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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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최고법원이 독립전쟁 유공자 자녀에게 공직의 30%를 할당하는 제도를 일부 폐지하기로 했다. 반대 시위로 21일까지 최소 115명이 사망하는 등 소요사태가 극단적으로 치닫자 제도를 폐지해 시위대 달래기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방글라데시 최고 법원은 21일 전체 공직의 5%만을 독립유공자에게 할당하고, 93%에 달하는 공직은 능력에 따라 채용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2%는 소수 민족, 장애인들을 채용해야 한다는 방침을 내렸다. 논란이 된 법안은 공직의 3분의 1을 1971년 파키스탄을 상대로 벌인 독립전쟁에 참전한 유공자 자녀에게 할당한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법안은 2018년 반발 여론에 부딪혀 폐지됐지만 지난달 다카 고등법원이 폐지 무효를 결정하며 시위가 촉발됐다.

이번 시위의 주요 단체인 차별반대학생연합의 한 대표는 "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면서도 "정부가 우리의 요구를 반영하기 전까지 시위를 중단하지 않겠다"고 AFP에 말했다. 학생들은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한 공무원들이 사임하고, 투옥된 시위 참가자들이 석방될 때까지 시위를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다. 아랍 매체인 알자지라는 "학생들은 아사두자만 칸 내무부 장관과 오바이둘 콰데르 아와미 연맹당 사무총장의 사임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들은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라고 명령한 주요 인물로 꼽힌다"고 보도했다.

이번 시위는 방글라데시의 높은 실업률에 불만을 품은 대학생 등 청년층이 주도하며 지난 16일부터 본격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대는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가 자신의 지지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알자지라 등 주요 외신은 시위대가 국영 방송사 BTV와 경찰서 등에 불을 질렀고, 시위로 인해 수도 다카의 지하철도 마비됐다고 보도했다. 이 기간동안 중앙은행과 총리실 홈페이지도 해킹당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경찰과 군 병력까지 동원해 고무탄과 최루탄을 쏘는 등 강경진압으로 맞섰다. 군경은 장갑차로 시내를 순찰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18일에는 방글라데시 내 인터넷과 문자메시지 서비스가 중단됐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19일 밤 통행금지령을 내리고 22일은 임시공휴일로 선포했다.

청년 인구가 전체 인구의 약 20%를 차지하는 방글라데시에서 해당 법안은 청년들에게 큰 반발을 산 것으로 보인다. 영국 BBC 방송은 방글라데시의 대졸자는 고졸 및 중졸자보다도 실업률이 더 높은 상황이며, 약 1800만명의 방글라데시 청년이 실업 상태에 있다고 전했다. 전체 인구(1억7000만명)의 10%가 넘는 수준이다.

김세민 기자 unija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