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고가를 경신한 서울 송파구 신천동 ‘파크리오’ 전경. 사진=한경DB
최근 신고가를 경신한 서울 송파구 신천동 ‘파크리오’ 전경. 사진=한경DB
서울 강남과 마포 등 지역에서 아파트 신고가 거래가 잇따르며 부동산 시장 열기가 더해지고 있다. 정부가 주택 공급대책을 발표하며 시장 과열 시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정작 집주인들은 정부의 발표를 근거로 집값 상승을 확신하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 각지서 신고가 속출…정부 공급대책 '역효과'

23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주택 공급대책 발표 이후에도 서울 각지에서 신고가 거래가 속출하고 있다. 송파구 신천동 '파크리오' 전용 59㎡는 지난 20일 20억5000만원에 계약됐다. 집값 상승기이던 2021년 10월 기록한 이전 최고가 20억원을 2년 9개월 만에 넘어섰다.

신천동 개업중개사는 "지난달부터 거래가 대폭 늘면서 전고점에 근접한 상태였다가 지난 주말 신고가를 경신했다"며 "정부 발표가 나온 이후로는 집주인들이 호가를 더 높이고, 매수인들도 높아진 가격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같은 날 강남구 도곡동 '도곡렉슬' 전용 59㎡도 24억7000만원에 손바뀜돼 신고가를 썼다. 이전 최고가는 2021년 10월 24억6000만원이었다. 마포구 염리동 '마포프레스티지자이' 전용 84㎡도 20억6000만원에 거래돼 2020년 12월 기록한 직전 고가 20억원을 넘어섰다.

일선 개업중개사들은 신고가 거래의 배경으로 정부의 주택 공급대책을 꼽았다. 정부는 지난 18일 10개월 만에 부동산 관계 장관회의를 열고 인천 계양, 부천 대장, 고양 창릉 등 3기 신도시를 중심으로 2029년까지 23만6000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아파트 매매가 추이가 걸려 있다. 사진=뉴스1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아파트 매매가 추이가 걸려 있다. 사진=뉴스1
이 자리에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주택가격 상승세가 투기적 수요로 이어지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겠다"며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시장 과열이 나타난다면 특단의 조치도 강구하겠다"고 경고했다.

최근 수도권 아파트 가격 상승을 두고는 △전세 사기 여파로 인한 아파트 쏠림 현상 △금리인하 기대감 △공급 불안 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하면서도 "시장 전반적인 과열 움직임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내놨다.

정부의 발표를 두고 도곡동 개업중개사는 "많은 이들이 향후 수년간 서울, 그리고 강남엔 아파트 공급이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염리동 개업중개사도 "그동안은 집값 상승세를 두고 의구심을 표하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며 "이번 정부 발표를 통해 시장에 서울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확신이 퍼진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권 집값 상승세, 수도권으로도 확산할 것"

전문가들도 이번 대책이 집값 상승을 유도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서울 아파트 공급 방안이 빠졌기 때문이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서울에서 패닉바잉이 시작된 것은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라며 "올해만 하더라도 분양 예정 물량 가운데 실제 분양으로 이어진 물량은 절반에도 미치지 않고, 3년 뒤 주택공급을 예측하는 인허가와 착공 모두 낮다"고 비판했다.
본청약이 8개월 이상 연기된 3기 신도시 남양주왕숙 A1지구 모습. 사진=연합뉴스
본청약이 8개월 이상 연기된 3기 신도시 남양주왕숙 A1지구 모습. 사진=연합뉴스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도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서울의 살기 좋은 집'이라는 점을 간과했다"며 "당장 서울에 새 아파트가 없어 집값이 오르는 것인데, 정부가 향후 수년간 공급 부족이 계속될 것이라고 발표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공급 대책의 방점이 아직 조성되지 않은 3기 신도시에 찍힌 것도 공급 불안을 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사전청약 단지에서 사업이 취소되거나 본청약이 지연되는 등 차질을 빚는 곳이 늘어나고 있는 데다, 공사비 상승분이 반영되며 분양가도 비싸질 것으로 보이는 탓이다.

고준석 연세대 경영전문대 상남경영원 교수는 "지금 사지 않고 기다렸다가는 같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학습한 무주택자들이 2029년까지 기다릴 것이라 보긴 어렵다"고 비판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 역시 "분양가 인상 억제방안이 빠진 이번 대책으론 분양·청약시장에 대기하는 수요를 만들어 내긴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장기간 공급 부족이 예상됨에 따라 서울 인근 수도권 집값도 들썩일 전망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강남권 집값 상승세는 서울과 수도권으로 확산할 것"이라며 "강남이 전고점에 이르면 수도권을 포함한 서울 생활권에서는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