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작가 인터뷰./ 유채영 한경닷컴 기자 ycycy@hankyung.com
시드니 작가 인터뷰./ 유채영 한경닷컴 기자 ycycy@hankyung.com
대한민국 성인남녀 절반 이상이 '세컨드 잡'을 꿈꾸는 시대입니다. 많은 이들이 '부캐(부캐릭터)'를 희망하며 자기 계발에 열중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꿉니다. 이럴 때 먼저 도전에 나선 이들의 경험담은 좋은 정보가 되곤 합니다. 본캐(본 캐릭터)와 부캐 두 마리 토끼를 잡았거나 본캐에서 벗어나 부캐로 변신에 성공한 이들의 잡다(JOB多)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편집자주>

평범한 직장인이었고, 한 아이의 엄마였다. 회사에서는 직장인의 자아로 열심히 일하고, 가정에서는 엄마의 자아로 아이를 양육하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양쪽 모두에 최선을 다했음에도 둘다 성에 차지 않았다. 내면의 화가 쌓여가던 상황, 작가라는 자아를 만들어 분출하기 시작했다. '해리포터'의 볼드모트가 영생을 얻기 위해 영혼을 쪼개 호크룩스를 만들었던 것처럼, 그동안 쌓아온 자기 모습을 잃지 않기 위해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낸 것. 2019년부터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썼고, 지난해 제11회 브런치북 출판프로젝트 대상 수상작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나요'를 쓴 시드니(필명) 작가의 이야기다.

시드니 작가는 광고대행사 인턴, 공기업 등을 거쳐 현재 몸 담고 있는 국내 유명 소비재 기업에서만 13년을 일했다. 해외 영업을 주로 했던 그는 회사 신입사원을 뽑는 면접관으로 참여했던 기간 중 작성한 일기를 '면접관 일기'라는 타이틀로 브런치에 연재하기 시작했고, 이 글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나요'라는 제목으로 출판이 됐다.

확실한 화법으로 면접자들의 태도를 지적하고, 팁을 전수하며, 본인이 느낀 감정들을 솔직하게 전했던 시드니 작가는 실제로 마주했을 때에도 카리스마 넘치 사수의 분위기를 뿜어냈다. 그는 "회사에서, 가정에서 쌓인 화를 분출하기 위해 글을 썼고, 글을 쓰기 위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회사에서는 말도 안 하고 집중해 '칼퇴'한다"며 "저녁을 먹고,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노트북을 들고 주변 카페로 가서 2시간 정도 바짝 쓰고 들어오는 생활을 5년 정도 한 거 같다"면서 작가로서 지켜온 시간을 소개했다.
시드니 작가 인터뷰./ 유채영 한경닷컴 기자 ycycy@hankyung.com
시드니 작가 인터뷰./ 유채영 한경닷컴 기자 ycycy@hankyung.com
시드니 작가는 어릴 때 그룹 신화가 나오는 라디오를 들으며 예능 PD를 꿈꿨고, 방송사가 지상파 3사만 있던 시절, 한 방송사 최종 면접에서 떨어진 이력이 있다. 불합격의 경험을 발판 삼아 현재의 회사에 입사했지만, 자신을 지킨 힐링법으로 글쓰기를 택했다.

"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걸 좋아해요. '설명충'이라고도 하죠. 대화를 하면 저보고 '말이 많다'고 하는데 이걸 글로 쓰면 '잘 쓴다'고 하더라고요.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보니, 제 장점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유튜브나 다른 플랫폼은 아예 생각도 못 했어요. 제가 가장 편한 것, 잘하는 것을 찾다 보니 글쓰기가 된 거 같아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나요'는 화려한 스펙에도 떨거나 면접관의 압박 질문에 당황해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선보이지 못하는 지원자에 대한 안타까움, 진심과 간절함을 전하는 이들에 대한 감동과 고마움에 대한 세세한 사례와 함께 시드니 작가 본인의 이야기도 섬세하게 녹아들어 있다. 오랫동안 인사 업무를 해온 담당자가 아니기에 느낄 수 있었던 세밀한 포인트를 전하는 것도 글의 묘미다.

"면접 기간이 일주일 동안 되는데, 신입사원 연수 시설에 가 있어야 했어요. 그 시간을 빼야 하기에 10년 넘게 회사 생활을 하면서 저도 처음 겪는 일이었어요. 처음엔 '신난다'하고 갔는데, 너무 힘들더라고요. 아는 사람도 없고, 어르신들도 많고, 저는 막내급이다 보니 불편한 사람들도 있고요. 보통 저녁 6시에서 7시쯤이면 면접이 끝나는데, 휴대전화를 빼앗겨서 방안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할 게 없어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죠. 그게 시작이었어요.(웃음)"

그러면서 '면접관 일기'라는 글을 쓴 이유가 한 면접자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면접자는 학벌과 경력 등이 다채롭게 채워진 이력서로 면접관들의 기대를 모았지만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시드니 작가는 "면접을 볼 때 눈을 바라봐 달라"며 "정말 기본적인 건데, 사회성이 있는 사람은 눈을 반짝 거린다. 결국 면접은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을 뽑는 건데,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예상 질문에서 한발짝만 들어가도 사시나무처럼 떨거나 멍하니 있는 친구들은 사람과 대화를 많이 못해본 인상을 준다"면서 '꿀팁'을 전했다.

"하버드를 나왔든 서울대를 나왔든 맡은 과업을 잘할 사람인가 그것만 봐요. 대화가 되고, 사회성이 있는지, 예의있고 피드백 수용이 가능한 사람인지를 파악하는 거죠. 현직에 있다가 간거라 제 눈엔 그것만 보였어요. 우수한 사람도 많았지만, 엄마한테 전화해주고 싶은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 소회를 담았어요."
시드니 작가 인터뷰./ 유채영 한경닷컴 기자 ycycy@hankyung.com
시드니 작가 인터뷰./ 유채영 한경닷컴 기자 ycycy@hankyung.com
시드니 작가가 브런치에 '면접관 일기'라는 이름으로 글을 처음 올린 건 2022년 11월이었다. 그 전에 육아나 좋아하는 책에 대한 글을 썼고, 올해 가을 출판이 예정된 '청담동 사람들은 명품을 안 입는다'에 이어 네 번째로 쓴 에세이였다. 동화 '백설공주'를 모티브로한 영화 '시드이 화이트'를 보고 만든 영어 이름 시드니를 필명으로 5년 동안 지치지 않고 글을 써왔지만, "출판은 또 다른 경험이었다"고 고백했다.

브런치는 글을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책을 출판할 수 있는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알려졌고, 해마다 진행되는 공모전에는 국내 유수의 출판사들이 참여한다. 지난해엔 8800명이 지원했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나요'를 출간한 시공사를 포함해 10개 출판사가 참여했다.

시드니 작가는 1등 당선 비법을 묻는 말에 "왜 당선됐는지 모르겠다"도 답했다. 그러면서도 "하나의 킥은 지원자 후기는 많은데 현직자 면접 후기는 없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며 "그들은 누구에게 정보를 전달할 필요가 없으니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면접관은 다들 직장인이다 보니, 면접관 업무도 '빨리 끝내고 가자' 이런 느낌이지 않나. 기록을 남겼다는 것에 대해 잘 봐주신 거 같다"고 자평했다.

"처음에 1등이라고 연락받았을 땐 스팸인 줄 알았어요. (웃음) 발표작 공개 한 달 전에 연락이 온 거였거든요. 출판사랑 매칭이 됐다는 의미였더라고요. 그렇게 지난해 11월 초 편집자와 만났고 일사천리로 진행됐어요. 협업은 쉽지 않았지만, 저도 직전에 '청담동 사람들은 명품을 안 입는다' 출판 작업을 하고 있었던 터라 기본적으로 순탄했다고 생각해요. 초반은 브런치 내용대로 가고, 후반부 내용은 추가로 집필했는데 저의 의견을 다 수용해주셔서 쓰고 싶은 대로 다 썼어요. 마지막으로 제목을 정할 때만 의견이 갈렸는데, 10분 만에 지금의 제목이 나왔어요."

그렇게 치열하게 작업했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나요'가 대상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에 "전율을 느꼈다"는 시드니 작가였다. 그러면서 "오히려 책이 나왔을 땐 오히려 감정이 덜했다"고 솔직하게 전했다.

"회사에서 제품 개발을 많이 했는데, 그때랑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짠'하고 나온 게 아니라, 그 과정들을 다 알고 완성본이 나온 거라 홀가분한 느낌이랄까요. 다만 책이 나오고 나니 이 책에 등장했던 한 면접자가 꼭 봐줬으면 하더라고요. 면접관도 일개 직원입니다. 권위적이고, 영향력 있어 보이고 그런데,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에요. 그래서 띠지에 '떨지 마요, 난 설레니까'라고 적었어요. 타인의 말을 경청할 수 있는 자존감과 자신감을 보여주세요."

5년 동안 열심히 글을 쓰며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은 그에게 5년 후의 모습을 물었다. "현재의 내 모습은 최근 5년간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시드니 작가는 "10년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내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직은 직장에서 수입이 더 많고, 부서를 이동해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지금 제 인생의 2번째 기가 트인 것"이라며 "주어진 것들을 열심히 해보겠다"면서 지난 5년과 마찬가지로 치열하게 육아하고, 일하며, 글을 쓰고 살겠다고 전했다.

"다음 책에 대한 구상은 항상 하고 있어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세상에 많은 글이 있는 만큼, 그중에 튈만한 소재, 형식을 찾고 있어요. 책을 내지 못하더라도 글을 쓰는 삶은 계속하고 싶어요. 기승전결이 있다면, 지금의 제 회사 생활은 '전' 정도의 단계에 온 거 같아요. 직장인으로서의 자아는 소멸하더라도 또 다른 자아는 글을 쓰면서 살아갈 수 있겠죠."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