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환 한국아스트라제네카 대표(왼쪽)와 장민후 휴먼스케이프 대표가 레어노트 플랫폼을 시연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한국아스트라제네카 제공
전세환 한국아스트라제네카 대표(왼쪽)와 장민후 휴먼스케이프 대표가 레어노트 플랫폼을 시연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한국아스트라제네카 제공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통받던 2020년. 영국 아스트라제네카는 제약사의 본분에 충실했던 회사다. 돈 안 된다고 모두 손사래 쳤던 영국 옥스퍼드대의 코로나19 백신 생산을 맡았다. 미국 백신 기업들이 천문학적 수익을 내며 돈방석에 앉았을 때도 아스트라제네카는 저개발 국가 백신 공급에 집중했다. 희소질환도 마찬가지다. ‘단 한 명의 환자도 중요하다’는 기업 철학에 맞춰 2030년까지 4~5개 신약을 개발해 100개국 환자를 치료하는 게 목표다.

한국아스트라제네카는 지난달 희소질환자 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디지털헬스케어 기업 휴먼스케이프와 손잡았다. 전세환 한국아스트라제네카 대표는 22일 “제때 진단받지 못해 이곳저곳 떠도는 진단 방랑을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최장 16년간 병명 못 찾는 희소질환

AZ, 韓 스타트업과 희소질환 진단 돕는다
‘6.5년’. 국내에서 희소질환자가 자신의 병명을 찾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일부 환자는 16년 동안 병명도 모른 채 질환과 씨름한다. 희소질환을 진료하는 권역별 거점센터가 17곳 있지만 환자가 적은 데다 의사도 많지 않다.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조건도 까다로워 아직 치료 한계가 큰 분야다.

아스트라제네카는 2020년 미국 알렉시온을 42조원에 인수하면서 이 분야 역량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국내엔 유전자 돌연변이 탓에 뼈 형성이 제대로 되지 않는 ‘저인산효소증’, 면역계 이상으로 적혈구가 파괴돼 빈혈이 생기는 ‘비정형용혈성요독증후군’ 등을 위한 신약 5개를 공급하고 있다. 이 중 4개는 기존에 약이 없던 혁신 신약이다. 환자가 200명도 되지 않는 극희소질환자를 위한 신약도 공급하고 있다.

전 대표는 “희소질환자를 중심에 두고 실제 도움을 주는 솔루션을 찾아 최대한 빠르게 제공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조기 진단 돕고 치료 부담 낮춘다”

환자 중심 치료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두 회사의 협력도 이런 고민에서 시작됐다. 휴먼스케이프는 희소질환자 4만7000여 명이 가입한 플랫폼 ‘레어노트’와 임산부 플랫폼 ‘마미톡’을 운영하고 있다. 두 회사는 마미톡에 저인산효소증 영아를 확인할 수 있는 교육 정보부터 공유하기로 했다. 조기 진단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이 질환은 치료하지 않으면 환자 75%가 발병 5년 안에 숨진다. 제때 약을 투여하면 성인이 될 때까지 생활할 수 있다. 국내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아 치료받는 환자는 2명, 일본은 140여 명이다. 인구 100만 명당 건강보험 치료 환자는 미국 3.14명, 일본 1.17명, 한국 0.04명이다. 진단조차 받지 못하고 숨지는 아이가 많을 것이란 의미다.

글로벌 제약사와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힘을 합치면 검사 등이 필요할 때 환자에게 알려주고 각종 건강보험 서류 제출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장기적으론 휴먼스케이프의 글로벌 진출에 아스트라제네카가 지원하는 게 목표다. 장민후 휴먼스케이프 대표는 “희소질환자는 치료비 외에 교통비, 숙박비 등의 지출도 많다”며 “이를 돕기 위해 금융회사 등과 파트너십도 맺을 것”이라고 했다.

국내 환자들이 ‘골든타임’에 좋은 치료제를 부담 없이 쓰기 위해선 ‘신약 접근성’이 더 높아져야 한다. 전 대표는 “신약 혁신성을 인정하는 환경이 조성돼야 환자 치료 접근성을 높이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