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청탁금지법 시행 8년 만에 식사비 한도 상향에 나선 데에는 갈수록 악화하는 소상공인 경영난을 해소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반영돼 있다. 최근 고물가와 경기 침체로 자영업자 폐업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를 풀어 민간 소비를 끌어올리겠다는 취지다.

물가 뛰는데 상한은 제자리

외식업계에선 현행 청탁금지법에 담긴 식사비 한도(3만원)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고물가로 외식비용은 꾸준히 올랐지만 식사비 한도는 8년째 제자리걸음이기 때문이다. 식사비 한도 3만원은 2003년 제정된 공무원 행동강령 기준에 멈춰 있다. 반면 지난달 한국소비자원 기준 서울의 평균 냉면 한 그릇 가격은 1만1923원으로 4년 전인 2020년(9000원)과 비교해 32.5% 뛰었다.
한숨 돌린 자영업자들 "5만원 식사비도 낮다"
자영업자 경영난이 가속화하는 것도 한도 상향에 나선 배경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실업자(91만8000명) 중 지난 1년 새 자영업자로 일한 사람은 월평균 2만6000명으로 1년 전(2만1000명)에 비해 23.1% 급등했다. 폐업한 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자영업자가 늘었다는 의미다.

이에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말부터 국민 의견 수렴에 나서는 등 청탁금지법 한도 조정 작업에 나섰다. 하지만 한도 상향이 도리어 외식 물가를 자극할 것이란 점이 우려로 작용했다. 그러다 이달 초 국민의힘이 식사비 한도를 현행 3만원에서 5만원으로 늘려야 한다고 정부에 건의하면서 조정 작업은 급물살을 탔다. 권익위는 지난 18일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계부처와 농협하나로마트 서울 양재점과 노량진수산시장을 방문해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최근 물가가 안정세에 접어든 것도 영향을 미쳤다. 물가상승률이 2%대에 접어든 만큼 내수 진작 카드를 꺼낼 적기란 판단이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국민 여론을 의식해 지난 4월 총선 이후로 상한 조정을 추진한 것이란 해석도 있다.

“경영난 극복 도움 될 것”

외식업계는 이번 정부 조치에 “숨통이 조금이라도 트이게 됐다”며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관계자는 “원재료 가격, 인건비, 공공요금 등 각종 비용이 가파르게 오른 데다 경기 불황으로 업체들의 휴·폐업이 속출하고 있어 소비 활성화 대책이 시급했다”며 “식사비 한도 상향으로 소비 심리가 회복되면 가맹점들이 경영난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식당들이 1인당 5만원이 넘지 않는 이른바 ‘신(新)김영란법 메뉴’를 속속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식사비 한도가 여전히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최근 전국 외식업체 134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업체들이 생각하는 식비의 적정 상한액은 평균 8만3936원이다. 급격한 물가 상승에도 불경기와 청탁금지법을 고려해 음식값을 제대로 올리지 못한 만큼 식비 상한을 더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농수산물 및 농수산가공품 선물 상한액(15만원) 조정이 논의되지 않은 것도 “아쉽다”는 반응이 많았다. 권익위는 지난해 8월 농수산물·농수산가공품 선물 상한액을 기존 10만원에서 15만원(설·추석 전후에는 30만원)으로 높인 바 있다.

양길성/양지윤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