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 국내 한 이동통신사가 시도한 전자처방전 서비스가 개인정보보호법과 의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최근 주요 선진국이 연이어 비슷한 시스템을 구축한 가운데 이번 판결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비대면 진료 인프라의 한 축인 전자처방전 도입에 탄력이 붙을지 주목된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11일 대법원 제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개인정보보호법·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된 SK텔레콤과 담당 임직원 5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1·2심 판결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했다.

사건은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SK텔레콤은 2010년 2월부터 병·의원이 환자에게 종이 처방전을 발급할 때 약국으로 같은 내용의 처방전을 전자화해 보내주는 ‘스마트헬스 전자처방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런데 2011년 9월 개인정보보호법이 제정·시행된 이후 2014년 이 서비스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정수 당시 서울중앙지검장(현 중앙N남부 변호사)이 이끌던 개인정보범죄합동수사단은 회사 본사를 압수수색하는 등 강제수사에 들어갔다. 이 서비스로 인해 개인정보 약 53만 건이 무단 유출됐다며 해당 이통사와 임직원을 개인정보보호법·의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법원은 SK텔레콤이 처방전에 기재된 개인정보를 단순히 중계한 것이며, 개인정보보호법에 규정된 ‘처리’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봤다. SK텔레콤이 처방전을 암호화된 상태로 넘겨받았고, 약국도 자체 시스템을 통해 같은 정보를 복호화했다는 점에서 ‘민감 정보’로 볼 수 없다는 논리다. 정보 수신자가 원래 이를 제공받아야 할 약국이라는 점에서 의료법이 정한 정보의 ‘탐지’ ‘누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SK텔레콤 측 주장도 받아들여졌다.

법조계 관계자는 “기업의 개인정보 ‘처리’가 포괄하는 범위를 규정하는 등 개인정보보호법과 관련한 주요 쟁점이 정리돼 의미가 큰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판결이 의료 혁신의 핵심 줄기로 꼽히는 전자처방전 서비스 재도입의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국회 의석 과반을 점한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4월 총선에서 전자처방전 도입을 공약에 포함했고, 여당인 국민의힘 역시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자처방전 서비스는 2019년 영국을 시작으로 호주 독일 등으로 확산됐으며 지난해 일본도 도입하는 등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국내에선 의사단체가 비대면 진료 서비스 전반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는 점이 변수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 역시 신중한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