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선거 판세가 요동치면서 투자자들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이 유력했던 이전 상황과 달리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급부상하면서 ‘트럼프 트레이드’가 힘을 잃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점차 정치 상황보다는 기업 실적과 경제 상황을 주요 변수로 놓고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조언을 내놓고 있다.
순환매인가, 정치 이벤트인가…美 증시도 '리셋 중'

커지는 기업 실적 호조 기대감

22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S&P500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08% 오른 5564.41에 거래를 마쳤다. 6주 만에 최대 상승 폭이다. 나스닥지수는 1.58% 오르며 18,007.57을 기록했다. 다우종합지수는 0.32% 상승한 40415.44로 장을 마감했다.

이날 강세장은 반도체주가 이끌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가 4.0% 올랐고 반도체 대장주 엔비디아도 전 거래일보다 4.76% 상승했다. AMD(2.83%) 퀄컴(4.7%) 브로드컴(2.36%) 등 미국 반도체 기업과 대만 TSMC(2.16%),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제조사 ASML(5.13%)도 상승 마감했다.

블룸버그는 증시 전망 설문조사에 응답한 463명 중 63%가 테슬라, 알파벳 등의 실적 발표로 S&P500지수가 다시 힘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는 석 달 전(62.6%)보다 조금 높고, 2023년 1월의 33.7%에 비해선 두 배에 달하는 응답률이다. 이번 조사는 지난 15∼19일 투자자, 이코노미스트 등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앤드루 타일러 JP모간 미 시장 정보 책임자는 고객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기업 실적이 S&P500지수를 최근 침체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라며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 엔비디아 등 ‘매그니피센트 7’의 실적 추정치를 보면 다음 분기도 굉장히 좋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당분간 트럼프 트레이드 멈출 것”

주요 빅테크 종목에 대한 목표 주가 상향도 잇따르고 있다. 투자회사 파이퍼샌들러는 엔비디아 목표 주가를 기존 120달러에서 140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엔비디아의 중국 맞춤형 칩 출시가 주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로이터통신은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을 겨냥한 플래그십 인공지능(AI)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B20’으로 명명된 이 칩은 엔비디아의 첨단 반도체 설계(아키텍처)인 블랙월을 기반으로 제작된다.

일각에선 해리스 부통령의 급부상이 기술주에 호재로 작용했다는 진단도 내놓고 있다. CNBC 증시 분석 프로그램 ‘매드 머니’의 진행자 짐 크레이머는 “조 바이든 대통령은 ‘큰 사업은 나쁜 사업’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면 해리스 부통령은 조금 더 미묘한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며 이같이 분석했다. 이는 지난 2월 “구글을 해체할 때가 됐다”며 빅테크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친 JD 밴스 공화당 부통령 후보와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미국 대선이 주가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데이비드 반센 반센그룹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실적, 미국 중앙은행(Fed), 지정학이 더 큰 동인이기 때문에 선거는 시장 고려 사항에서 3대 우선순위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에 따른 수혜 자산에 투자하는 트럼프 트레이드는 ‘트럼프 vs 해리스’의 여론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멈추거나 일부 되돌림이 이뤄질 것이라고 CNN은 전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