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기념전 '스터디'에서 신작 극영화 공개
사라지는 레슬링선수들…에르메스재단 미술상 김희천의 공포영화
고등학교 레슬링부 코치인 '찬종'은 우울증을 앓고 있다.

그는 사흘 앞으로 다가온 대회가 끝나면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심한다.

그러던 중 선수들 몇몇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사라진 선수의 어머니가 찾아오지만, 찬종은 그 선수를 기억하지 못한다.

훈련 녹화 비디오에는 그와 스파링했다는 선수들이 상대 없이 허공에 섀도 레슬링하는 이상한 장면이 찍혀 있을 뿐이다.

지난해 에르메스재단이 선정하는 에르메스재단 미술상을 받은 김희천(35)의 수상기념전 '스터디'가 26일부터 서울 청담동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시작한다.

이제 30대 중반이지만 영국 런던의 헤이워드 갤러리와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 아트선재센터 등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며 주목받는 작가다.

전시에 소개되는 신작 영상 '스터디'는 일종의 공포 영화다.

관객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듯이 어두컴컴한 전시장에서 두 개의 스크린을 통해 사라진 레슬링 선수들의 이야기를 보게 된다.

영화 촬영 기법으로 찍은 영상과 저해상도 홈비디오 영상이 섞여 있는 이야기는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소리와 결합하며 공포 영화의 문법을 따른다.

때로는 화면이 모두 꺼진 채 암흑 속에서 소리만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며 공포를 극대화하기도 한다.

사라지는 레슬링선수들…에르메스재단 미술상 김희천의 공포영화
개막에 앞서 25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왜 공포 영화인가'라는 물음에 "요즘의 공포 영화가 무섭지 않은 이유는 화질이 너무 매끈하고 선명하기 때문"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불가사의한 것을 시각화하는 게 공포영화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기술에 의해 모든 것이 너무 선명하게 드러나고 정확하게 포착된다"며 "기술이 삶의 외곽선을 제안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제한하는 그 상황에서 공포가 발생할 수 있겠느냐. 미지의 것을 발견하는 것을 박탈당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가는 이어 "(자신의 삶에 대해) 공포나 불안 대신에 답답함이나 좌절감, 무기력에 휩싸여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서 공포를 찾아오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작가는 평소 관심 있고 좋아하는 것을 작업 소재로 삼는다.

그런 면에서 실제 자신이 생활체육으로 하는 레슬링을 소재로 삼은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동시에 손을 통해 경험하는 신체에 관한 작업을 해왔던 작가의 관심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소재이기도 했다.

그는 "레슬링은 손과 손이 밀접하게 부딪히고 손을 통해 상대의 신체를 느끼며 내 신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사라지는 레슬링선수들…에르메스재단 미술상 김희천의 공포영화
전시 제목은 작품 제목과 같은 '스터디'다.

미술상을 받고 에르메스재단의 지원으로 프랑스 파리에 갔던 작가는 로댕미술관에서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의 스터디 모델(작품 제작 과정에서 연구하며 만든 모델)을 보고 완성된 작품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작품에 흥미를 느꼈다.

작가는 "나는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너무 완성하려고만 하지 않았나 싶었다"면서 "단순하게 스터디 같은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스터디'의 의미를 설명했다.

작가는 이어 "좋은 공포 영화는 일종의 스터디 모델 같은 면이 있다"면서 "어떤 영화들은 사회 전체의 공포를 포착하기도 하고 어떤 영화는 잔혹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 치중하기도 하는 등 그런 스터디 모델을 가진 것이 공포 영화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극영화 작업은 얼굴 바꾸기(페이스 스와프) 앱이나 가상현실(VR), 게임 엔진 등을 이용했던 이전의 작업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작가는 "내 작업은 어떤 상황에서 그 장면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포착하려는 편이었는데 연출은 포착하기 전에 미리 머릿속에서 포착한 것을 그려내야 하는 것이라 내가 하는 방식과는 완전히 달랐다"면서 "팀을 이뤄 작업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10월6일까지. 무료 관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