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서련이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임대철 기자
소설가 박서련이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임대철 기자
“삼국지에는 여성이 많이 등장하지 않아요. 나와도 누구 부인 모 씨, 누구 딸 모 씨 이렇게 이름이 없죠. 그런 점에서 초선은 독특해요. 삼국지 초반에 등장해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퇴장해요. 그 초선의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소설가 박서련이 초선을 주인공으로 한 장편소설 <폐월; 초선전>을 냈다. 서울 공덕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왕윤의 명을 받아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초선을 상상에 기반해 새롭게 그렸다”고 했다.

어느날 삼국지를 좋아하는 시인이 그에게 말했단다. “초선 이야기를 써달라”고. 왜 자신이 써야 하는지 물었더니 “잘 쓰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틀린 말이 아니다. 박서련은 ‘이야기’를 잘 쓰는 작가다.

2015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아 등단한 그는 2019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장편소설 <체공녀 강주룡>으로 이름을 알렸다. 일방적인 임금 삭감에 항의해 1931년 한국 최초로 고공 농성을 벌인 실제 인물 강주룡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카카듀>, <마르타의 일>, <마법소녀 은퇴합니다> 등 그의 소설은 모두 이야기가 살아있다.

<폐월; 초선전>은 삼국지에서 짧게만 등장한 초선의 삶을 온전히 되살려낸다. 제목의 ‘폐월(閉月)’은 ‘너무 아름다워 달마저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는 뜻이다. 아름다움은 삼국지에서와 같지만, 새로 그린 초선의 모습은 훨씬 진취적이다.

가난하고 흉흉한 시절 자신을 팔아먹으려는 부모로부터 도망친 어린 초선은 거지 떼와 어울리며 강인하게 살아남는다. 거지 대장에게 배운 거짓말로 자신이 충신의 딸이라고 속여, 한나라 장군인 왕윤의 수양딸이 되는 영악한 소녀다. 초선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욕망하며, 욕망을 위해 자신 가진 모든 것을 이용한다.
“삼국지서 강한 인상 남긴 초선, 도발적으로 도전적으로 그렸죠”
▷초선은 실존 인물인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만 나오는 창작 인물이다. 다만 정사에 이런 기록이 있다. 동탁의 시녀 중 하나가 여포와 통정하다 걸려 곤욕을 치렀다는 기록이다. 여기에 이름을 부여한 것이 나관중이다.”

▷삼국지 팬이 많다. 부담되지 않았나.
“맞다. 재미있게 쓸 자신은 있었지만 겁도 났다. 초선이란 인물을 도발적으로, 도전적으로 재해석했다. 기존 삼국지 독자의 반감을 사지 않을까 걱정도 들지만, 그런 분들도 재미있게 신선하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다.”

▷<체공녀 강주룡>, <카카듀>에 이어 세 번째 역사 소설이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해야 하다 보니 쓰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고증을 매우 의식하는 편이다. 자료 조사를 많이 한다. 하지만 고증과 서사적 완결성 중 양자택일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서사적 완결성을 고른다. 연구자가 아니고 소설가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려는 것은 학술적으로 모순이 없는 자료를 쓰려는 것이 아니다. 소설을 쓰려는 것이다. 소설 속 내용이 허구라는 것을 나도 알고 독자도 안다. 다만 이 허구적 재현이 역사적 진실과 스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주로 장편소설을 썼다. 이유가 있나.
“장편소설인 <체공녀 강주룡>으로 상을 받고 단행본을 낸 후 출판사에서 장편소설 써달라고 많이 요청한다. 장편을 쓸 수 있는 젊은 작가가 드물어서 그런 것 같다. 장편 쓸 수 있는 작가라고 출판계에 알려지면 장편 계약이 많이 들어 온다.”

▷개인적으로도 장편소설을 선호하나.
“그때그때 다르다. 단편은 보석 세공, 장편은 거대한 조각상을 만드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똑같이 깎는 작업이지만 어디를 어떻게 갈고 닦아야 하는지는 다르다. 단편은 빠르게 어떤 형태가 보이지만, 조그만 보석 다루듯 작은 부분을 잘 다듬어야 한다. 어느 쪽이 좋다고 말하기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

▷책을 많이 낸다. 1년에 책 한 권 내는 것이 목표라고.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나?
“좋아하는 게 많다. 관심 분야가 넓고 얇은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 다르게 접근하면 아이디어가 좋다기보다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이걸 소설로 쓸 수 없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버리는 아이디어가 거의 없다. 그래서 아이디어가 많은 것처럼 보인다. 초선도 그렇다. 이런 인물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이를 글로 잘 쓰지 않을 뿐이다.”

▷하루 일과는? 출근하듯 자리에 앉아 글을 쓰나?
“나는 진짜 게으르다. 현대인의 초상이다. 자극에 엄청 약하고, 도파민의 노예다.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게임으로 보내기도 한다. 한 번 어떤 것에 빠지면 충성도 높은 고객이 된다고 할까. 일본어로 ‘야리코미’라는 말이 있는데, 파고들기형 플레이어라는 뜻이다. 게임 속 모든 요소를 모두 파헤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 글쓰기도 비슷해서 한 번 앉으면 오래 앉아 있는다. 작업 몰입기에는 잠자고 밥 먹고 글쓰기만 할 수도 있다. 거의 생명을 갉아먹으면서 글을 쓰는 방식이라 이런 습관을 고쳐야겠다고 생각은 한다.”
소설가 박서련 /임대철 기자
소설가 박서련 /임대철 기자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한 적 있는데.
“독자 입장에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자기 복제를 좋아하지 않는다. 단언하기는 그렇긴 한데, 나 자신은 도전하지 않았던 소재를 찾아내고 그것을 소재로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있다. 작가는 자기 갱신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나 싶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게 좋지만, 독자에 따라 싫어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 두 번째 장편 <마르타의 일>은 현대를 배경으로 스릴러 요소를 넣었다. 전작인 <체공녀 강주룡>와 비슷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사람은 실망하기도 했다. 바라던 바였다. <체공녀 강주룡>은 내 역량을 아득하게 뛰어넘은 작품이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작품이다. 많은 사람이 이 작가는 계속해서 역사 소설을 쓰겠구나 하는 인식이 있었는데, 그걸 깨고 싶었다. 얼른 동시대물을 써서 빨리 실망하게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다. <마르타의 일>을 읽고 낯설어하는 독자도 있었지만, <마르타의 일>을 통해 <체공녀 강주룡>을 읽게 된 독자도 많다. 이런 시도를 계속하다 보니 독자들도 이제는 박서련이 또 다른 걸 썼겠구나 하고 당연하게 생각해 주는 것 같다.”

▷영상화 예정된 작품은 없나.
“<체공녀 강주룡>의 영화 판권이 팔렸다가 만료돼 다시 논의 중이다. <마르타의 일>과 <마법소녀 은퇴합니다>도 판권이 팔렸다. 영화 이야기를 다룬 <카카듀>는 영화인들이 탐낼만한 한데 아직 판권이 나가지 않았다. 가장 영화로 보고 싶은 작품은 <카카듀>다.”

▷다음 작품은?
“가장 빨리 예정된 것은 <마법소녀 은퇴합니다>의 후속작이다. 올해 하반기에 이 책으로 인사를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