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민기 빈소 /사진=학전 제공
故 김민기 빈소 /사진=학전 제공
외환위기 때 코끝을 찡하게 했던 박세리의 ‘맨발의 투혼’ 공익광고의 배경음악은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고 하는 ‘상록수’다. 대학 시절 술집에서 떼창하던 ‘늙은 군인의 노래’, 통기타로 한 번쯤은 읊조려 봤을 ‘친구’,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애국가 다음으로 많이 불렸다는 ‘아침이슬’까지.
가수였고, 시인이었고, 학전의 농사꾼이던 우리의 ‘앞것’
김민기는 타고난 예술가다. 경기중·고를 나온 수재인 그는 “경기중·고를 다닌 게 아니라 경기중·고 미술반을 다녔다”고 할 정도로 그림을 좋아했고, 서울대 미대 회화과에 들어갔다. 고교 시절 누나가 사준 클래식 기타로 음악에도 눈을 뜬 그는 음악에서 천부적 재능을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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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였고, 시인이었고, 학전의 농사꾼이던 우리의 ‘앞것’
대표작 중 상당수가 즉석곡이다. ‘친구’는 고교 때 바닷가로 놀러 갔다가 한 후배가 익사하자 급거 서울로 돌아오는 야간열차에서 썼다고 한다. ‘상록수’는 군 복무 후 위장 취업한 봉제 공장에서 노동자들의 합동결혼식 축가로, ‘늙은 군인의 노래’는 군 시절 주임상사의 퇴역 기념가로 지어준 노래다. ‘아침이슬’은 대학을 휴학하고 고교·대학 동창인 김영세(이노디자인 대표)와 듀엣을 할 때 만난 양희은을 위해 작곡했다. 당시 양희은은 버스 회수권조차 친구들로부터 얻어 쓰던 때다.
가수였고, 시인이었고, 학전의 농사꾼이던 우리의 ‘앞것’
그는 1970~1980년대 저항가요의 상징이었지만, 투사가 아니라 평범한 생활인의 삶을 살았다. 민통선 안에서 농사짓고, 때때로 탄광 광부, 김 양식장 잡역부도 했다. 40세 때인 1991년 이후 그가 평생을 바친 일은 대학로 소극장·극단 ‘학전’을 통한 문화운동이었다.
가수였고, 시인이었고, 학전의 농사꾼이던 우리의 ‘앞것’
학전이 배출한 가수가 1000회 이상 공연을 한 김광석이다. 이곳 출신으로 영화계 스타가 된 배우들이 김윤석, 설경구, 황정민, 장현성, 조승우 등 이른바 ‘학전 독수리 오형제’다. 학전의 대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독일 원작자로부터 세계 150여 개 공연 극장 중 김민기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의도를 이해한 연출자라고 평가받았다.
가수였고, 시인이었고, 학전의 농사꾼이던 우리의 ‘앞것’
김민기는 늘상 배우·가수는 ‘앞것’, 스태프인 자신은 ‘뒷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노래와 공연을 통해 시대를 이끌었던 그가 진정 ‘앞것’이지 않았을까.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흡사 묘비명 같은 노랫말이다.
가수였고, 시인이었고, 학전의 농사꾼이던 우리의 ‘앞것’
윤성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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