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위메프 본사가 '정산 지연 사태'로 환불을 요구하는 고객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뉴스1
서울 강남구 위메프 본사가 '정산 지연 사태'로 환불을 요구하는 고객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 24일 오후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엔 '위메프 티몬의 피해자입니다. 티몬에서 미정산 내역 인증합니다'란 글이 올라왔다. 티몬에서 쌀을 파는 농업회사법인 A사 대표의 아내라고 밝힌 작성자 B씨는 오늘(24일)이 정산 예정일인데 금액이 5억2200만 원이라며 '정산 현황'이라고 표기된 웹사이트 캡처 이미지를 올리고 "(티몬에서) 정산이 안될 것이라고 통보받았다. 정말 참담하다"고 적었다.

이처럼 티몬과 위메프의 판매대금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중소 판매자들이 줄도산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거액의 판매대금을 물린 소상공인이 적지 않아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연쇄 도산이 현실화하면 금융권도 피해가 불가피하다.

2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티몬과 위메프 등 큐텐그룹 계열 전자상거래(이커머스) 플랫폼에 입점한 6만곳 가운데 상당수는 중소 판매자다. 대부분 자금 사정이 열악해 판매대금 정산이 제때 이뤄져야 사업을 이어갈 수 있는 곳들이다. 하지만 티몬·위메프 판매대금 정산이 지연되면서 영세 판매자를 중심으로 심각한 자금난에 봉착했다.

상품 매입 자금이 없어 영업을 중단할 위기에 처한 판매자도 생겨나고 있다. 티몬·위메프의 판매대금 정산 주기는 최대 두 달이다. 이달 정산받지 못한 대금은 5월 판매분이다. 6∼7월 판매대금 정산도 불확실한 터라 중소 판매자의 자금난은 갈수록 악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전체 미정산 금액을 추산하기는 어렵지만 판매자에 따라 이달에만 최소 2000만원에서 많게는 70억원까지 물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특히 디지털·가전이나 여행 등 거래 금액이 큰 카테고리 영세 판매자 자금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보고 있다. 상품 단가가 큰 만큼 여신 거래가 활성화돼 있기 때문이다. 여행업계에선 소형 여행사의 도산 우려가 크다. 업계 한 관계자는 "소형 여행사는 판매대금을 정산받지 못하면 바로 자금난으로 이어진다"고 우려했다.

류화현 위메프 공동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소비자 환불 자금을 충분히 준비해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며 "티몬과 위메프를 합쳐 판매사에 돌려줘야 할 미정산 대금은 큐텐 차원에서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이번 사태로 여행사를 포함한 중소 판매자들이 줄도산하면 그 파장은 금융권에도 미칠 수 있다. 현금 사정이 여의찮은 많은 영세 판매자는 선정산 대출로 당장 필요한 자금을 충당한다. 선정산 대출은 전자상거래(이커머스) 플랫폼 판매자가 은행에서 판매대금을 먼저 지급받고, 정산일에 은행이 해당 플랫폼에서 대금을 받아 자동 상환하는 방식이다.

금융감독원의 '7개 플랫폼 입점업체 정산대금 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9∼2022년 4년간 선정산 대출총액은 1조3000억원을 웃돈다. 연간 대출액은 2019년 252억원에서 2022년 6239억원으로 25배로 불어났다. 플랫폼별로는 쿠팡 입점사의 대출액이 가장 많고 두 번째가 위메프다. 두 업체는 정산 주기가 상품이 판매된 후 최대 두 달 후로 이커머스 플랫폼 중에서 가장 길다.

문제는 이번 사태로 티몬과 위메프의 매출과 거래액이 급감하고 자금 회전력까지 약해져 판매자 정산이 언제 정상화할지 기약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 은행들이 티몬과 위메프의 대출 상환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전날부터 두 플랫폼 판매자에 대한 선정산 대출을 중단해 자금줄은 더 막힌 상황이다. 이미 선정산 대출을 받은 일부 판매자들은 티몬과 위메프의 상환 지연으로 채권 추심 통보를 받기 시작했고, 납품 대금이나 대출 이자를 마련하지 못해 개인회생 또는 파산 신청을 고민하는 판매자도 있다고 한다.

한계에 이른 영세 업자가 줄도산하면 금융권 피해도 현실화할 수 있다. 판매자들은 티몬·위메프의 미정산 사태가 장기화할 것으로 보고 저마다 자구책을 마련하는 중이다. 일부는 회사 측에 내용 증명을 보내 소송 준비에 들어갔고 판매자들이 모여 집단 소송을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