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학로 소극장의 상징 ‘학전’을 30여 년간 운영하며 후배 예술인을 길러낸 가수 겸 연출가 고(故) 김민기 학전 대표.  연합뉴스
서울 대학로 소극장의 상징 ‘학전’을 30여 년간 운영하며 후배 예술인을 길러낸 가수 겸 연출가 고(故) 김민기 학전 대표. 연합뉴스
“민기 형. 귀천을 애도하며 어린이·청소년 연극에 사랑과 정성을 쏟은 그 뜻을, 잘 기억하고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이주영 어린이문화연대 상임대표)

“김민기 선생님의 헌신적인 노력과 예술 업적은 한국 연극계에 큰 흔적을 남겼습니다. 우리 연극인들은 선생님의 예술적 유산을 이어나가겠습니다.”(손정우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33년 동안 서울 대학로 소극장 ‘학전(學田·배움의 밭)’을 이끌던 연출가 겸 가수 김민기 씨가 22일 별세했다. 향년 73세. 올해 초 학전 폐관 소식이 들린 지 4개월 만에 전해진 비보다. 병세가 급격히 악화한 지난 19일부터 여러 가족과 만나 이승에서의 작별을 고했다.

“나를 앞으로 불러내지 말라”

“나는 뒷것이다. 나를 자꾸 앞으로 불러내지 말라”던 고인은 학전이라는 이름조차 남겨지지 않길 바랐다. 이달 학전은 ‘아르코꿈밭 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어린이·청소년 전용 극장으로 재탄생했다. 고인이 평소 강조해온 “우리 모두의 미래는 어린이”라고 말했던 뜻을 따랐다. 이곳은 올여름 ‘2024 아시테지(어린이·청소년 공연예술) 축제’가 열리는 등 크고 작은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1951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김민기는 청년 시절 시대상을 담은 수많은 노래를 발표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연출가로서 커리어는 1991년 학전을 개관하며 시작했다. 학전은 소극장 문화를 만들어낸 공신이자 문화예술인의 ‘못자리’로 불리는 장소가 됐다.

김민기를 추억하는 세대는 두텁다. 2000년대 중후반 어린이·청소년이던 세대는 그를 떡볶이 아저씨로 기억한다. 2000년대 초반 어린이·청소년극에 투신한 이후 2008년 선보인 작품이 ‘고추장 떡볶이’였다. 공연이 끝날 때면 학전 앞에 떡볶이 포차가 들어섰는데, 이때 유년 시절을 보낸 이들은 떡볶이 냄새로 그를 추억한다.

1970년대 대학생이던 이들은 그를 ‘아침이슬’과 ‘상록수’를 작곡한 ‘저항 가수’로 기억한다. 1971년 발표한 데뷔 음반 ‘김민기’는 세상에 나온 직후 압수당했다. ‘상록수’ ‘꽃 피우는 아이’ 등 그의 노래들도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영원한 저항 가수’라는 별명은 1987년 민주항쟁 당시 군중이 ‘아침이슬’을 부른 것이 계기가 돼 붙여졌다.

대학로 공연문화 진두지휘

1990~2000년대 대학생이던 이들은 학전과 김민기를 동일시한다. 센세이셔널한 연극과 대중가요의 요람으로 학전이 이름을 날리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학전 하면 떠오르는 김광석은 학전이 배출해낸 최고의 스타다. 세계적인 재즈 가수 나윤선, ‘오징어게임’의 음악을 연출한 정재일도 학전 출신이다.

이 두터운 세대를 아우르는 김민기의 대표작은 ‘지하철 1호선’일 것이다. 1994년 초연된 록 뮤지컬인 이 작품은 한국 뮤지컬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다. 연출가로서 김민기는 독일 원작인 이 작품을 한국 정서에 맞게 번안했다. 지난해까지 동명의 무대를 8000회 이상 무대에 올렸고 누적 관객은 70만 명에 이른다. 이 작품을 통해 김윤석, 설경구, 장현성, 조승우, 황정민이 ‘학전 독수리 5형제’로 대중에 알려지기도 했다. 만성적인 재정난에 시달리면서도 학전에서 뮤지컬 의형제(2000년), 개똥이(2006년) 등을 연출하며 대학로 공연 문화를 진두지휘했다.

김성민 학전 총무팀장은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고(故) 김민기가 연출을 맡았던 작품을 공연하지 않을 것”이라며 “연출가가 직접 연출할 수 없기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학전 홈페이지에 그의 대표 작품 아카이브가 마련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이미영 씨와 슬하에 2남이 있다. 빈소는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24일.

이해원·구교범 기자 u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