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의 한 고령자 특화 은행. /사진=김영리 기자
서울 시내의 한 고령자 특화 은행. /사진=김영리 기자
"최근 동네에서 자주 이용하던 ATM이 사라졌어요. 동네에서 ATM을 계속 운영해주는 은행으로 주거래 통장을 바꿀까 생각 중입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김모(69) 씨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모바일뱅킹을 할 줄 알아도 매번 불안한 마음이 들긴 한다"며 "가급적 ATM이나 지점을 사용하려 한다. 친구 중에선 모바일뱅킹 방법조차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모바일뱅킹이 보편화되면서 은행 ATM이 전국적으로 빠르게 줄고 있는 가운데, 고령층 등 금융취약계층의 불편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시니어ATM' 등 은행권의 고령자 친화 정책이 나오고 있으나 ATM과 지점 철수 속도에 비해 고령자 관련 정책의 확대는 더디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게 받은 '국내 은행 영업소·ATM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은행권에서 2018년부터 올해 6월까지 6년간 철수한 ATM은 총 1만4426개로 집계됐다. 6년간 매일 6.58대씩 사라진 꼴이다. ATM 철수가 가장 많은 지역은 서울(4468개), 경기(2847개), 부산(1179개) 순이었다.

지점도 줄고 있다. 2018년부터 2024년 6월까지 폐쇄된 은행 지점 수는 1003개다. 국내 은행 지점을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8년 5734개에서 올해 6월 기준 4849개로 15.4% 감소했다. 지점이 가장 많이 폐쇄된 지역 또한 서울시(404개)였다. 다음으로 경기도(176개)와 대구시(70개)가 뒤를 이었다.

ATM과 지점 철수는 남아 있는 오프라인 지점에 고령층이 몰리게끔 한다. 경기도의 아파트 밀집 단지에서 은행원으로 근무하는 김모(29) 씨는 "창구 고객의 최소 60%는 고령자"라며 "고령자 비율이 점점 높아지는 것을 해마다 체감한다. 이른 아침과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고령자 손님"이라고 전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에서 거래하는 50대 이상 고객의 비중은 전체 고객의 44.4% 수준. 이에 업계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건 '고령자 특화 점포'다. 내부에 안락한 휴식 공간을 마련하고, 디지털 기기 사용법을 알려주는 직원을 상주시키거나, 직관적인 화면의 고령자용 ATM을 다수 배치하는 식이다.
서울 시내 한 은행의 고령자 친화 ATM. 일반 버전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사진=김영리 기자
서울 시내 한 은행의 고령자 친화 ATM. 일반 버전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사진=김영리 기자
고령자 사이에서 반응도 좋다. 24일 저녁 8시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한 은행의 고령자 특화 지점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앞에 서 있던 박모(70) 씨는 "여긴 글씨가 커서 좋다"며 "사는 곳과 거리가 좀 있는데 이곳의 ATM이 가장 편하게 돼 있어 여기만 쓴다"고 말했다. 이어 "동네에 ATM 자체도 많이 사라져 달리 갈 곳도 없다"고 말했다.

이날 박 씨가 사용하고 있던 ATM 화면을 보니, 평소 보던 초기 화면과 달리 '돈 찾기'·'돈 넣기'·'돈 보내기'·'통장 정리' 버튼만으로 화면이 구성돼있었다. 직관적인 화면 하단에 '기존 화면으로 돌아가기' 버튼도 있어, 이외의 금융 업무를 보고 싶다면 원래 화면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다만 고령자 특화 점포는 은행권의 빠른 비대면 전환에 비해 더딘 편이다. 예컨대 신한은행은 전국에서 고령자 친화 ATM은 활용할 수 있으나 고령자 중심 영업점은 전국 6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서울 내 3개 지점에 '시니어플러스 영업점'을 개설했다. 아직 고령자 특화 서비스는 '실험적 시도' 정도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은행권이 보다 적극적으로 노인 친화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며 "ATM이나 지점마저 소멸하면 노인들이 금융 시장에서 완전히 소외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남아있는 지점이라도 고령자 특화 중심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