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후추 무역으로 전성기 구가한 포르투갈…신간 '물의 시대'
유럽의 끄트머리에 있는 포르투갈은 한때 전 세계를 호령했던 적이 있었다.

수백 년간의 항전 끝에 이슬람 세력을 이베리아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내는 데 성공한 포르투갈은 곧 해외로 눈을 돌렸다.

바스쿠 다가마는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했고, 후발주자들도 꿈을 찾아 신세계를 향해 떠났다.

마침내 대항해시대가 열린 것이다.

포르투갈은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손엔 총을 들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약탈하거나 무역 거래를 했다.

그렇게 전 세계에서 빼앗거나 수입한 상품들이 포르투갈의 도시 리스보아(리스본)에는 넘쳐났다.

콩고에서 온 나무껍질 옷감은 중국의 비단과 거의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했다.

인도에서 가져온 후추는 포르투갈 부의 원천이었다.

매년 2천t의 후추로 금화 100만 두카트 이상을 벌어들였다.

노예무역도 성행했다.

인도, 브라질 출신에 더해 나이지리아로부터 1만~2만명의 노예가 포르투갈에 도착했다.

거리 곳곳은 노예로 넘쳐났다.

당시에 포르투갈 도시를 방문한 한 외국인은 '도시 곳곳이 백인만큼 흑인도 많아서 마치 체스판처럼 보인다'고 평하기도 했다.

노예무역은 후추 무역에 이은 포르투갈의 두 번째 수입원이었다.

포르투갈의 젊은이들은 매춘에 탐닉했고, 그들 중 일부는 해외 식민지 개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노예, 후추 무역으로 전성기 구가한 포르투갈…신간 '물의 시대'
최근 출간된 '물의 시대'(까치)는 대항해시대를 맞아 전성기를 구가하던 포르투갈의 모습을 조명한 책이다.

최고의 역사서에 수여하는 헤셀 틸트먼상을 수상한 저자 에드워드 윌슨-리는 포르투갈 왕립 기록물 보관소 소장이었던 다미앙 드 고이스와 당대 포르투갈 국민 시인으로 떠올랐던 루이스 드 카몽이스를 중심으로 16세기 포르투갈의 역동적인 모습과 그 이면에 감춰진 추악한 진실을 추적한다.

다미앙 드 고이스는 호기심이 많고, 낯선 것을 두려워하지 않던 인물이었다.

급진적인 사상도 받아들이고, 다성음악도 작곡했으며 당대의 뛰어난 인문주의자 에라스뮈스 등과도 교류했던 지식인이었다.

반면 카몽이스는 파락호에 가까웠다.

매춘에 탐닉했고, 감옥에도 여러 번 다녀왔다.

그는 동방의 낯선 땅으로 추방돼 부랑자가 됐으나 이런 경험을 토대로 시를 써 주목받았다.

바스쿠 다가마와 그 선원들의 이야기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이아손과 이르고 호 원정대 이야기에 빗댄 그의 시는 포르투갈 국민들의 커다란 사랑을 받았다.

저자는 서로 다른 두 인물인 고이스와 카몽이스의 이야기를 병치하며 포르투갈의 전성기를 그려낸다.

다성음악처럼 역사에 한계를 두지 않았던 고이스의 추락과 획일적인 유럽 중심 사관을 시의 뿌리로 삼은 카몽이스의 상승을 통해 대항해시대의 음과 양을 짚는다.

더불어 새 시대를 맞이한 유럽의 흥분, 다른 나라와의 갈등, 유럽에 번진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 분위기 등도 생생하게 전한다.

김수진 옮김. 392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