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이 깊어지면 베로나의 고대 극장은 황홀한 오페라로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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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황지원의 오페라 순례
세계 최초의 야외 오페라 페스티벌
베로나 아레나 오페라 페스티벌
세계 최초의 야외 오페라 페스티벌
베로나 아레나 오페라 페스티벌
북이탈리아의 아름다운 도시 베로나(Verona)는 무척이나 기품 있는 도시다. 독일에서 이탈리아로 내려오는 관문에 위치한 덕에 예부터 따뜻한 태양과 찬란한 로마 문명을 그리워하던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수많은 문필가, 지식인, 예술가들을 가장 먼저 만났던 도시이기도 하다. 괴테의 저 유명한 <이탈리아 기행>도 베로나에서 시작되며,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서 언급되는 ‘레몬꽃 피는 따뜻한 남쪽 나라’는 베로나와 그 인근의 가르다 호수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 도시 구시가지의 한복판에는 고대 로마 시대에 건립된 장대한 원형경기장이 우뚝 서 있다. 오랫동안 베로나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유명했지만, 여기서 오페라를 공연해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품은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베로나 태생의 세계적인 지휘자 툴리오 세라핀과 테너 조반니 제나텔로였다. 세라핀은 알고 지내던 바이올리니스트를 불러 경기장 한가운데에서 연주하게 했고, 자신은 제일 꼭대기 좌석에 올라가 그 음악을 들었다. 놀랍도록 소리가 좋았다! 드디어 1913년 베르디의 스펙터클 오페라 <아이다>를 시작으로 베로나는 ‘세계 최초의 야외 오페라 페스티벌’을 개최하게 된다.
▶[관련 칼럼] 오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강렬하고 스펙터클한 장면
베로나 페스티벌을 거쳐 간 명가수들은 이탈리아 오페라의 역사 그 자체다. 1947년 2차 대전 종전 직후의 혼란한 분위기 속에서 무명의 젊은 소프라노가 슈퍼스타로 급부상한다. 바로 마리아 칼라스다. 그녀의 치열한 음악성, 폭발적인 연기력과 놀라운 열정은 순식간에 베로나 청중들을 사로잡았고, 칼라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탈리아의 모든 무대를 평정하면서 최고의 프리마 돈나로 우뚝 서게 된다.
▶[관련 칼럼] 오페라의 역사는 소프라노 '지존' 마리아 칼라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1968년에는 20대의 젊은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베로나를 열광시켰다. 그는 <투란도트>의 주인공 칼라프 왕자 역을 유창한 미성과 특유의 연기력으로 소화해 엄청난 환호성을 받았다. 그 후 매년 이 페스티벌에서 노래하면서 베로나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지난 2019년 도밍고는 ‘베로나 데뷔 50주년 기념 공연’이라는 엄청난 갈라 콘서트를 열었다. <나부코>, <맥베스>, <시몬 보카네그라> 등 자신이 가장 잘 부르는 오페라 세 편의 하이라이트를 여러 명의 후배 가수들과 어울려 함께 소화했다.
현장에서 직접 지켜본 이 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도밍고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었다. 저녁 8시에 시작된 콘서트는 중간 휴식 시간 두 번을 포함하여 무려 4시간이 넘게 진행되었는데, 도밍고는 피로한 기색 하나 없이 관객들의 열광적인 박수갈채에 답하며 30분이 넘는 커튼콜을 이어 나갔다. 별빛이 쏟아지는 하늘 아래 모든 공연이 종료되자 시간은 벌써 새벽 1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극장을 떠날 줄 몰랐다. 곳곳에서 눈물을 글썽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도밍고에게 기립박수를 보내는 수많은 오페라 팬들이 보였다. 그 장면 자체가 한편의 오페라였다. 낮에는 40도에 가까운 불볕더위가 도심 전체를 들끓게 만들다가도 해가 지고 밤이 깊어지면 베로나의 고대 돌무더기 극장은 순식간에 가장 황홀한 오페라의 무대로 돌변한다. 2만 명이 훌쩍 넘는 엄청난 수의 관객들이 몰려들고, 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삼삼오오 작은 촛불에 불을 붙이고는 로맨틱한 무드에 한껏 젖어 오페라 공연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린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가 태어난 베로나는 지금은 이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오페라 무대로 전 세계인들을 다시 한번 매혹시키고 있다.
황지원 오페라평론가
베로나 페스티벌을 거쳐 간 명가수들은 이탈리아 오페라의 역사 그 자체다. 1947년 2차 대전 종전 직후의 혼란한 분위기 속에서 무명의 젊은 소프라노가 슈퍼스타로 급부상한다. 바로 마리아 칼라스다. 그녀의 치열한 음악성, 폭발적인 연기력과 놀라운 열정은 순식간에 베로나 청중들을 사로잡았고, 칼라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탈리아의 모든 무대를 평정하면서 최고의 프리마 돈나로 우뚝 서게 된다.
▶[관련 칼럼] 오페라의 역사는 소프라노 '지존' 마리아 칼라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1968년에는 20대의 젊은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베로나를 열광시켰다. 그는 <투란도트>의 주인공 칼라프 왕자 역을 유창한 미성과 특유의 연기력으로 소화해 엄청난 환호성을 받았다. 그 후 매년 이 페스티벌에서 노래하면서 베로나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지난 2019년 도밍고는 ‘베로나 데뷔 50주년 기념 공연’이라는 엄청난 갈라 콘서트를 열었다. <나부코>, <맥베스>, <시몬 보카네그라> 등 자신이 가장 잘 부르는 오페라 세 편의 하이라이트를 여러 명의 후배 가수들과 어울려 함께 소화했다.
현장에서 직접 지켜본 이 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도밍고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었다. 저녁 8시에 시작된 콘서트는 중간 휴식 시간 두 번을 포함하여 무려 4시간이 넘게 진행되었는데, 도밍고는 피로한 기색 하나 없이 관객들의 열광적인 박수갈채에 답하며 30분이 넘는 커튼콜을 이어 나갔다. 별빛이 쏟아지는 하늘 아래 모든 공연이 종료되자 시간은 벌써 새벽 1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극장을 떠날 줄 몰랐다. 곳곳에서 눈물을 글썽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도밍고에게 기립박수를 보내는 수많은 오페라 팬들이 보였다. 그 장면 자체가 한편의 오페라였다. 낮에는 40도에 가까운 불볕더위가 도심 전체를 들끓게 만들다가도 해가 지고 밤이 깊어지면 베로나의 고대 돌무더기 극장은 순식간에 가장 황홀한 오페라의 무대로 돌변한다. 2만 명이 훌쩍 넘는 엄청난 수의 관객들이 몰려들고, 그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삼삼오오 작은 촛불에 불을 붙이고는 로맨틱한 무드에 한껏 젖어 오페라 공연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린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가 태어난 베로나는 지금은 이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오페라 무대로 전 세계인들을 다시 한번 매혹시키고 있다.
황지원 오페라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