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서울 동숭동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 불이 꺼지자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암전된 공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돌림 노래처럼 울고 또 울었다. 객석은 바닥이었지만 이들은 바닥에 앉는 것조차 거부했다. 저마다 엄마, 아빠의 품을 파고들며 첫 공연장의 경험을 두려움으로 채워가는 듯 했다.
"애기야, 무대 위로 올라와… 아저씨랑 함께 춤추자"
무용수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온화한 미소를 띄우며 한명 씩 무대에서 몸을 유연하게 움직였다. 객석과 무대의 간격은 없었다. 무대도 바닥이었고 관객은 그 무대 주변을 캠프파이어를 하듯 둘러 앉았다. 무용수들은 음악에 맞춰 객석의 아기들과 시선을 주고 받았다. 서서히 객석의 아기들에게 손을 내밀고 하이파이브를 했다.
"애기야, 무대 위로 올라와… 아저씨랑 함께 춤추자"
아기들은 어느새 울음을 멈추고 무대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적극적인 아이들은 댄서가 내민 손을 잡고 하나 둘 씩 무대로 기어 나갔고, 걸어 나갔다. 이후 거의 모든 아기들이 두려움이 사라진 표정으로 무대에 나섰다. 무용수와 유아 관객들은 한 데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춤을 췄고 동작을 맞췄다. 포옹도 하고 댄서들에게 올라타면서 아기들의 표정이 어느덧 맑게 갠 하늘처럼 밝아졌다.
"애기야, 무대 위로 올라와… 아저씨랑 함께 춤추자"
45분간 이어진 이 특별한 공연은 '2024 아시테지 국제 여름 축제' 초청작 <베이비 클럽>이었다. 18~36개월령의 유아를 관객으로 대한다. 공연 입장은 보통 초등생부터 이뤄지기 마련이다. 가만히 앉아 소음을 내선 안된다는 자기 절제가 가능한 연령대가 이때쯤이라고 여겨지기 때문. 하지만 베이비 클럽은 달랐다. 아기들이 내는 모든 소리와 움직임을 무대에 받아들이고, 함께 접촉하며 몸을 움직였다. 이 공연은 영국의 '세컨드 핸드 댄스'팀이 2019년 고안해 세계적으로 공감을 산 작품이다.
"애기야, 무대 위로 올라와… 아저씨랑 함께 춤추자"
댄스팀은 코로나19로 영국에서 학교나 문화 기관 등지에서 접촉을 금지하는 정책이 확산하는데 대한 반기를 들며 이 공연을 기획했다. 작품은 "촉감이 아기와 어린이 발달에 필수이며 접촉을 보류하는 것 자체가 심리적 학대의 한 형태"라는 발달과학자와 아동심리학자의 연구에 기반해 2019년 영국에서 초연했다.
"애기야, 무대 위로 올라와… 아저씨랑 함께 춤추자"
이날 공연에서 아기들은 몸을 움직이는 댄서들을 보며 자신 안에 뭔가가 꿈틀거리는 것을 발견 한 듯 보였다. 무대를 굴러다니다 누워서 천장 위 조명을 바라보기도 했고, 음악의 박자에 맞춰 몸을 흔들어댔다. 공연이 절정에 이르자 객석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던 부모들까지 무대로 나와 무용수와 아기들과 손을 맞잡았다. 두둠칫. 어색한 몸짓이었지만 춤을 평가하는 시선은 없었다. 어른이든 아이든 춤을 추는 원시적인 즐거움에 순수하게 빠져들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애기야, 무대 위로 올라와… 아저씨랑 함께 춤추자"
댄서팀은 이 작품을 각색한 <모두의 클럽>이라는 작품을 23일과 24일, 서울 중림동 모두예술극장에서 올린다. 이후 지역연계 프로젝트에도 초청받아 <베이비 클럽>을 다시 27일과 28일에 서울 광진어린이공연장에서 올릴 예정이다.

이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