴다.

그는 냉기를 식힌 뽕잎을 찢어주고, 핀셋으로 먹이를 주고, 세균에 감염되거나 습기로 인해 낙오되지 않도록 살뜰히 살핀다.

양육의 시간을 거친 뒤 고치 시기부터는 응원의 시간을 보낸다.

빛을 좋아하는 나방에게는 지구본 램프도 선물한다.

누에나방의 한살이를 통해 작가는 일상과 가치관의 변화를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그는 "(누에는) 필요한 만큼만 먹고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누에 애벌레에게는 탐욕과 경쟁이 없다.

자신의 부피생장에만 집중한다.

아무리 하찮은 존재라도 자기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이토록 신실하다"고 깨닫는다.

그러면서 "작고 하찮은 존재에게서 받는 감동은 일상적이지 않아서 더 전율이 크다"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의 생명으로 세상에 나와 소멸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간다는 삶의 준엄한 질서를 배웠다.

(중략) 그런 의미에서 누에나방은 나에게 미물이면서 영물이기도 했다.

"
메디치미디어. 240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