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종사자도 회사로부터 상당한 지휘·감독 등을 받았다면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플랫폼 기업과 ‘프리랜서’ 계약을 맺은 종사자라도 종속적인 관계에서 노무를 제공했다면 계약 형식과 관계없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전자상거래, 배달, 청소 등 다양한 분야의 플랫폼산업이 급성장하는 가운데 법원이 종사자의 근로자성을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다. 플랫폼업계는 “일과 고용자를 이어주는 플랫폼 사업의 특성을 간과한 결정”이라며 향후 줄소송을 우려하고 있다.

○“회사에 근무 시간·장소 구속”

"타다 기사는 근로자"…프리랜서 플랫폼 비상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택시 호출 서비스 타다 운영사였던 VCNC의 모회사 쏘카가 “부당해고 구제 재심 판정을 취소하라”며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25일 확정했다.

중노위 측 보조참가인인 A씨는 2019년 5월 VCNC와 운전기사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다. 같은 해 7월 회사는 70여 명의 인원을 감축하면서 A씨에게도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A씨는 “일방적으로 해고당했다”며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를 신청했다. 지노위는 신청을 각하했지만, 이어진 재심에서 중노위는 “회사의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아 근로자로 볼 수 있다”며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이에 불복한 회사 측은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운전기사의 업무가 이용자 호출에 의해 결정되고, 운전기사에게 배차 수락 결정권이 있었다”며 근로자가 아니라고 봤다. 하지만 2심은 “업무가 타다 서비스 운영자가 정한 틀 내에서 이뤄졌고, 구체적인 지휘·감독이 있었다”며 운전기사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도 타다 운전기사는 근로자가 맞다고 봤다. 상고심 재판부는 “VCNC가 협력 업체에 배포한 교육자료 등과 앱을 통해 안내된 운전 업무 수행 절차, 방법 등은 사실상 복무 규칙으로 기능했다”며 “앱을 통해 드라이버의 근태를 관리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A씨는 VCNC가 정한 근무 시간·장소에 구속됐고, 근로 자체에 대한 대가로 근무 시간에 비례한 보수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플랫폼을 매개로 한 노무 제공 관계에서 근로자인지를 따지는 핵심 기준은 ‘종속성’이라고 판단했다.

○“플랫폼 특수성 간과” 줄소송 우려

플랫폼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당장 쏘카는 A씨 등 70여 명의 부당해고 주장에 대한 배상책임을 수행해야 한다. 플랫폼 사업자의 인건비와 노무 관리 부담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쏘카 측은 “법원이 타다 드라이버 공급업체와 타다 서비스 운영사의 존재와 역할을 부정한 것은 플랫폼 사업이라는 특성을 간과한 것”이라며 유감을 나타냈다.

타다 판결을 계기로 다른 플랫폼에서도 유사 소송이 이어질 경우 한국의 플랫폼 생태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프리랜서 서비스 공급자와 이용자를 연결해주는 플랫폼 중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재검토해야 할 회사가 적지 않아서다. 한 스타트업 창업자는 “플랫폼 사업 모델 자체가 일과 고용자를 이어주는 것인데 이번 판결로 고민해야 할 회사들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얼어붙은 플랫폼 투자가 더욱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벤처캐피털(VC) 관계자는 “이제 어떤 투자자가 법적 리스크가 있는 플랫폼 기업들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려고 하겠냐”며 “플랫폼 생태계에 돈이 돌지 않으면 폐업하는 플랫폼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올 상반기 기준 국내 플랫폼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2년 전 대비 4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민경진/고은이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