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구리가 무슨 상관?…구리값이 조정 받는 이유 [원자재 이슈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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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행진하던 구리 가격 급락세
'구리 슈퍼사이클' 반대논리 부각
중국에서도 우울한 소식만 구리 가격을 놓고 장밋빛 전망만 가득했다. 친환경 에너지 전환의 수혜 원자재로 꼽히며 지난 5월엔 가격이 연초보다 30% 이상 올라 톤(t) 당 1만달러를 훌쩍 넘겼다. 태양광·풍력 발전과 전기차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 데이터 센터에도 구리 배선이 대량으로 쓰인다는 점, S&P글로벌 등 기관의 '2030년 구리 수요가 공급을 500만t 이상 웃돌 것'이란 분석 등 이유도 다양하다. 구리 광산은 탐사에서 생산까지 10~15년이 걸리기 때문에 공급 부족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 구리 가격 폭등이 임박해 보였다.
그러나 지난 13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암살범의 총탄을 4분의 1인치 차이로 피하고 다시 일어서며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녹색 사기(green scam)'에 불과하다"며 조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에너지 전환 정책을 칼질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중국에서도 구리 가격 하락을 부추기는 소식이 줄줄이 이어졌다. 경제 성장률이 4.7%로 부진한데다 전력망 공기업이 구리 전선 대신 알루미늄 전선을 깔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구리 가격이 상승하면 수요가 급감할 수 있다는 분석도 뒤늦게 주목받고 있다. 마이클 위드머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원자재 전략가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원자재 가격이 10% 상승하면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의 내부수익률(IRR)이 1% 포인트나 낮아진다"며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의 IRR은 일반적으로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원자재 가격 10%가 프로젝트의 성패를 가른다는 의미다. 바꿔 말하면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수익성 때문에 태양광·풍력 프로젝트가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전선 업체와 자동차 기업 등 주요 수요자들이 앞다퉈 직접 구리 확보에 나서 수요가 과장됐다는 지적도 있다. 덴마크 케이블 제조업체인 NKT의 지미 헤르만손 수석 부사장 겸 그룹 조달 책임자 역시 FT에 "2013년 당시에도 2023년에는 공급이 부족할 것이란 예측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며 "우리는 수주 잔량을 처리하는 데 충분한 구리를 확보했고 그 이상의 수요는 투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중국비철금속산업협회 데이터에 따르면 중국은 전기 케이블에 약 750만t의 구리를 사용하고 있으며 알루미늄은 300만t이 쓰인다. 연간 2500만t 규모의 글로벌 구리 물량의 4분의 1가량이 중국 전선을 만드는 데 쓰인다는 얘기다. 알루미늄은 전도성이 낮기 때문에 같은 전력을 송전하려면 알루미늄 케이블이 구리 케이블보다 더 굵어야 한다. 가벼운 무게 때문에 고전압 가공 전력 케이블에 알루미늄이 많이 사용되나 광범위한 대체 가능성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금융권에서도 높은 구리 가격이 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맥스 레이튼 씨티그룹 애널리스트는 최근 "알루미늄 대체품을 포함한 절약으로 인해 구리 수요가 이미 40만t 감소했다"며 "알루미늄으로의 대규모 대체가 실현된다면 구리 가격 상승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15일엔 중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4.7%에 그쳤다는 발표도 나왔다. 전선, 파이프 등에 구리가 대량으로 쓰이는 건설 부문의 경기 부진으로 전체적인 수요가 주춤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구리 슈퍼사이클' 반대논리 부각
중국에서도 우울한 소식만 구리 가격을 놓고 장밋빛 전망만 가득했다. 친환경 에너지 전환의 수혜 원자재로 꼽히며 지난 5월엔 가격이 연초보다 30% 이상 올라 톤(t) 당 1만달러를 훌쩍 넘겼다. 태양광·풍력 발전과 전기차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 데이터 센터에도 구리 배선이 대량으로 쓰인다는 점, S&P글로벌 등 기관의 '2030년 구리 수요가 공급을 500만t 이상 웃돌 것'이란 분석 등 이유도 다양하다. 구리 광산은 탐사에서 생산까지 10~15년이 걸리기 때문에 공급 부족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 구리 가격 폭등이 임박해 보였다.
그러나 지난 13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암살범의 총탄을 4분의 1인치 차이로 피하고 다시 일어서며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녹색 사기(green scam)'에 불과하다"며 조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에너지 전환 정책을 칼질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중국에서도 구리 가격 하락을 부추기는 소식이 줄줄이 이어졌다. 경제 성장률이 4.7%로 부진한데다 전력망 공기업이 구리 전선 대신 알루미늄 전선을 깔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일주일 새 6% 급락한 구리 가격
지난 19일(현지시간)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구리 현물 가격은 일주일 만에 6% 가까이 급락한 t당 9219.3달러를 기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 직전인 12일 t당 9726.9달러를 기록한 뒤 5일 연속으로 가격이 하락했다. 뉴욕상업거래소 산하 상품거래소(COMEX)의 구리 선물 가격은 같은 기간 파운드당 4.28달러에서 4.24 달러로 약 7.5%의 하락률로 더 가파르게 떨어졌다. 지난달 27일 미 대선 토론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무력한 모습을 보이고 사퇴 압박을 받는 가운데 트럼프 전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이 쐐기를 박았다는 평가가 나오며 구리 가격은 급락했다.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커져 IRA 정책의 후퇴가 점쳐지면서 투자자들은 구리 가격 하락에 베팅하고 있다.구리 가격이 상승하면 수요가 급감할 수 있다는 분석도 뒤늦게 주목받고 있다. 마이클 위드머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원자재 전략가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원자재 가격이 10% 상승하면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의 내부수익률(IRR)이 1% 포인트나 낮아진다"며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의 IRR은 일반적으로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원자재 가격 10%가 프로젝트의 성패를 가른다는 의미다. 바꿔 말하면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수익성 때문에 태양광·풍력 프로젝트가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전선 업체와 자동차 기업 등 주요 수요자들이 앞다퉈 직접 구리 확보에 나서 수요가 과장됐다는 지적도 있다. 덴마크 케이블 제조업체인 NKT의 지미 헤르만손 수석 부사장 겸 그룹 조달 책임자 역시 FT에 "2013년 당시에도 2023년에는 공급이 부족할 것이란 예측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며 "우리는 수주 잔량을 처리하는 데 충분한 구리를 확보했고 그 이상의 수요는 투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중국전력망공사 "구리 비싸니까 알루미늄 전선 깔겠다"
중국에선 구리 전선이 일부 알루미늄으로 대체될 것이란 예상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16일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의 한 구리 케이블 납품업체를 인용해 "중국국가전력망공사(SGCC)가 최근 몇 달 동안 구리 전선 구매를 늦추고 있어 2분기 판매량이 20% 줄었다"고 보도했다. 반면 금속 정보 제공업체 상하이금속시장(Shanghai Metals Market)에 따르면 지난 1~4월 SGCC의 알루미늄 케이블 입찰은 전넌 대비 40% 증가한 71만8000t에 달했다. SGCC는 중국 국토의 80% 이상에 전력을 공급한다. 중국은 특정 유형의 배선이나 발전 용도에 구리 사용 여부를 법으로 정하고 있어 원자재 시장에선 중국 정부의 정책 변화 조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중국비철금속산업협회 데이터에 따르면 중국은 전기 케이블에 약 750만t의 구리를 사용하고 있으며 알루미늄은 300만t이 쓰인다. 연간 2500만t 규모의 글로벌 구리 물량의 4분의 1가량이 중국 전선을 만드는 데 쓰인다는 얘기다. 알루미늄은 전도성이 낮기 때문에 같은 전력을 송전하려면 알루미늄 케이블이 구리 케이블보다 더 굵어야 한다. 가벼운 무게 때문에 고전압 가공 전력 케이블에 알루미늄이 많이 사용되나 광범위한 대체 가능성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금융권에서도 높은 구리 가격이 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맥스 레이튼 씨티그룹 애널리스트는 최근 "알루미늄 대체품을 포함한 절약으로 인해 구리 수요가 이미 40만t 감소했다"며 "알루미늄으로의 대규모 대체가 실현된다면 구리 가격 상승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15일엔 중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4.7%에 그쳤다는 발표도 나왔다. 전선, 파이프 등에 구리가 대량으로 쓰이는 건설 부문의 경기 부진으로 전체적인 수요가 주춤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