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택 가천대 의대 길병원 신경외과 교수가 붕소중성자포획치료기를 활용해 암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가천대 길병원 제공
이기택 가천대 의대 길병원 신경외과 교수가 붕소중성자포획치료기를 활용해 암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가천대 길병원 제공
방사성 물질이 암 세포만 찾아 터뜨리는 ‘꿈의 암 치료기’ 국산화에 청신호가 켜졌다. 가천대 길병원과 다원메닥스가 개발 중인 붕소중성자포획치료기(BNCT)의 초기 임상시험이 성공하면서다. 악성 뇌종양, 두경부암 환자 치료 근거를 쌓아 2026년께 국내 암 환자 치료에 활용하는 게 목표다.

○“악성 뇌종양 치료 시대 연다”

가천대 길병원은 다원메닥스와 함께 ‘A-BNCT’를 개발해 임상 1상에서 안전성을 확인했다고 24일 발표했다. 이런 내용을 최근 폴란드에서 열린 세계 BNCT 학술대회에서 발표했다.

붕소가 중성자와 만나면 핵분열 반응이 일어나 폭발적 에너지를 낸다. BNCT는 이를 활용했다. 환자에게 붕소를 주입해 암만 찾아가도록 한 뒤 인체에 무해할 정도로 적은 양의 중성자를 쏘면 방사선이 배출돼 암 세포를 죽이는 원리다.

국내에선 악성 뇌종양인 교모세포종과 두경부암 환자를 대상으로 효과를 확인하고 있다. 교모세포종 치료에 쓰이는 방사선량이 60그레이(Gy·흡수선량) 정도지만 BNCT는 10그레이 정도로 같은 효과를 낸다. 암 주변부엔 세포 하나 정도 크기만 영향을 줘 정상세포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 여러 번 반복하는 다른 방사선 치료에 비해 BNCT는 한 번만 받으면 된다.

임상시험을 책임지는 이기택 가천대 길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이론적으론 완벽한 방사선 치료”라며 “의료계에선 이보다 더 좋은 방사선 치료는 나올 수 없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선 2020년 상용화

BNCT 치료는 1961년 미국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대형 원자로에서만 원료를 얻을 수 있어 치료 활용은 제한적이었다. 중성자를 만드는 장치가 소형화되면서 치료 전환기를 맞았다. 일본 스미모토가 2020년 두경부암 BNCT ‘뉴큐어’를 허가받은 뒤 방사선 치료 분야 ‘게임 체인저’란 평가를 받았다. 의료계에선 악성 피부암인 흑색종처럼 수술이 힘든 암 등에 활용도가 클 것으로 내다봤다.

길병원이 이끈 국내 임상에서도 교모세포종 재발 환자 6명 중 2명이 일상 생활을 하게 됐다. 39세 환자 A씨는 치료 후 완치까지 기대하고 있다. 교모세포종 환자 완치율(5년 생존율)은 8.9%, 재발 환자 평균 생존기간은 8~9개월 정도다. 일본에선 BNCT 치료 후 생존기간이 18.9개월까지 보고됐다.

다만 암 재발 지표로 알려진 무진행생존기간(PFS)이 0.9개월로 낮은 것은 한계로 꼽힌다. 의료계에선 PFS를 평가하는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 암 재발과 방사선 간접 영향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해 생긴 오류로 파악했다. 스테로이드를 추가 투여하거나 기존 항체치료제(아바스틴)를 함께 투여하면 치료 효과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후속 임상시험은 아바스틴 등을 함께 활용하도록 설계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며 “이런 보완 치료를 함께한 국내 임상에선 PFS가 6개월 정도로 길어졌다”고 했다.

○내년 대만 수출도 도전

기기 상용화는 다원시스 자회사인 다원메닥스가 책임지고 있다. 유무영 다원메닥스 대표는 “정식 임상시험 외에 동정적 치료까지 포함하면 23명 정도 치료 받았는데 대부분 경과가 좋다”고 했다.

정부 입찰도 늘고 있다. 대만에선 보훈병원이 내년 BNCT 두 대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대만의 한 기업과 일본 스미모토, 다원메닥스가 출사표를 던졌다. 유 대표는 “시판 허가에 필요한 세 가지 요소가 BNCT 기기, 붕소 의약품, 방사선량 소프트웨어”라며 “이 중 기기만 내년에 먼저 허가받아 첫 수출에 도전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