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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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계정 X에 대선 레이스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와 함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차기 대선 후보로 지지했다. 대선 후보가 중도에 사퇴하는 초유의 상황에서 민주당은 이른 시일 안에 대선 후보를 다시 선출해야 하는 다급한 상황에 놓였다.

“국가를 위한 이익”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여러분의 대통령으로 봉사할 수 있었던 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영광이었다”며 “재선에 도전하려 했지만 남은 임기 동안 대통령의 의무를 다하는 데에만 집중하는 것이 민주당과 국가에 최선의 이익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3년 반 동안, 우리는 국가로서 큰 진보를 이뤘다”며 “오늘날,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를 자랑한다”고 사퇴문을 시작했다. 이어서 노인에 대한 처방약 비용을 낮추고 30년 만에 첫 총기 안전 법안을 통과시킨 업적을 설명했다. 또한 “이 모든 것은 여러분, 미국 국민 없이는 불가능했음을 알고 있다”며 “우리는 함께 한 세기 만의 대유행과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를 극복했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과 국가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직을 내려놓고 남은 임기 동안 대통령의 임무에 전념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는다. 이번 주 후반에 제 결정에 대해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다”고 덧붙였다.

6월 대선 토론 이후 25일만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직 사퇴는 지난달 27일 첫 대선 후보 토론 이후 25일 만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토론에서 말을 더듬고 발언 중간에 맥락과 상관이 없는 말을 하면서 고령에 따른 건강 및 인지력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따라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간 격차가 더 벌어지자 민주당 내에서는 30여명의 상·하원 의원들이 잇따라 바이든 대통령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 전당대회 직전인 지난달 13일 피격에도 살아남으면서 공화당 내 ‘영웅’으로 떠오른 점도 변수로 작용했다. 고령 논란 속에 있는 바이든 대통령과 대비되는 이미지가 더욱 강조되면서다. 바이든 대통령이 코로나19에 걸려 다시 발이 묶이는 등 악재가 계속되면서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당내 지지가 급속도로 이탈했다.

이 과정에서 당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원 등도 등을 돌리면서 ‘완주 의지’를 고수하던 바이든 대통령은 결국 당 안팎의 여론에 백기를 들게 됐다.

"카멀라 해리스에 전폭적인 지지”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후보 사퇴를 선언함과 동시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차기 대선 후보로 지지하고 나섰다.

그는 성명서를 통해 “카멀라가 올해 우리 당의 후보가 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지와 지지를 보내고 싶다”며 “이제 함께 힘을 모아 트럼프를 이겨야 할 때”라고 말했다.

민주당 대의원들은 8월 19∼22일(현지시간) 시카고에서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원하는 후보에게 투표할 수 있다. 시카고 전당대회에 앞서 8월 초 온라인으로 미리 후보 선출을 진행할 예정이나 상황에 따라 바뀔 가능성도 있다. 해리스 부통령은 이 자리에서 후보로 선출되어야만 한다. 해리스 부통령 외에 복수의 후보가 나오면 공개 전당대회를 통해 일종의 경선을 치러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사퇴로 그가 모은 선거 기부금 2억달러(약 2800억원)가량을 민주당 전국위나 새 후보를 지지하는 슈퍼팩(정치자금 모금단체)에 기부할 수 있다. 해리스 부통령이 차기 후보가 되면 이 돈을 이어받을 수 있다. 해리스 부통령의 선거운동 계좌가 바이든과 함께 연방선거위원회(FEC)에 등록돼 있어서다.

해리스 부통령의 러닝메이트로는 마크 켈리 상원의원(애리조나), 앤디 버시어 켄터키 주지사, 로이 쿠퍼 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 등이 러닝메이트 후보로 언급된다.

카멀라 해리스, 최초 역사 써온 인물

해리스 부통령은 이민 2세대이자 법조인 출신이고, 중도파 실용주의 노선을 표방한다. 비교적 젊다는 점에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비슷하다.

해리스 부통령은 1964년 자메이카 출신 ‘포스트 케인지언파’ 경제학자 아버지와 인도 출신 생물학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에서 자랐다. 그가 흑인이자 아시아계로 통하는 이유다. 전통적으로 미 흑인들 사이에서 최고의 명문대로 꼽히는 워싱턴DC 하워드대를 졸업했다. 캘리포니아대 헤이스팅스로스쿨을 거쳐 검사로 법조계에 입문했다. 2004년 샌프란시스코 검사장을 지냈고 2011년엔 흑인이자 여성 최초로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에 선출됐다.

해리스 부통령은 2017년 상원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2018년 9월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 인준 청문회에서 날카로운 질문으로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해리스는 민주당 내 중도파로 분류된다. 의료 개혁과 관련해선 민간 보험사의 제한적 역할을 견지하고, 중산층엔 세금을 올리지 않으면서 공공보험제도를 유지하는 안을 지지한다. 뉴욕타임스는 “해리스는 사형 반대 등 전형적인 민주당 이슈 외에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진보주의자들과 뜻을 같이하지 않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이미 바이든 대통령의 러닝메이트가 되면서 미국 역사상 최초 흑인·아시아계·여성 부통령 기록을 쓰기도 했다.

트럼프와의 지지율 격차 좁힐까

CBS 방송이 여론조사업체 유거브에 의뢰해 지난 16~18일 등록 유권자 2247명을 상대로 벌인 여론조사(오차 범위±2.7%포인트) 결과에 따르면 이번 조사에서 이번 피격 사건 이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52%로, 47%를 기록한 바이든 대통령을 5% 포인트 앞서갔다.

암살 미수 사건 이전인 지난 3일 조사 결과와 비교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지율이 2%포인트(50%→52%) 올랐으나 바이든 대통령은 1%포인트 (48%→47%) 내려갔다.

미 대선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후보가 민주당 후보를 5%포인트 이상 격차로 앞선 것은 30여년 만의 일이라고 CBS 방송은 전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가상 대결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51%, 해리스 부통령이 48%로, 트럼프-바이든 가상대결 때보다 지지율 격차가 좁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