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한국전력의 적자를 줄이기 위해 2021년 이후 일곱 번에 걸쳐 산업용 전기요금을 63.3% 올렸다. 그 결과 2021년 ㎾h당 94.3원으로 미국(평균 99.8원) 중국(114.7원)보다 낮았던 한국 산업용 전기요금이 작년 말에는 153.5원으로 이들 나라보다 30% 이상 높아졌다. 과거 싸고 안정적인 공급으로 우리 제조업의 경쟁력 원천이었던 전기료가 이젠 비싼 요금과 수급 불안으로 기업 발목을 잡는 형국이 됐다.

그 배경엔 ‘요금의 정치화’가 있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3년 새 60% 이상 급등하는 동안 가정용 전기요금은 38.8% 상승하는 데 그쳤다. 가정용 요금을 대폭 올리면 표가 떨어진다는 정치 셈법에 상대적으로 저항이 작은 산업용 요금을 집중적으로 올린 탓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고압선을 이용해 송배전하는 만큼 전력 손실이 적어 가정용보다 원가가 낮지만 실제 요금은 가정용보다 높아지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이런 나라는 한국과 중국 정도밖에 없다고 한다. 미국은 산업용(112원)이 주택용(222원)의 절반에 불과하다.

석유화학·태양광업체 등을 중심으로 저렴한 전기료를 찾아 동남아시아로 공장을 옮기는 기업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은 그 후과다. 반면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경각심을 잃은 과소비로 인해 국민의 1인당 전기 사용량은 세계 3위 수준이다.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서 비롯된 ‘정치 요금’의 그늘은 너무나 짙고 깊다. 한전에 200조원 넘는 부채를 떠넘기고, 인공지능(AI)과 반도체산업에 필수인 전력망 투자를 위축시킨 데 이어 싼 요금을 찾아 국내 제조업 공장들이 동남아로 이전하도록 조장하고 있다. 결국 그 피해는 국가와 국민에게 돌아간다. 기형적인 전기료 구조를 바꿔야 한다. 정치가 좌우하는 요금 결정 구조에서 탈피해 원가와 수요에 연동하는 합리적 체제를 구축하는 게 급선무다. 국가 에너지 생태계는 물론 미래 산업 경쟁력이 달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