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살아가는 얘기'를 쓰는 허회경의 목소리, 김연수의 플레이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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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표 위의 사람들]
싱어송라이터 허회경 인터뷰
싱어송라이터 허회경 인터뷰
'나만 알고 싶지만, 나만 알기에는 아까운 가수'
1998년생 싱어송라이터 허회경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말이 있을까. 인디 장르에서 활약 중인 허회경의 음악을 들으면 '내 일기를 노래로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현실적이고, 공감을 자아낸다는 의미다.
2021년 싱글 '아무것도 상관없어'로 데뷔한 뒤 10여 개의 싱글 및 정규 음반을 낸 허회경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읊조리듯 노래하는 곡으로 자신만의 색채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콘서트를 마친 허회경을 최근 서울 동교동의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많은 사람이 노래를 통해 허회경씨를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음악을 듣다가 우연히 알고리즘이 허회경의 음악을 띄워줘서요. 시작이 궁금해요, 어떻게 데뷔하셨나요.
"어릴 땐 클래식 피아노를 치다가, 취미로 작곡을 배웠어요. 고1~2때쯤 작곡을 전공하기로 마음먹고, 서경대 실용음악과에 입학했어요. 제가 쓴 곡을 녹음해서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렸는데, 웹드라마 측에서 제 곡을 사용해도 되냐고 문의가 왔어요. 좋다고 했죠. 사운드클라우드에 있는 음원은 저작권이 없거든요. 그래서 곧바로 유통사를 찾아가 음원을 냈어요. 그 음악이 '아무것도 상관없어'였고, 그게 제 데뷔였죠. 얼떨결에 (데뷔를)한 케이스에요"
그의 음악은 특별한 마케팅이나 홍보 없이,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유명해졌다. 그의 음악은 감성 플레이리스트 목록에 빠지지 않고, 인기곡은 조회수 1600만이 넘어설 만큼 노래 자체로 사랑받고 있다. 특히 그는 '아티스트들의 아티스트'라 불릴 만큼 다른 가수들의 추천을 많이 받기도 했다. 배우 박보검은 자신의 팬미팅 콘서트에서 허회경의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직접 불렀고 투바투의 멤버 범규, 가수 헤이즈 등이 허회경의 노래를 공개적으로 추천했다. 소설가 김연수는 최근 발간한 소설 모음집 '음악소설집' 인터뷰에서 허회경의 '집으로 가는 길'을 언급하기도 했다.
▷유명인, 아티스트들이 허회경씨의 노래를 추천하더군요. 이유가 뭘까요.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라 그런 게 아닐까요. 제 노래가 그냥 사는 얘기를 하니까 공감해주신 것 같아요. 사는 게 다 똑같으니까요. 연예인들도 그렇고요." 허회경의 '김철수 씨 이야기'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특별하다고 한 너는 사실 똑같더라고/특별함이 하나둘 모이면/평범함이 되고/우두커니 서서 세상을 가만히 내려다보면/비극은 언제나 발 뻗고 잘 때쯤 찾아온단다'. 또 다른 인기곡 '그렇게 살아가는 것'에서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가시 같은 말을 내뱉고/날씨 같은 인생을 탓하고/또 사랑 같은 말을/다시 내뱉는 것.
두 노래 모두 보편적인, 누구나 느낄만한 삶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사를 보면 약간은 시니컬할 정도로 성숙한 것 같아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남들과 다르다, 특별하다고 믿는 나이일 텐데요.
"그냥 사람들이랑 얘기하다 보면 다들 똑같은 것 같아서요. 제가 쓴 곡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을 보면 더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어떤 날은 제가 특별한 것 같을 때가 있어요. 근데 다들 그렇게 느낄 때가 있잖아요. 다른 사람들도 다 어느 날은 내가 특별하고, 어느 날은 슬프고 어느 날은 그냥 그렇고 어느 날은 권태스럽고 그렇잖아요. 이 과정이 똑같다는 의미에요. 하루하루는 다르겠지만 그런 과정들이요."
▷많은 사람들이 공감가는 가사를 시처럼 서정적으로 담아내는 것 같아요. 작사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나요?
"곡을 써가면서 갈피를 잡을 때도 많고, 특정 단어나 문장 같은 게 꽂힐 때가 있어요. 주로 대화할 때, 신문 기사나 책 영화 같을 볼 때 꽂히는 말을 적어놔요.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빌드업하죠."
▷이를테면 어떤 식으로요?
"'결국 울었어요' 라는 곡에 '나의 작은 몸속에는 믿는 구석 없고'라는 구절이 있어요. 그 가사도 친구들이랑 술 먹다가 친구가 '너는 믿는 구석이 있구나' 이렇게 물어봤거든요. 근데 '아니 나 믿는 구석이 없어, 아무리 찾아도 없어' 이렇게 얘기를 했거든요. 술자리 끝나고 집에서 생각해보니까 진짜 믿는 구석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 말을 적어놨어요. 그런 식으로 일상에서 착안해서 가사를 쓰는 경우가 많아요"
▷평소에도 철학적이고 생각이 깊은 편인가요.
"그렇진 않아요. 평소에 저는 낙관적이고 여느 20대처럼 친구들이랑 놀아요. 오글거리는 것도 싫어하고요. 그런데 한편으로 저는 나름 깊은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데, 그걸 누군가가 알아줬으면 좋겠는 마음이 있고, 제 생각을 녹여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쉽게 말하면 관심받고 싶었던 거죠.(웃음) 제 생각을 녹여서 음악을 만들었는데, 그걸 사람들이 알아주고 공감해줬을 때 희열을 느꼈어요. 제 생각을 알아주는 게 너무 재밌는 거죠."
▷생각하려면 뭔가를 계속 집어넣어야 할 것 같은데요. 어떤 것들을 집어넣나요?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니까 영화나 책 기사 보는 것도 의무감이 느껴질 만큼 찾아봐요. 그리고 제가 강아지 수준으로 산책을 많이 해요. 하루에 한 번,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스스로를 산책시켜야 하거든요. 산책하는 동안 생각하고, 머릿속도 정리돼요. 건강한 먹이를 주고, 산책으로 머릿속을 환기하고, 그런 식으로 제 일상이 돌아가요." 허회경의 음악에서 눈에 띄는 점은, 앨범 커버 사진이다. 아날로그 카메라로 찍은 실제 그의 소장 중인 사진들을 커버로 사용했다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하시나요.
"아버지가 예전에 사진 쪽에서 일하셔서 집에 사진기도 많았고, 찍어 놓은 사진 자체가 많아요.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기보다는 그냥 제게 익숙하달까요. 어렸을 때 아빠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주셔서 그걸로도 많이 찍었죠." ▷음반 사진들은 보관하고 있던 사진 중에 골랐다고 들었어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할아버지랑 아기가 마주보는 사진이 가사랑 참 잘 어울리네요.
"데뷔 음반은 클라우드를 뒤지다가 '이거 괜찮다'하고 올렸어요. 그때 학생 때여서 돈도 없고 여유가 없었었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냈고요, 두 번째 앨범 '김철수씨 이야기'는 회사랑 논의했죠. 집에 폴라로이드 사진이 많아요. 그중 괜찮아 보이는 걸 회사에 보냈고, 회사도 좋다고 했어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할아버지랑 저랑 있는 사진을 써볼까 해서 쓰게됐어요. 아빠가 제 돌잔치 때 찍어준 사진이에요. 'Baby, 나를'에서 코니카(필름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진은, 친구랑 여행 갈 때 아빠가 주신 거예요." ▷인디 장르 아티스트들은 일반 대중적인 아티스트들에 비해 본인의 뚜렷한 색을 가지는 게 중요해 보여요. 그런데도 대중성과 본인이 추구하는 음악 사이의 균형은 모든 아티스트의 숙제인 것 같아요. 두 가지의 균형을 어떻게 찾아가시나요.
"인기를 그렇게까지 추구하지는 않아요. 이 음악이 상업적으로 될까, 안 될까를 생각하면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못 할 것 같아요. 물론 아예 생각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지나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번 음반 'None'(그 무엇도 어떤 것도)은 팝 음악다운 스타일로 시도했는데 만족스러워요. 시온이라는 친구랑 공동 프로듀싱을 해서 만든 음반이에요"
▷자극에 대한 역치가 높아진 세상이에요. 음악들도 비트나 리듬이 세고 가사도 자극적인 게 많아요. 허회경씨 노래는 반주도 잔잔하고 전반적으로 공백이 많아요. 그래서 담백하고 잔잔하다고들 해요. 이런 음악을 추구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조용한 음악을 써야지'해서 쓴 게 아니라 그냥 그런 곡이 나오는 것 같아요. 사람마다 치트키를 가지고 있잖아요. 제 음악 같은 스타일이 제 치트키인 거죠. 그런 음악이 제 마음에 드니까 추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신나는 곡을 쓸 수 있으면 쓰고 싶어요. 특정 음악은 안 하고 싶고 그런 건 없어요.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어요."
▷요즘 어떤 음악을 많이 듣나요.
"아무래도 여성 싱어송라이터를 좀 더 찾게 돼요. 피비 브리저스. 비바두비, 리지 매캘파인 같은 요즘 핫한 분들을 많이 들어요. 제가 참고할 수 있는. 물론 일적인 걸로 듣고 싶지 않을 때는 옛날 음악을 많이 듣고 신나는 노래도 들어요. 이효리의 '유고걸' 같은 노래를 듣기도 해요." ▷어릴 때부터 가수를 준비한 것도 아닌데, 라이브 무대를 소화하잖아요. 노래할 때는 어떤 걸 신경 쓰시나요.
"적당히 감정을 넣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노래를 하다 보면 감정이 울컥 올라올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듣는 사람은 오히려 몰입하기 어려워지기도 해요. 그래서 기교적인 부분이나 퍼포먼스 같은 제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을 챙기려 해요. 그래서 100% 감정에 이입해 부르진 않아요"
▷균형, 분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결과물은 감성적이지만, 작동 원리는 이성적인 카메라랑 잘 어울려요.
"맞아요. 근데 정답을 찾긴 어려워요. 요즘에는 삶에서 어떤 비중을 어떻게 나눠서 살아가야 할까 생각해요. 사랑 연애 친구 부모님 반려동물 여러 챕터가 있는데, 어떤 거에 얼마나 비중을 두고 살아갈 때 내가 행복할까, 이런 고민요. 근데 딱 정확한 정도를 찾는 게 어렵죠."
▷맞아요. 쉽지 않죠. 음악을 하면서 특별히 힘들거나 고민되는 점은 없나요.
"지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못 하겠다 싶을 때가 올 수 있잖아요. 그게 최대한 뒤로 갔으면 해요. 지금까지 지친 적은 많지만, 음악을 못 할 정도로 지친 적은 없거든요. 출퇴근이 있는 게 아니다 보니까 친구들이랑 놀 때도 '곡 써야 하는데', '어떤 거 쓰지'하는 고민이 항상 있어요. 그런 게 심해지면 지칠 때도 있죠."
▷앞으로 어떤 음악가로 기억되고 싶나요.
"음악을 잘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은데요, 그 음악이 감정적인 동요뿐 아니라 이성적인 성찰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음악이면 좋겠어요. 어떤 음악에 의미가 생기고, 깊게 감동을 하려면 이성적인 성찰을 하면서 감정이 따라와야 하는 것 같아요.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릴 때 '나도 예전에 이랬었는데'하는 것도 어찌 보면 이성적인 생각이잖아요. 그래서 전 두 가지가 동시에 있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1998년생 싱어송라이터 허회경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말이 있을까. 인디 장르에서 활약 중인 허회경의 음악을 들으면 '내 일기를 노래로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현실적이고, 공감을 자아낸다는 의미다.
2021년 싱글 '아무것도 상관없어'로 데뷔한 뒤 10여 개의 싱글 및 정규 음반을 낸 허회경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읊조리듯 노래하는 곡으로 자신만의 색채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콘서트를 마친 허회경을 최근 서울 동교동의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많은 사람이 노래를 통해 허회경씨를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음악을 듣다가 우연히 알고리즘이 허회경의 음악을 띄워줘서요. 시작이 궁금해요, 어떻게 데뷔하셨나요.
"어릴 땐 클래식 피아노를 치다가, 취미로 작곡을 배웠어요. 고1~2때쯤 작곡을 전공하기로 마음먹고, 서경대 실용음악과에 입학했어요. 제가 쓴 곡을 녹음해서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렸는데, 웹드라마 측에서 제 곡을 사용해도 되냐고 문의가 왔어요. 좋다고 했죠. 사운드클라우드에 있는 음원은 저작권이 없거든요. 그래서 곧바로 유통사를 찾아가 음원을 냈어요. 그 음악이 '아무것도 상관없어'였고, 그게 제 데뷔였죠. 얼떨결에 (데뷔를)한 케이스에요"
그의 음악은 특별한 마케팅이나 홍보 없이,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유명해졌다. 그의 음악은 감성 플레이리스트 목록에 빠지지 않고, 인기곡은 조회수 1600만이 넘어설 만큼 노래 자체로 사랑받고 있다. 특히 그는 '아티스트들의 아티스트'라 불릴 만큼 다른 가수들의 추천을 많이 받기도 했다. 배우 박보검은 자신의 팬미팅 콘서트에서 허회경의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직접 불렀고 투바투의 멤버 범규, 가수 헤이즈 등이 허회경의 노래를 공개적으로 추천했다. 소설가 김연수는 최근 발간한 소설 모음집 '음악소설집' 인터뷰에서 허회경의 '집으로 가는 길'을 언급하기도 했다.
▷유명인, 아티스트들이 허회경씨의 노래를 추천하더군요. 이유가 뭘까요.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라 그런 게 아닐까요. 제 노래가 그냥 사는 얘기를 하니까 공감해주신 것 같아요. 사는 게 다 똑같으니까요. 연예인들도 그렇고요." 허회경의 '김철수 씨 이야기'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특별하다고 한 너는 사실 똑같더라고/특별함이 하나둘 모이면/평범함이 되고/우두커니 서서 세상을 가만히 내려다보면/비극은 언제나 발 뻗고 잘 때쯤 찾아온단다'. 또 다른 인기곡 '그렇게 살아가는 것'에서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가시 같은 말을 내뱉고/날씨 같은 인생을 탓하고/또 사랑 같은 말을/다시 내뱉는 것.
두 노래 모두 보편적인, 누구나 느낄만한 삶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사를 보면 약간은 시니컬할 정도로 성숙한 것 같아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남들과 다르다, 특별하다고 믿는 나이일 텐데요.
"그냥 사람들이랑 얘기하다 보면 다들 똑같은 것 같아서요. 제가 쓴 곡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것을 보면 더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어떤 날은 제가 특별한 것 같을 때가 있어요. 근데 다들 그렇게 느낄 때가 있잖아요. 다른 사람들도 다 어느 날은 내가 특별하고, 어느 날은 슬프고 어느 날은 그냥 그렇고 어느 날은 권태스럽고 그렇잖아요. 이 과정이 똑같다는 의미에요. 하루하루는 다르겠지만 그런 과정들이요."
▷많은 사람들이 공감가는 가사를 시처럼 서정적으로 담아내는 것 같아요. 작사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나요?
"곡을 써가면서 갈피를 잡을 때도 많고, 특정 단어나 문장 같은 게 꽂힐 때가 있어요. 주로 대화할 때, 신문 기사나 책 영화 같을 볼 때 꽂히는 말을 적어놔요.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빌드업하죠."
▷이를테면 어떤 식으로요?
"'결국 울었어요' 라는 곡에 '나의 작은 몸속에는 믿는 구석 없고'라는 구절이 있어요. 그 가사도 친구들이랑 술 먹다가 친구가 '너는 믿는 구석이 있구나' 이렇게 물어봤거든요. 근데 '아니 나 믿는 구석이 없어, 아무리 찾아도 없어' 이렇게 얘기를 했거든요. 술자리 끝나고 집에서 생각해보니까 진짜 믿는 구석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 말을 적어놨어요. 그런 식으로 일상에서 착안해서 가사를 쓰는 경우가 많아요"
▷평소에도 철학적이고 생각이 깊은 편인가요.
"그렇진 않아요. 평소에 저는 낙관적이고 여느 20대처럼 친구들이랑 놀아요. 오글거리는 것도 싫어하고요. 그런데 한편으로 저는 나름 깊은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데, 그걸 누군가가 알아줬으면 좋겠는 마음이 있고, 제 생각을 녹여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쉽게 말하면 관심받고 싶었던 거죠.(웃음) 제 생각을 녹여서 음악을 만들었는데, 그걸 사람들이 알아주고 공감해줬을 때 희열을 느꼈어요. 제 생각을 알아주는 게 너무 재밌는 거죠."
▷생각하려면 뭔가를 계속 집어넣어야 할 것 같은데요. 어떤 것들을 집어넣나요?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니까 영화나 책 기사 보는 것도 의무감이 느껴질 만큼 찾아봐요. 그리고 제가 강아지 수준으로 산책을 많이 해요. 하루에 한 번,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스스로를 산책시켜야 하거든요. 산책하는 동안 생각하고, 머릿속도 정리돼요. 건강한 먹이를 주고, 산책으로 머릿속을 환기하고, 그런 식으로 제 일상이 돌아가요." 허회경의 음악에서 눈에 띄는 점은, 앨범 커버 사진이다. 아날로그 카메라로 찍은 실제 그의 소장 중인 사진들을 커버로 사용했다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하시나요.
"아버지가 예전에 사진 쪽에서 일하셔서 집에 사진기도 많았고, 찍어 놓은 사진 자체가 많아요.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기보다는 그냥 제게 익숙하달까요. 어렸을 때 아빠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주셔서 그걸로도 많이 찍었죠." ▷음반 사진들은 보관하고 있던 사진 중에 골랐다고 들었어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할아버지랑 아기가 마주보는 사진이 가사랑 참 잘 어울리네요.
"데뷔 음반은 클라우드를 뒤지다가 '이거 괜찮다'하고 올렸어요. 그때 학생 때여서 돈도 없고 여유가 없었었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냈고요, 두 번째 앨범 '김철수씨 이야기'는 회사랑 논의했죠. 집에 폴라로이드 사진이 많아요. 그중 괜찮아 보이는 걸 회사에 보냈고, 회사도 좋다고 했어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할아버지랑 저랑 있는 사진을 써볼까 해서 쓰게됐어요. 아빠가 제 돌잔치 때 찍어준 사진이에요. 'Baby, 나를'에서 코니카(필름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진은, 친구랑 여행 갈 때 아빠가 주신 거예요." ▷인디 장르 아티스트들은 일반 대중적인 아티스트들에 비해 본인의 뚜렷한 색을 가지는 게 중요해 보여요. 그런데도 대중성과 본인이 추구하는 음악 사이의 균형은 모든 아티스트의 숙제인 것 같아요. 두 가지의 균형을 어떻게 찾아가시나요.
"인기를 그렇게까지 추구하지는 않아요. 이 음악이 상업적으로 될까, 안 될까를 생각하면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못 할 것 같아요. 물론 아예 생각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지나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번 음반 'None'(그 무엇도 어떤 것도)은 팝 음악다운 스타일로 시도했는데 만족스러워요. 시온이라는 친구랑 공동 프로듀싱을 해서 만든 음반이에요"
▷자극에 대한 역치가 높아진 세상이에요. 음악들도 비트나 리듬이 세고 가사도 자극적인 게 많아요. 허회경씨 노래는 반주도 잔잔하고 전반적으로 공백이 많아요. 그래서 담백하고 잔잔하다고들 해요. 이런 음악을 추구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조용한 음악을 써야지'해서 쓴 게 아니라 그냥 그런 곡이 나오는 것 같아요. 사람마다 치트키를 가지고 있잖아요. 제 음악 같은 스타일이 제 치트키인 거죠. 그런 음악이 제 마음에 드니까 추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신나는 곡을 쓸 수 있으면 쓰고 싶어요. 특정 음악은 안 하고 싶고 그런 건 없어요.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어요."
▷요즘 어떤 음악을 많이 듣나요.
"아무래도 여성 싱어송라이터를 좀 더 찾게 돼요. 피비 브리저스. 비바두비, 리지 매캘파인 같은 요즘 핫한 분들을 많이 들어요. 제가 참고할 수 있는. 물론 일적인 걸로 듣고 싶지 않을 때는 옛날 음악을 많이 듣고 신나는 노래도 들어요. 이효리의 '유고걸' 같은 노래를 듣기도 해요." ▷어릴 때부터 가수를 준비한 것도 아닌데, 라이브 무대를 소화하잖아요. 노래할 때는 어떤 걸 신경 쓰시나요.
"적당히 감정을 넣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노래를 하다 보면 감정이 울컥 올라올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듣는 사람은 오히려 몰입하기 어려워지기도 해요. 그래서 기교적인 부분이나 퍼포먼스 같은 제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을 챙기려 해요. 그래서 100% 감정에 이입해 부르진 않아요"
▷균형, 분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결과물은 감성적이지만, 작동 원리는 이성적인 카메라랑 잘 어울려요.
"맞아요. 근데 정답을 찾긴 어려워요. 요즘에는 삶에서 어떤 비중을 어떻게 나눠서 살아가야 할까 생각해요. 사랑 연애 친구 부모님 반려동물 여러 챕터가 있는데, 어떤 거에 얼마나 비중을 두고 살아갈 때 내가 행복할까, 이런 고민요. 근데 딱 정확한 정도를 찾는 게 어렵죠."
▷맞아요. 쉽지 않죠. 음악을 하면서 특별히 힘들거나 고민되는 점은 없나요.
"지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못 하겠다 싶을 때가 올 수 있잖아요. 그게 최대한 뒤로 갔으면 해요. 지금까지 지친 적은 많지만, 음악을 못 할 정도로 지친 적은 없거든요. 출퇴근이 있는 게 아니다 보니까 친구들이랑 놀 때도 '곡 써야 하는데', '어떤 거 쓰지'하는 고민이 항상 있어요. 그런 게 심해지면 지칠 때도 있죠."
▷앞으로 어떤 음악가로 기억되고 싶나요.
"음악을 잘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싶은데요, 그 음악이 감정적인 동요뿐 아니라 이성적인 성찰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음악이면 좋겠어요. 어떤 음악에 의미가 생기고, 깊게 감동을 하려면 이성적인 성찰을 하면서 감정이 따라와야 하는 것 같아요.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릴 때 '나도 예전에 이랬었는데'하는 것도 어찌 보면 이성적인 생각이잖아요. 그래서 전 두 가지가 동시에 있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