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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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떠나는 '백만장자'가 몇 년째 계속 늘고 있습니다. 2022년에는 400명이 떠났는데 지난해에는 800명으로 두배 늘며 세계 7위로 올라섰습니다. 올해는 역대 최대인 1200명이 한국을 떠날 것으로 예측됩니다. 세계 순위는 4위로 올라섰습니다. 현재 전쟁을 치르고 있는 국가인 러시아보다도 심각한 상황입니다.

백만장자들은 앞으로 다가올 경제 위험을 미리 알려주는 ‘탄광의 카나리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떠나거나 새로 이주하는 국가는 미래 국가경쟁력에 광범위한 영향을 받습니다.

일단 경제환경이 우호적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변수가 되며, 이주하는 백만장자들은 자신의 자산과 함께 전문지식, 네트워크, 역동성을 가지고 이주해 이주 국가에 경제적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백만장자 순 유출 최다 국가. 사진=핸리&파트너스
백만장자 순 유출 최다 국가. 사진=핸리&파트너스
사람뿐 아니라 기업도 떠나고 있습니다. 미국 제조기업의 복귀를 지원하는 단체인 ‘리쇼어링 이니셔티브’는 지난 5일 발표한 2023년 연례보고서를 통해 미국에 새로 생긴 일자리 28만7299개 중 14%가 한국에서 나왔다고 분석했습니다. 한국은 일자리 기여도 세계 1위를 차지했습니다.

사람과 기업이 떠나면서 한국은 비어가고 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원가 절감을 위해 동남아로 공장을 옮기는 기업이 늘어났는데 최근에는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기술 기업들마저 보조금이 많은 미국과 유럽으로 떠나고 있습니다.

원가 절감 외에도 규제 때문에 이전하는 기업도 많습니다. 한국은 상속세가 세계 최고 수준이고 법인세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훌쩍 넘어섭니다. 세금에 포함되지 않는 부담금도 만만치 않습니다. 결국 기업에게는 한국을 떠나는 것이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합리적인 선택'인 셈입니다.
사진=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
사진=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
더 큰 문제는 반기업 정서입니다. 한국의 반기업 정서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입니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기업에 부정적인 인식을 하는 사람들의 비중은 절반이 훌쩍 넘어갑니다. 심지어 '기업이 망해야 국가가 산다'는 말도 안되는 인식도 퍼져 나가는 중입니다. 별다른 근거도 없이 기업을 적개심과 개혁의 대상으로 인식한다는 말입니다.

부동산 시장에서 ‘직주근접’보다 더 강력한 투자 격언은 없습니다. 주택시장에서 직장의 영향력은 상당합니다. 내 집 마련 조건에서 직주근접이 중요시되면서 주택 구매 여력이 큰 전문직, 연구직, 대기업 직장인 등이 많은 업무밀집지역의 주거 가치는 계속 올라갑니다.

반면 미래의 고급일자리가 줄어드는 지역의 주택가격은 하락할 가능성이 큽니다. 인구감소가 심화할수록 미래의 고급일자리가 많은 지역으로 인구가 쏠리는 사회적 증감이 중요해질 전망입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국내에서는 기업을 쫓아내는 일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어 황당할 따름입니다. 부산 사하구의 지역 향토기업인 YK스틸(예전 한보철강)은 결국 부산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국내 5위 철강 기업인 YK스틸을 따라서 450곳이 넘는 협력업체들도 부산을 떠날 것으로 보입니다. 약 4000명이 부산을 등지는 셈입니다.
YK스틸이 있는 부산시 사하구 일대 모습. 공단 앞에 들어선 아파트가 눈에 띈다. 사진=게티이미지
YK스틸이 있는 부산시 사하구 일대 모습. 공단 앞에 들어선 아파트가 눈에 띈다. 사진=게티이미지
부산시는 기업의 반대에도 공단 바로 앞에 3500가구 넘는 아파트가 들어서도록 했습니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집단민원도 시작됐습니다. 공단 바로 앞에 택지개발지구를 승인한 부산시도,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겠다는 민원도 말이 되질 않습니다.

부산시는 대기업을 유치하겠다며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대기업을 유치해 고급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매출이 1조원에 육박하는 향토기업을 내쫓는 도시로 대기업이 이전할리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부산의 젊은이들은 고급 일자리를 찾아 도시를 떠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부산에서 타지로 떠난 사람은 모두 1만1432명입니다. 이 가운데 20세에서 39세까지 인구가 6802명에 달합니다. 유출된 인구의 59.5%나 되는데, 부산을 떠난 사람의 10명 중 6명은 청년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상황에 기업을 내쫓는 부산시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단순히 아파트를 많이 지으면 인구가 늘어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건 엄청난 착각입니다. 수도권은 주택 수요가 많으니 시간이 지나면 공급이 곧 인구 증가로 귀결될 수 있지만, 주택 수요가 부족한 지방은 '제로섬 게임'이 됩니다.
도심 속의 빈 집 모습. 사진=게티이미지
도심 속의 빈 집 모습. 사진=게티이미지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면 어딘가에서는 빈집이 생깁니다. 일자리가 없으니 거주하려는 사람도 없는 탓입니다. 특히 젊은층은 일자리에 따라 언제든지 이동할 수 있습니다. 중장년층이나 노년층과 비교하면 지역에 대한 충성도 역시 낮습니다.

사람이 떠나고 기업도 버티지 못하는 도시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미래가 없는 지역에는 살고자 하는 사람이 더욱 줄어듭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가장 빠르고 간단한 방법은 좋은 기업을 유치하는 겁니다.

세계 모든 국가에서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지금 우리도 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조금 더 고민했으면 합니다. 이건 미래를 위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지금 당장의 내 일자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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