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으로 건반을 내리친 임윤찬의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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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임성우의 클래식을 변호하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연주한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연주한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최근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리사이틀 무대에 올려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작품입니다.
임윤찬이 이 곡을 연주한 국내 리사이틀 공연은 당시 티케팅의 관문을 넘지 못한 많은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큰 좌절감을 안겨주기도 하였는데, 반갑게도 아래 사이트를 방문하여 메디치TV에 본인의 계정을 등록한 후(계정 등록 절차는 본인의 이메일과 비밀번호를 입력함으로써 간단히 완료됩니다) 로그인만 하면 임윤찬의 공연을 Medici TV(https://www.medici.tv/en)를 통해 (최소한 베르비에 축제 기간 동안에는)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고 합니다.
▶(관련 리뷰) 머리카락까지 흠뻑 젖은 임윤찬…'대체 불가' 연주로 모든 걸 쏟아냈다
위의 메디치 TV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이번 베르비에 축제에서의 임윤찬의 공연은 국내에서 리사이틀을 가진 프로그램과 동일한데, 특히 이전에 유튜브 등 다른 매체를 통해서도 공개되지 않았던 임윤찬의 <전람회 그림> 실황 연주를 좋은 화질과 음질로 공짜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특별한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 그의 절친 하르트만을 추모하는 전람회에서 보았던 하르트만의 그림들에 영감을 받아 작곡된 작품입니다.
▶(관련 칼럼) 갑작스레 세상 떠난 친구의 그림…'불멸의 음악'으로 살아나다 [김수현의 마스터피스]
이 작품은 원래 피아노곡으로 쓰여졌지만 오케스트라적인 유전인자를 가진 곡이어서인지는 몰라도 피아노곡인 원곡을 토대로 하여 다양한 오케스트라를 위한 편곡 버전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는데, 그중에서도 오케스트레이션의 천재 라벨의 편곡판이 오늘날까지 많은 클래식 애호가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라벨 편곡]
그리고 호로비츠와 같은 피아니스트는 원곡을 더 기교적으로 화려하게 편곡을 하여 연주하기도 하였는데, 애호가에 따라서는 호로비츠의 그러한 편곡이 원곡의 투박하면서도 묵직한 매력을 손상시킨다고 하여 불만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호로비츠 편곡]
임윤찬의 경우 원래 호로비츠 편곡 버전을 연주한 것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지만, 실제 연주를 들어보면 호로비츠 편곡이 아니라 원곡을 토대로 하되 (아마도 라벨의 오케스트라 편곡 버전까지도 검토한 후) 자신만의 독자적인 관점을 담은 편곡 버전으로 연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전람회와 그림
이 곡을 감상할 때는 크게 '전람회'와 '그림'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는데, 무소르그스키는 당시 전람회에서 전시된 그림 가운데 감명을 받은 총 10개의 그림들을 선택하여 이를 음악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참고로, 이 작품의 대상이 된 10개의 그림 가운데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은 아래에서 살펴보는 것처럼 5, 6, 8, 9, 10번 곡과 관련된 6점의 그림입니다).
그림을 묘사하는 곡들은 대체로 빠른 곡과 느린 곡을 교차로 배치하여 변화를 주고 있는데, 무소르그스키는 마치 감상자가 그림과 그림 사이를 느린 걸음걸이로 옮겨 다니며 차례로 감상하는 장면을 묘사라도 하듯이 그림을 묘사하는 개별 악장들 사이 사이에 아래와 같은 (느린 걸음의 산책을 의미하는) 프롬나드를 삽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프롬나드는 사실 단순한 삽입구라기보다는 <전람회의 그림>이라는 작품에서 '그림'이라는 기둥에 대응하여 '전람회'를 상징하는 음악의 또 다른 축으로 작용합니다.
각 프롬나드는 모두 거의 비슷한 음형에 기초하여 곡의 통일성을 부여하는 데에 일조하지만 곡이 진행되면서 약간의 변화가 주어집니다. 그리고, 또 다른 특이한 점은 시작부터 전반부 2악장까지는 악장들 사이마다 프롬나드가 등장하지만 그 후 프롬나드는 매 악장 사이에 나타나지는 않고, 3번 및 4번 곡 이후, 그리고 5번 및 6번 곡 이후 한 번씩 등장한 후 사라집니다.
이렇게 사라진 프롬나드는 그 뒤 감상자가 그림 속에 들어간 것과 같이 곡 자체에 스며드는데, 8번 곡 카타코움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장면에서 등장한 후, 마지막 10번 곡(키이우의 영웅문)에서는 더 분명하게 나타나 감상자가 키이우의 커다란 문을 걸어 통과하는 듯한 느낌마저 자아냅니다.
임윤찬의 연주는 라벨의 오케스트라용 편곡판처럼 5번 곡 이후 등장하는 다섯 번째 프롬나드를 생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프롬나드 연주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손가락이 아니라 주먹쥔 손을 해머처럼 이용하여 타건을 하는 장면이 포착되어 흥미로웠습니다(늘 그렇듯이 임윤찬의 핑거링 제스쳐는 매우 독특하면서도 음악적이어서 이를 영상으로 보면서 감상할 경우 더욱 음악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듭니다).
아래는 이번 베르비에 축제에서 임윤찬이 연주한 <전람회의 그림>의 음원을 악보와 함께 소개한 유튜브 영상입니다.
아울러 유튜브에는 어린 나이의 조성진이 오래전에 차이코프스키 콩쿨에서 연주한 <전람회의 그림>도 감상할 수 있는데, 이 역시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우 완성도가 높아 놀라게 됩니다.
두 연주를 비교해볼 때, 매우 정교하면서도 시적인 조성진의 연주가 수채화라면 상대적으로 임윤찬의 <전람회의 그림>은 과감하고도 힘찬 필치로 그린 유화와도 같은 느낌인데, 이하에서는 해당 곡의 순서에 따라 곡의 구체적인 내용과 함께 두 연주자의 연주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프롬나드 1
첫 프롬나드는 그림을 감상하러 전람회로 들어가는 감상자의 기대와 흥분을 담은 듯 알레그로의 활기찬 템포로 시작한 후 급작스럽게 1곡 ‘난쟁이(Gnomus)’로 이어집니다. 1. 난쟁이
제1곡이 묘사하는 전람회의 첫 그림은 안짱다리로 절뚝거리며 달려가는 난쟁이를 그린 하르트만의 스케치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래는 그의 졸업작품인데, 무소르그스키가 1곡에서 묘사한 난쟁이 그림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음악은 강약의 대비와 스포르잔도(sf)의 활용, 그리고 불규칙하게 흔들리는 리듬 등에 의해 (절뚝이는) 기괴한 난쟁이의 움직임을 절묘하게 포착해내고 있습니다. 어린 조성진의 난쟁이는 그 리듬이 매우 음악적이고 정교하여 놀라움을 자아냅니다. 임윤찬의 버전은 좀 더 과감한데, 임윤찬은 침묵의 공간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으시시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또 군데군데 더욱 강렬한 강약 대비나 루바토를 적용하여 매우 자유분방하고 더욱 그래픽한 표현을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프롬나드 2
첫 그림을 감상한 후 다시 처음의 프롬나드와 동일한 프롬나드가 아래와 같이 등장하는데, 첫 그림에 충격을 받았는지 음악적 조성과 빠르기가 다소 차분하고 섬세한 분위기로 변화되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그다음 그림의 느린 연주로 연결됩니다. 2. 옛성
두 번째 곡은 중세의 옛 성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음유시인에 관한 하르트만의 그림을 묘사한 것입니다. 이 그림 역시 현재 어떤 그림이었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만, 라벨은 오케스트라 편곡시 어두운 빛깔의 바수운과 알토 색소폰 이중주로 그 장면을 채색하고 있습니다. 조성진의 연주가 음유시인의 노래의 칸타빌레적인 분위기를 잘 살렸다면, 임윤찬의 연주는 옛성의 분위기를 좀 더 강렬하게 표현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곡의 마지막에 왼손 스타카토의 타건을 강렬하게 표현한 후 허공에 주제 선율을 흩뿌리는 임윤찬의 표현력은 가히 압도적입니다.
프롬나드 3
두 가지 그림에서 받은 예술적 감흥이 컸음을 나타내는지 아니면 이어지는 궁전을 암시하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세 번째 프롬나드에서는 감상자의 발걸음이 좀 더 진중하고 무게감이 있게 변합니다. 임윤찬은 이 프롬나드의 마지막에 이르러 스타카토의 표현을 강조하는데(이는 아마도 이어지는 곡의 성격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기 위한 포석으로 보입니다), 특히 주먹 쥔 손으로 피아노 건반을 타건하는 모습에서는 이 곡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자신감이 묻어납니다.
3. 튈르리 궁전 - 놀다가 싸우는 아이들
이 곡은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부근 튈르리 궁전 정원에서 아이들이 놀다가 싸우는 장면을 그린 하르트만의 그림에 기초한 것입니다. 이 그림 역시 현재는 소실되어 어떤 그림인지 구체적으로 알 길이 없습니다. 조성진이나 임윤찬은 모두 무소르그스키가 악보에 기재한 위와 같은 레가토와 스타카토의 섬세한 음표들을 정확하게 재현해내는데, 이 부분도 조성진의 연주에서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반면, 루바토를 과감히 적용한 임윤찬의 연주는 궁정 정원과 아이들의 싸움이 리얼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4. 소달구지
프롬나드 없이 바로 이어지는 다음 그림 장면은 커다란 바퀴가 달린 폴란드의 소달구지(Bydlo, 우마차)에 관한 것인데, 마치 우직하게 굴러가는 소달구지처럼 3도 상행으로 집요하게 반복되는 저음 위로 역시 낮은 음역의 피아노가 고달픈 폴란드 농민들의 삶을 묘사하듯 구슬픈 가락을 노래합니다. 라벨은 오케스트라 편곡시 곡을 여리게 시작한 후 거대하게 형성되는 크레센도에 이어지는 디미누엔도를 통해 소달구지가 저 멀리서부터 감상자의 앞을 지나 다시 저 멀리로 사라지는 광경을 표현한 바 있습니다만, 무소르그스키의 피아노 원곡은 우마차가 등장하는 처음부터 ff로 연주되도록 지시되어 있습니다.
조성진은 처음부터 페달을 충분히 사용하여 장엄함을 표현하는데, 임윤찬은 짧지만 강렬한 스카타토음과 함께 삐걱이는 마차를 좀 더 강조하면서 시작한 후 (점점 빌드업되어 클라이막스를 형성할 때는 페달을 충분히 쓰지만) 곧 다시 스타카토 표현을 강조하면서 여리게 마무리를 하는 부분이 독특합니다.
프롬나드 4
네 번째 곡의 여운은 이어지는 프롬나드에도 남아 있는데, 이전과 달리 조용하고(Tranquilo) 명상적인 분위기의 프롬나드가 울리는데, 이어지는 노래는 가볍고 경쾌한 느낌마저 자아내어 다섯 번째 곡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조성진의 연주는 뉘앙스가 아주 풍부하여 인상적인데 반해, 임윤찬의 연주는 좀 더 신중함이 느껴져 긴장감을 더합니다.
5. 껍질을 덜 벗은 햇병아리들의 발레
하르트만의 다섯 번째 그림은 갓 알에서 깨어나오는 햇병아리들을 묘사한 것인데, 하르트만은 발레 작품을 위해 아래와 같이 아직 껍질을 덜 벗은 아기 병아리를 묘사하는 특별한 의상을 직접 디자인했다고 하는군요. 무소르그스키는 이런 햇병아리들의 움직임이나 소리를 꾸밈음과 스타카토 아티큘레이션, 그리고 다채로운 리듬을 통해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조성진과 임윤찬의 연주는 모두 기교적으로 흠이 없는 정교한 피아니즘을 선사하는데, 역시 조성진은 아기자기한 맛을 잘 살려낸 반면에 임윤찬은 여기서도 (땀방울을 진하게 떨어뜨리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아주 찐한 표현을 만들어냅니다.
6. 두 폴란드 유대인, 부자와 가난뱅이
다섯 번째 곡에 (프롬나드 없이) 바로 이어지는 6번째 곡은 하르트만이 폴란드에 머물면서 그린 여러 장의 그림 중 무소르그스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으로 알려진 아래 두 그림에 관한 것입니다. 이 두 그림은 각각 하나는 부자(사무엘 골덴베르크)를, 다른 하나는 가난뱅이(슈밀레)를 대상으로 하여 대조를 이룹니다. 이 대조적인 두 그림처럼 무소르그스키는 부자 골덴베르크는 고상하고 위엄이 있는 음악(아래 악보 참조), 그리고 그와 대조적으로 마치 한 푼 줍쇼! 하는 식의 비굴한 느낌이 드는 음악 등 서로 대비를 이루는 음악 소재를 먼저 제시한 다음, 후반부에는 이 두 가지 음악적 소재를 활용하여 곡을 대위법적으로 전개시키고 있습니다. 조성진이나 임윤찬의 연주는 모두 타건 하나하나가 매우 정교하지만, 조성진은 투명한 반면 임윤찬 거침없는 템포로 더 격렬합니다.
프롬나드 5
그 후 다시 프롬나드가 연주되는데, 마치 제시부를 재현하는 것처럼 처음의 프롬나드를 거의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어서인지 몰라도 라벨은 오케스트라 편곡에서 이 프롬나드는 생략하고 있습니다. 임윤찬은 라벨의 예를 따라 이 프롬나드를 생략하지만 조성진은 원곡에 충실한 모범적인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7. 리모주 장터
프랑스의 리모주 장터에서 여자들이 격렬하게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그림을 표현한 곡인데, 이 또한 현재 어떤 그림인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음악은 빠른 템포로 진행되며 그러한 말다툼을 묘사하다가 마지막에 갑자기 어두운 느낌의 카타코움을 묘사하는 아주 느린 음악으로 바로 연결되며 듣는 이에게 놀라움을 줍니다. 이 곡에서도 조성진의 타건은 아주 정석적이고 깔끔하지만 임윤찬은 (제5 프롬나드를 생략한 채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받아) 마지막까지 격렬함을 이어갑니다.
8. 카타코움
이 곡은 하르트만이 랜턴을 들고 카타콤을 조사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아래 그림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곡은 어두운 지하동굴의 분위기와 에코를 느린 코드로 묘사하는 도입부로 시작합니다. 조성진의 경우도 어린 나이임에도 매우 강인한 표현력이 돋보이지만, 임윤찬의 경우 ff와 p dim.의 표현을 더욱 대조적으로 표현해내면서 보다 어두운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그 이후 감상자가 지하로 내려가는 모습을 묘사하는 듯 현악기의 트레몰로와 함께 (곡의 진행 도중에 사라졌던) 프롬나드 주제가 느린 템포에 의해 약간 변형된 모습으로 등장하며 감상자를 다소 으시시한 곳으로 이끕니다.
무소르그스키는 이 부분 악보에 러시아어로 '죽은 하르트만의 창조적 영혼이 나를 해골로 이끌고 해골은 생기를 얻으며 서서히 부드럽게 빛나기 시작한다'고 기재하였다고 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그 후 해골에 나타나는 변화를 묘사하듯 곡은 신비롭게 변화합니다.
9. 닭발 오두막
이 곡은 아래와 같이 하르트만이 그린 닭이 있는 오두막 모양의 시계에 관한 것입니다. 이 그림은 슬라브 민속 설화에 나오는 아래와 같은 마녀 바바야가가 거주하는 닭발 모양의 움직이는 기둥 위의 오두막을 시계 형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음악은 마치 마녀의 오두막이 닭처럼 성큼성큼 좇아오듯 시작하는데(아래 악보) 중간에는 시계 종소리도 들리는 듯합니다. 그 후 좀 더 음산한 느린 부분을 지나 곡은 다시 처음 부분으로 돌아가서 마무리된 후 바로 마지막 곡으로 이어집니다. 조성진이나 임윤찬은 여기서 자신들만의 비르투오소적인 기량을 마음껏 뽐내는데, 두 연주 모두 매우 박진감이 넘치지만 글리산도까지 과감하게 추가하며 땀에 뒤범벅이 된 채 연주하는 임윤찬의 모습이 좀 더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10. 키이우의 보가티르 대문
마지막 곡은 현재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이우의 성문에 관한 것인데, 당시 하르트만은 러시아의 영웅 보가티르를 기리는 성문의 디자인 공모에 참여하여 아래와 같은 멋진 그림을 그렸습니다. 실제로 성문이 건립되지는 못하였지만 하르트만은 이 작품을 자신의 최고의 작품으로 여겼다고 하네요. 제9곡에 바로 이어지는 마지막 10번 곡은 프롬나드 동기에 기초를 둔 거대한 선율(A)로 시작하는데, 마치 무스르그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의 유명한 대관식 장면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는 마치 감상자가 그림 속에 들어가 자기 눈 앞에 펼쳐지는 장대하고도 환상적인 큰 성문을 마주하는 느낌을 자아냅니다. [보리스 고두노프 대관식 장면]
그 후 그와 다른 분위기의 러시아 정교회의 찬송가 <당신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받았도다>와 유사한 선율(B)이 울려펴집니다.
이러한 두 개의 음악적 소재가 A-B-A-B와 같이 반복되다가 중간에 벨소리 등이 서서히 가세하여 울리면서 (마치 감상자가 그 영웅문을 걸어 통과하듯) 프롬나드가 처음의 형태로 좀 더 분명하게 울린 다음 (단지 10번 곡뿐만 아니라) 전체 곡을 마무리하는 어마무시하게 장엄한 피날레와 함께 마무리됩니다.
이 마지막 곡 또한 조성진과 임윤찬 두 피아니스트가 정말 듣는 이를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매우 흡인력 있는 연주를 들려줍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조성진의 연주에서는 훗날 쇼팽 콩쿠르 우승이 그저 우연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고, 온 영혼을 갈아넣는 듯 땀으로 뒤범벅되어 마치 피아노를 부서뜨릴 것과 같이 어마무시한 기세로 몰아붙이며 마지막 곡을 끝낸 후 별것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피아노 의자에서 일어서는 임윤찬의 모습에서는 벌써 거장의 강렬한 아우라가 느껴집니다.
조성진의 과거 실황 연주는 현재 유튜브에 올라와 있지만, 임윤찬의 베르비에 페스티벌 연주는 언제 메디치 TV에서 녹화 영상을 내릴지 모르므로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이번에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 임성우 - 클래식을 변호하다
임윤찬이 이 곡을 연주한 국내 리사이틀 공연은 당시 티케팅의 관문을 넘지 못한 많은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큰 좌절감을 안겨주기도 하였는데, 반갑게도 아래 사이트를 방문하여 메디치TV에 본인의 계정을 등록한 후(계정 등록 절차는 본인의 이메일과 비밀번호를 입력함으로써 간단히 완료됩니다) 로그인만 하면 임윤찬의 공연을 Medici TV(https://www.medici.tv/en)를 통해 (최소한 베르비에 축제 기간 동안에는)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고 합니다.
▶(관련 리뷰) 머리카락까지 흠뻑 젖은 임윤찬…'대체 불가' 연주로 모든 걸 쏟아냈다
위의 메디치 TV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이번 베르비에 축제에서의 임윤찬의 공연은 국내에서 리사이틀을 가진 프로그램과 동일한데, 특히 이전에 유튜브 등 다른 매체를 통해서도 공개되지 않았던 임윤찬의 <전람회 그림> 실황 연주를 좋은 화질과 음질로 공짜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특별한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 그의 절친 하르트만을 추모하는 전람회에서 보았던 하르트만의 그림들에 영감을 받아 작곡된 작품입니다.
▶(관련 칼럼) 갑작스레 세상 떠난 친구의 그림…'불멸의 음악'으로 살아나다 [김수현의 마스터피스]
이 작품은 원래 피아노곡으로 쓰여졌지만 오케스트라적인 유전인자를 가진 곡이어서인지는 몰라도 피아노곡인 원곡을 토대로 하여 다양한 오케스트라를 위한 편곡 버전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는데, 그중에서도 오케스트레이션의 천재 라벨의 편곡판이 오늘날까지 많은 클래식 애호가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라벨 편곡]
그리고 호로비츠와 같은 피아니스트는 원곡을 더 기교적으로 화려하게 편곡을 하여 연주하기도 하였는데, 애호가에 따라서는 호로비츠의 그러한 편곡이 원곡의 투박하면서도 묵직한 매력을 손상시킨다고 하여 불만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호로비츠 편곡]
임윤찬의 경우 원래 호로비츠 편곡 버전을 연주한 것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지만, 실제 연주를 들어보면 호로비츠 편곡이 아니라 원곡을 토대로 하되 (아마도 라벨의 오케스트라 편곡 버전까지도 검토한 후) 자신만의 독자적인 관점을 담은 편곡 버전으로 연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전람회와 그림
이 곡을 감상할 때는 크게 '전람회'와 '그림'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는데, 무소르그스키는 당시 전람회에서 전시된 그림 가운데 감명을 받은 총 10개의 그림들을 선택하여 이를 음악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참고로, 이 작품의 대상이 된 10개의 그림 가운데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은 아래에서 살펴보는 것처럼 5, 6, 8, 9, 10번 곡과 관련된 6점의 그림입니다).
그림을 묘사하는 곡들은 대체로 빠른 곡과 느린 곡을 교차로 배치하여 변화를 주고 있는데, 무소르그스키는 마치 감상자가 그림과 그림 사이를 느린 걸음걸이로 옮겨 다니며 차례로 감상하는 장면을 묘사라도 하듯이 그림을 묘사하는 개별 악장들 사이 사이에 아래와 같은 (느린 걸음의 산책을 의미하는) 프롬나드를 삽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프롬나드는 사실 단순한 삽입구라기보다는 <전람회의 그림>이라는 작품에서 '그림'이라는 기둥에 대응하여 '전람회'를 상징하는 음악의 또 다른 축으로 작용합니다.
각 프롬나드는 모두 거의 비슷한 음형에 기초하여 곡의 통일성을 부여하는 데에 일조하지만 곡이 진행되면서 약간의 변화가 주어집니다. 그리고, 또 다른 특이한 점은 시작부터 전반부 2악장까지는 악장들 사이마다 프롬나드가 등장하지만 그 후 프롬나드는 매 악장 사이에 나타나지는 않고, 3번 및 4번 곡 이후, 그리고 5번 및 6번 곡 이후 한 번씩 등장한 후 사라집니다.
이렇게 사라진 프롬나드는 그 뒤 감상자가 그림 속에 들어간 것과 같이 곡 자체에 스며드는데, 8번 곡 카타코움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장면에서 등장한 후, 마지막 10번 곡(키이우의 영웅문)에서는 더 분명하게 나타나 감상자가 키이우의 커다란 문을 걸어 통과하는 듯한 느낌마저 자아냅니다.
임윤찬의 연주는 라벨의 오케스트라용 편곡판처럼 5번 곡 이후 등장하는 다섯 번째 프롬나드를 생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프롬나드 연주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손가락이 아니라 주먹쥔 손을 해머처럼 이용하여 타건을 하는 장면이 포착되어 흥미로웠습니다(늘 그렇듯이 임윤찬의 핑거링 제스쳐는 매우 독특하면서도 음악적이어서 이를 영상으로 보면서 감상할 경우 더욱 음악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듭니다).
아래는 이번 베르비에 축제에서 임윤찬이 연주한 <전람회의 그림>의 음원을 악보와 함께 소개한 유튜브 영상입니다.
아울러 유튜브에는 어린 나이의 조성진이 오래전에 차이코프스키 콩쿨에서 연주한 <전람회의 그림>도 감상할 수 있는데, 이 역시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우 완성도가 높아 놀라게 됩니다.
두 연주를 비교해볼 때, 매우 정교하면서도 시적인 조성진의 연주가 수채화라면 상대적으로 임윤찬의 <전람회의 그림>은 과감하고도 힘찬 필치로 그린 유화와도 같은 느낌인데, 이하에서는 해당 곡의 순서에 따라 곡의 구체적인 내용과 함께 두 연주자의 연주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프롬나드 1
첫 프롬나드는 그림을 감상하러 전람회로 들어가는 감상자의 기대와 흥분을 담은 듯 알레그로의 활기찬 템포로 시작한 후 급작스럽게 1곡 ‘난쟁이(Gnomus)’로 이어집니다. 1. 난쟁이
제1곡이 묘사하는 전람회의 첫 그림은 안짱다리로 절뚝거리며 달려가는 난쟁이를 그린 하르트만의 스케치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래는 그의 졸업작품인데, 무소르그스키가 1곡에서 묘사한 난쟁이 그림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음악은 강약의 대비와 스포르잔도(sf)의 활용, 그리고 불규칙하게 흔들리는 리듬 등에 의해 (절뚝이는) 기괴한 난쟁이의 움직임을 절묘하게 포착해내고 있습니다. 어린 조성진의 난쟁이는 그 리듬이 매우 음악적이고 정교하여 놀라움을 자아냅니다. 임윤찬의 버전은 좀 더 과감한데, 임윤찬은 침묵의 공간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으시시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또 군데군데 더욱 강렬한 강약 대비나 루바토를 적용하여 매우 자유분방하고 더욱 그래픽한 표현을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프롬나드 2
첫 그림을 감상한 후 다시 처음의 프롬나드와 동일한 프롬나드가 아래와 같이 등장하는데, 첫 그림에 충격을 받았는지 음악적 조성과 빠르기가 다소 차분하고 섬세한 분위기로 변화되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그다음 그림의 느린 연주로 연결됩니다. 2. 옛성
두 번째 곡은 중세의 옛 성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음유시인에 관한 하르트만의 그림을 묘사한 것입니다. 이 그림 역시 현재 어떤 그림이었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만, 라벨은 오케스트라 편곡시 어두운 빛깔의 바수운과 알토 색소폰 이중주로 그 장면을 채색하고 있습니다. 조성진의 연주가 음유시인의 노래의 칸타빌레적인 분위기를 잘 살렸다면, 임윤찬의 연주는 옛성의 분위기를 좀 더 강렬하게 표현하는 데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곡의 마지막에 왼손 스타카토의 타건을 강렬하게 표현한 후 허공에 주제 선율을 흩뿌리는 임윤찬의 표현력은 가히 압도적입니다.
프롬나드 3
두 가지 그림에서 받은 예술적 감흥이 컸음을 나타내는지 아니면 이어지는 궁전을 암시하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세 번째 프롬나드에서는 감상자의 발걸음이 좀 더 진중하고 무게감이 있게 변합니다. 임윤찬은 이 프롬나드의 마지막에 이르러 스타카토의 표현을 강조하는데(이는 아마도 이어지는 곡의 성격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기 위한 포석으로 보입니다), 특히 주먹 쥔 손으로 피아노 건반을 타건하는 모습에서는 이 곡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자신감이 묻어납니다.
3. 튈르리 궁전 - 놀다가 싸우는 아이들
이 곡은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부근 튈르리 궁전 정원에서 아이들이 놀다가 싸우는 장면을 그린 하르트만의 그림에 기초한 것입니다. 이 그림 역시 현재는 소실되어 어떤 그림인지 구체적으로 알 길이 없습니다. 조성진이나 임윤찬은 모두 무소르그스키가 악보에 기재한 위와 같은 레가토와 스타카토의 섬세한 음표들을 정확하게 재현해내는데, 이 부분도 조성진의 연주에서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반면, 루바토를 과감히 적용한 임윤찬의 연주는 궁정 정원과 아이들의 싸움이 리얼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4. 소달구지
프롬나드 없이 바로 이어지는 다음 그림 장면은 커다란 바퀴가 달린 폴란드의 소달구지(Bydlo, 우마차)에 관한 것인데, 마치 우직하게 굴러가는 소달구지처럼 3도 상행으로 집요하게 반복되는 저음 위로 역시 낮은 음역의 피아노가 고달픈 폴란드 농민들의 삶을 묘사하듯 구슬픈 가락을 노래합니다. 라벨은 오케스트라 편곡시 곡을 여리게 시작한 후 거대하게 형성되는 크레센도에 이어지는 디미누엔도를 통해 소달구지가 저 멀리서부터 감상자의 앞을 지나 다시 저 멀리로 사라지는 광경을 표현한 바 있습니다만, 무소르그스키의 피아노 원곡은 우마차가 등장하는 처음부터 ff로 연주되도록 지시되어 있습니다.
조성진은 처음부터 페달을 충분히 사용하여 장엄함을 표현하는데, 임윤찬은 짧지만 강렬한 스카타토음과 함께 삐걱이는 마차를 좀 더 강조하면서 시작한 후 (점점 빌드업되어 클라이막스를 형성할 때는 페달을 충분히 쓰지만) 곧 다시 스타카토 표현을 강조하면서 여리게 마무리를 하는 부분이 독특합니다.
프롬나드 4
네 번째 곡의 여운은 이어지는 프롬나드에도 남아 있는데, 이전과 달리 조용하고(Tranquilo) 명상적인 분위기의 프롬나드가 울리는데, 이어지는 노래는 가볍고 경쾌한 느낌마저 자아내어 다섯 번째 곡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조성진의 연주는 뉘앙스가 아주 풍부하여 인상적인데 반해, 임윤찬의 연주는 좀 더 신중함이 느껴져 긴장감을 더합니다.
5. 껍질을 덜 벗은 햇병아리들의 발레
하르트만의 다섯 번째 그림은 갓 알에서 깨어나오는 햇병아리들을 묘사한 것인데, 하르트만은 발레 작품을 위해 아래와 같이 아직 껍질을 덜 벗은 아기 병아리를 묘사하는 특별한 의상을 직접 디자인했다고 하는군요. 무소르그스키는 이런 햇병아리들의 움직임이나 소리를 꾸밈음과 스타카토 아티큘레이션, 그리고 다채로운 리듬을 통해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조성진과 임윤찬의 연주는 모두 기교적으로 흠이 없는 정교한 피아니즘을 선사하는데, 역시 조성진은 아기자기한 맛을 잘 살려낸 반면에 임윤찬은 여기서도 (땀방울을 진하게 떨어뜨리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아주 찐한 표현을 만들어냅니다.
6. 두 폴란드 유대인, 부자와 가난뱅이
다섯 번째 곡에 (프롬나드 없이) 바로 이어지는 6번째 곡은 하르트만이 폴란드에 머물면서 그린 여러 장의 그림 중 무소르그스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으로 알려진 아래 두 그림에 관한 것입니다. 이 두 그림은 각각 하나는 부자(사무엘 골덴베르크)를, 다른 하나는 가난뱅이(슈밀레)를 대상으로 하여 대조를 이룹니다. 이 대조적인 두 그림처럼 무소르그스키는 부자 골덴베르크는 고상하고 위엄이 있는 음악(아래 악보 참조), 그리고 그와 대조적으로 마치 한 푼 줍쇼! 하는 식의 비굴한 느낌이 드는 음악 등 서로 대비를 이루는 음악 소재를 먼저 제시한 다음, 후반부에는 이 두 가지 음악적 소재를 활용하여 곡을 대위법적으로 전개시키고 있습니다. 조성진이나 임윤찬의 연주는 모두 타건 하나하나가 매우 정교하지만, 조성진은 투명한 반면 임윤찬 거침없는 템포로 더 격렬합니다.
프롬나드 5
그 후 다시 프롬나드가 연주되는데, 마치 제시부를 재현하는 것처럼 처음의 프롬나드를 거의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어서인지 몰라도 라벨은 오케스트라 편곡에서 이 프롬나드는 생략하고 있습니다. 임윤찬은 라벨의 예를 따라 이 프롬나드를 생략하지만 조성진은 원곡에 충실한 모범적인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7. 리모주 장터
프랑스의 리모주 장터에서 여자들이 격렬하게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그림을 표현한 곡인데, 이 또한 현재 어떤 그림인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음악은 빠른 템포로 진행되며 그러한 말다툼을 묘사하다가 마지막에 갑자기 어두운 느낌의 카타코움을 묘사하는 아주 느린 음악으로 바로 연결되며 듣는 이에게 놀라움을 줍니다. 이 곡에서도 조성진의 타건은 아주 정석적이고 깔끔하지만 임윤찬은 (제5 프롬나드를 생략한 채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받아) 마지막까지 격렬함을 이어갑니다.
8. 카타코움
이 곡은 하르트만이 랜턴을 들고 카타콤을 조사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아래 그림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곡은 어두운 지하동굴의 분위기와 에코를 느린 코드로 묘사하는 도입부로 시작합니다. 조성진의 경우도 어린 나이임에도 매우 강인한 표현력이 돋보이지만, 임윤찬의 경우 ff와 p dim.의 표현을 더욱 대조적으로 표현해내면서 보다 어두운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그 이후 감상자가 지하로 내려가는 모습을 묘사하는 듯 현악기의 트레몰로와 함께 (곡의 진행 도중에 사라졌던) 프롬나드 주제가 느린 템포에 의해 약간 변형된 모습으로 등장하며 감상자를 다소 으시시한 곳으로 이끕니다.
무소르그스키는 이 부분 악보에 러시아어로 '죽은 하르트만의 창조적 영혼이 나를 해골로 이끌고 해골은 생기를 얻으며 서서히 부드럽게 빛나기 시작한다'고 기재하였다고 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그 후 해골에 나타나는 변화를 묘사하듯 곡은 신비롭게 변화합니다.
9. 닭발 오두막
이 곡은 아래와 같이 하르트만이 그린 닭이 있는 오두막 모양의 시계에 관한 것입니다. 이 그림은 슬라브 민속 설화에 나오는 아래와 같은 마녀 바바야가가 거주하는 닭발 모양의 움직이는 기둥 위의 오두막을 시계 형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음악은 마치 마녀의 오두막이 닭처럼 성큼성큼 좇아오듯 시작하는데(아래 악보) 중간에는 시계 종소리도 들리는 듯합니다. 그 후 좀 더 음산한 느린 부분을 지나 곡은 다시 처음 부분으로 돌아가서 마무리된 후 바로 마지막 곡으로 이어집니다. 조성진이나 임윤찬은 여기서 자신들만의 비르투오소적인 기량을 마음껏 뽐내는데, 두 연주 모두 매우 박진감이 넘치지만 글리산도까지 과감하게 추가하며 땀에 뒤범벅이 된 채 연주하는 임윤찬의 모습이 좀 더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10. 키이우의 보가티르 대문
마지막 곡은 현재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이우의 성문에 관한 것인데, 당시 하르트만은 러시아의 영웅 보가티르를 기리는 성문의 디자인 공모에 참여하여 아래와 같은 멋진 그림을 그렸습니다. 실제로 성문이 건립되지는 못하였지만 하르트만은 이 작품을 자신의 최고의 작품으로 여겼다고 하네요. 제9곡에 바로 이어지는 마지막 10번 곡은 프롬나드 동기에 기초를 둔 거대한 선율(A)로 시작하는데, 마치 무스르그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의 유명한 대관식 장면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는 마치 감상자가 그림 속에 들어가 자기 눈 앞에 펼쳐지는 장대하고도 환상적인 큰 성문을 마주하는 느낌을 자아냅니다. [보리스 고두노프 대관식 장면]
그 후 그와 다른 분위기의 러시아 정교회의 찬송가 <당신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받았도다>와 유사한 선율(B)이 울려펴집니다.
이러한 두 개의 음악적 소재가 A-B-A-B와 같이 반복되다가 중간에 벨소리 등이 서서히 가세하여 울리면서 (마치 감상자가 그 영웅문을 걸어 통과하듯) 프롬나드가 처음의 형태로 좀 더 분명하게 울린 다음 (단지 10번 곡뿐만 아니라) 전체 곡을 마무리하는 어마무시하게 장엄한 피날레와 함께 마무리됩니다.
이 마지막 곡 또한 조성진과 임윤찬 두 피아니스트가 정말 듣는 이를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매우 흡인력 있는 연주를 들려줍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조성진의 연주에서는 훗날 쇼팽 콩쿠르 우승이 그저 우연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고, 온 영혼을 갈아넣는 듯 땀으로 뒤범벅되어 마치 피아노를 부서뜨릴 것과 같이 어마무시한 기세로 몰아붙이며 마지막 곡을 끝낸 후 별것 아니라는 듯 무심하게 피아노 의자에서 일어서는 임윤찬의 모습에서는 벌써 거장의 강렬한 아우라가 느껴집니다.
조성진의 과거 실황 연주는 현재 유튜브에 올라와 있지만, 임윤찬의 베르비에 페스티벌 연주는 언제 메디치 TV에서 녹화 영상을 내릴지 모르므로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이번에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 임성우 - 클래식을 변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