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문일답] ② 리일규 "아무것도 없으니 귀국할 때 칫솔까지 들고 오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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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외교관 리일규 전 참사 연합뉴스 인터뷰
"북한 청년, 장마당 세대 아닌 '한류 세대'…아무리 보지 말라 해도 안 들어" 지난해 11월 탈북한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 정무참사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층 열악해진 북한 경제 상황과 관련해 "북한에 있는 사람들이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다'며 쓰고 있던 칫솔까지 다 들고 와야 한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리 참사는 23일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2시간여 진행된 인터뷰에서 "2019년 8월 이후 북한에 들어가지 않아 사정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이 한마디로 내부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리 참사는 "나를 포함해 누구든 한 번쯤 남한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며 "한국에 대한 좋은 감정과 호기심은 있었지만 결국 등을 떠민 건 (북한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북한 외교 분야 동향과 북한 정권의 잔혹성, '김주애'로 알려진 김정은 국무위원장 딸에 대한 내부 평가 등에 막힘 없는 대답을 내놓았다.
그가 양손을 휘저으며 설명할 때마다 손목에서 애플워치가 반짝였다.
다음은 리 참사와의 인터뷰 일문일답.
-- 구체적으로 탈북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 아버지가 원래 조선중앙통신 기자 출신이다.
그 이후로 통일전선부에 들어가셔서 대남사업을 하셨다.
북한에서는 나를 포함해 누구든 한 번쯤 남한에 살고 싶다는 생각 꾸준히 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에 대한 호기심 많이 가졌고 한국에 먼저 오신 고영환 박사님, 태영호 의원님, 류현우 대사님 스토리 많이 봤다.
열심히 일하다가 경추 추간판 탈출증이 생겨 오른쪽 팔부터 마비 증상이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멕시코에 가서 내 돈으로 치료하겠다고 전보를 보냈는데 안 된다고 하루 만에 답이 왔다.
보통 심의하는데 2∼3일 걸리고 오가는 시간 계산하면 1주일을 계산했다.
이건 명백한 음모라고 생각이 들었고 상당한 배신감을 느꼈다.
'너는 그렇게 일하다 죽어도 모른다'는 걸로 느껴졌다.
-- 2019년 참사 부임 이후 평양에 다녀온 적이 있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북한 경제 사정은 어떤가.
▲ 짧게 대답드린다.
2023년 8월부터 문 열고 해외파견자 소환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어떤 소리 나왔냐면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다.
쓰고 있던 칫솔까지 다 가지고 들어오라"고 했다.
이 한마디면 내부 열악한 상황 짐작하실 수 있을 것이다.
-- 북한이 고난의 행군 거치면서 90년대 중후반부터 '곧 망할 수 있을 것'이란 이야기 나왔는데 지금은 4대 세습 이야기도 나온다.
북한 정권 붕괴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 제가 붕괴가 가까운 시대가 온다고 하면 정말 무책임한 발언이다.
북한 사회 잘 들여다보면 그 사회는 분명 대한민국 사회나 정상적 사고로는 도무지 버텨낼 수 없는 사회고 무너져야만 하는 사회다.
그런데도 수십년간 70년 이상 동안 버텨내고 붕괴되지 않은 건 그 나름 체제 유지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안정적 권력 승계도 북한 내부를 장악하고 있는 당중앙위 조직지도부가 강하고 그래서 무너지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독재는 영원한 적이 없다.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고 무너질 것을 기다리는 거보다 가속하는 게 우리 임무 아닌가 싶다.
-- 대북제재를 북한이 어떻게 버틸 수 있나.
▲ 사람들은 북한을 옥죄면 반항심 생겨 정권이 흔들리고 그래서 체제가 무너진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정상적인 사고에서 나온 생각이다.
김일성 사망하고 고난의 행군 시작되고 1996년에 아사자가 300만명씩 생길 때 김정일이 뭐라고 했냐면, '300만명의 당원만 있으면 혁명 다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잘 새겨들어야 한다.
다 죽어도 상관없고 나를 추종하는 사람만 있으면 나는 괜찮다는 것이다.
좀 더 심화시키면 굶든 말든 다 죽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민생이 어렵다고 반기들 사람 없다.
도적질, 강도질로 먹고 살길을 찾지 이걸 무너뜨리고 이런 것은 감히 생각 못 한다.
-- 최근 탈북자들 이야기 들으면 장마당 세대는 기성세대와 다르다고 하던데.
= 세대별로 걸어온 길이 다르고 세뇌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
젊은 세대들은 한류를 접한 세대다.
이들은 장마당 세대 아니라 한류 세대다.
충성심과 한류가 같이 머릿속에 들어왔는데 한류 쪽으로 간 것이다.
아무리 말해도 안 듣는다.
그러니 어린아이들을 총살도 하고 그러는 것이다.
북한에 '중이 고기 맛을 보면 이까지 잡아먹는다'는 말이 있다.
죽여도 죽여도 젊은 사람은 다르다.
젊은 사람은 잃을 게 없다.
--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정확한 역할은
▲ 개인적으로도 접촉하고 봤는데, 하는 업무는 김정은이 행사 가거나 시찰 갈 때 사전 답사하고 안전하게 실수 없이 행사 진행하도록 하는 역할이다.
의전과도 조금 다르다.
김여정이 정책에 대해 알 수 있는 여건이나 경험이나 그런 것은 없다.
근데 왜 김여정 이름으로 담화가 나오냐면 그건 어느 나라 관련해서 담화가 나오는지 보면 (안다). 대남, 미국, 일본 관계 언급할 때다.
수교 안 한 나라들이다.
그건 국가 공식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중에라도 미국, 일본, 한국과 다시 마주칠 때 '그건 개인 견해야. 공식 입장 아니야. 그 사람 선전 담당 부부장이야' 이런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 북한 내에서 김정일의 아들이 김정은이라는 것을 언제 인지했나.
후계자 낙점이 알려진 시점은.
▲ 2010년도 7월 당 3차 대표자 회의 때 공개됐고, 그 몇 년 전에 '발걸음' 노래 나와 후계자가 준비되는 줄 알고 있었다.
그때 고위직 간부들 행사에 간 사람이 김영남(당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벤츠에서 내린 젊은 사람에게 90도 인사를 하더라고 했다.
이런 여러 에피소드가 돌면서 '후계자가 준비되고 있구나' 내적 소문이 무성했다.
-- 북한 내 김정은의 딸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 처음에는 신기해했다.
김일성, 김정일은 공개 후계자 책정 전에 한 번도 자식을 대동한 적이 없었다.
호기심을 가지고 저분이 자제분이네, 귀엽게 생겼네 등의 말이 확산했다.
그런데 반복되다 보니 '저 나이 학교 갈 나이인데', '저렇게 옷 입고 다녀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며 거부적 분위기로 가는 것이다.
거부감 표출된 게 주석단에서 (김정은이 딸에게) 뽀뽀했을 때다.
자식 소중하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나.
후계자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과반수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
그냥 '데리고 다닌다' 이 정도다.
-- 김정은이 아들이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 김정은 사생활은 전혀 아는 바가 없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는 절대 입 밖으로 안 한다.
김씨 일가 잘못 이야기했다간 짧은 혀 때문에 긴 목이 잘린다고 한다.
/연합뉴스
"북한 청년, 장마당 세대 아닌 '한류 세대'…아무리 보지 말라 해도 안 들어" 지난해 11월 탈북한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 정무참사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층 열악해진 북한 경제 상황과 관련해 "북한에 있는 사람들이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다'며 쓰고 있던 칫솔까지 다 들고 와야 한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리 참사는 23일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2시간여 진행된 인터뷰에서 "2019년 8월 이후 북한에 들어가지 않아 사정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이 한마디로 내부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리 참사는 "나를 포함해 누구든 한 번쯤 남한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며 "한국에 대한 좋은 감정과 호기심은 있었지만 결국 등을 떠민 건 (북한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북한 외교 분야 동향과 북한 정권의 잔혹성, '김주애'로 알려진 김정은 국무위원장 딸에 대한 내부 평가 등에 막힘 없는 대답을 내놓았다.
그가 양손을 휘저으며 설명할 때마다 손목에서 애플워치가 반짝였다.
다음은 리 참사와의 인터뷰 일문일답.
-- 구체적으로 탈북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 아버지가 원래 조선중앙통신 기자 출신이다.
그 이후로 통일전선부에 들어가셔서 대남사업을 하셨다.
북한에서는 나를 포함해 누구든 한 번쯤 남한에 살고 싶다는 생각 꾸준히 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에 대한 호기심 많이 가졌고 한국에 먼저 오신 고영환 박사님, 태영호 의원님, 류현우 대사님 스토리 많이 봤다.
열심히 일하다가 경추 추간판 탈출증이 생겨 오른쪽 팔부터 마비 증상이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멕시코에 가서 내 돈으로 치료하겠다고 전보를 보냈는데 안 된다고 하루 만에 답이 왔다.
보통 심의하는데 2∼3일 걸리고 오가는 시간 계산하면 1주일을 계산했다.
이건 명백한 음모라고 생각이 들었고 상당한 배신감을 느꼈다.
'너는 그렇게 일하다 죽어도 모른다'는 걸로 느껴졌다.
-- 2019년 참사 부임 이후 평양에 다녀온 적이 있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북한 경제 사정은 어떤가.
▲ 짧게 대답드린다.
2023년 8월부터 문 열고 해외파견자 소환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어떤 소리 나왔냐면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다.
쓰고 있던 칫솔까지 다 가지고 들어오라"고 했다.
이 한마디면 내부 열악한 상황 짐작하실 수 있을 것이다.
-- 북한이 고난의 행군 거치면서 90년대 중후반부터 '곧 망할 수 있을 것'이란 이야기 나왔는데 지금은 4대 세습 이야기도 나온다.
북한 정권 붕괴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 제가 붕괴가 가까운 시대가 온다고 하면 정말 무책임한 발언이다.
북한 사회 잘 들여다보면 그 사회는 분명 대한민국 사회나 정상적 사고로는 도무지 버텨낼 수 없는 사회고 무너져야만 하는 사회다.
그런데도 수십년간 70년 이상 동안 버텨내고 붕괴되지 않은 건 그 나름 체제 유지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안정적 권력 승계도 북한 내부를 장악하고 있는 당중앙위 조직지도부가 강하고 그래서 무너지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독재는 영원한 적이 없다.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고 무너질 것을 기다리는 거보다 가속하는 게 우리 임무 아닌가 싶다.
-- 대북제재를 북한이 어떻게 버틸 수 있나.
▲ 사람들은 북한을 옥죄면 반항심 생겨 정권이 흔들리고 그래서 체제가 무너진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정상적인 사고에서 나온 생각이다.
김일성 사망하고 고난의 행군 시작되고 1996년에 아사자가 300만명씩 생길 때 김정일이 뭐라고 했냐면, '300만명의 당원만 있으면 혁명 다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잘 새겨들어야 한다.
다 죽어도 상관없고 나를 추종하는 사람만 있으면 나는 괜찮다는 것이다.
좀 더 심화시키면 굶든 말든 다 죽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민생이 어렵다고 반기들 사람 없다.
도적질, 강도질로 먹고 살길을 찾지 이걸 무너뜨리고 이런 것은 감히 생각 못 한다.
-- 최근 탈북자들 이야기 들으면 장마당 세대는 기성세대와 다르다고 하던데.
= 세대별로 걸어온 길이 다르고 세뇌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
젊은 세대들은 한류를 접한 세대다.
이들은 장마당 세대 아니라 한류 세대다.
충성심과 한류가 같이 머릿속에 들어왔는데 한류 쪽으로 간 것이다.
아무리 말해도 안 듣는다.
그러니 어린아이들을 총살도 하고 그러는 것이다.
북한에 '중이 고기 맛을 보면 이까지 잡아먹는다'는 말이 있다.
죽여도 죽여도 젊은 사람은 다르다.
젊은 사람은 잃을 게 없다.
--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정확한 역할은
▲ 개인적으로도 접촉하고 봤는데, 하는 업무는 김정은이 행사 가거나 시찰 갈 때 사전 답사하고 안전하게 실수 없이 행사 진행하도록 하는 역할이다.
의전과도 조금 다르다.
김여정이 정책에 대해 알 수 있는 여건이나 경험이나 그런 것은 없다.
근데 왜 김여정 이름으로 담화가 나오냐면 그건 어느 나라 관련해서 담화가 나오는지 보면 (안다). 대남, 미국, 일본 관계 언급할 때다.
수교 안 한 나라들이다.
그건 국가 공식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중에라도 미국, 일본, 한국과 다시 마주칠 때 '그건 개인 견해야. 공식 입장 아니야. 그 사람 선전 담당 부부장이야' 이런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 북한 내에서 김정일의 아들이 김정은이라는 것을 언제 인지했나.
후계자 낙점이 알려진 시점은.
▲ 2010년도 7월 당 3차 대표자 회의 때 공개됐고, 그 몇 년 전에 '발걸음' 노래 나와 후계자가 준비되는 줄 알고 있었다.
그때 고위직 간부들 행사에 간 사람이 김영남(당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벤츠에서 내린 젊은 사람에게 90도 인사를 하더라고 했다.
이런 여러 에피소드가 돌면서 '후계자가 준비되고 있구나' 내적 소문이 무성했다.
-- 북한 내 김정은의 딸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 처음에는 신기해했다.
김일성, 김정일은 공개 후계자 책정 전에 한 번도 자식을 대동한 적이 없었다.
호기심을 가지고 저분이 자제분이네, 귀엽게 생겼네 등의 말이 확산했다.
그런데 반복되다 보니 '저 나이 학교 갈 나이인데', '저렇게 옷 입고 다녀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며 거부적 분위기로 가는 것이다.
거부감 표출된 게 주석단에서 (김정은이 딸에게) 뽀뽀했을 때다.
자식 소중하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나.
후계자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과반수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
그냥 '데리고 다닌다' 이 정도다.
-- 김정은이 아들이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 김정은 사생활은 전혀 아는 바가 없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는 절대 입 밖으로 안 한다.
김씨 일가 잘못 이야기했다간 짧은 혀 때문에 긴 목이 잘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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