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 기억하라"는 이름없는 작가, 코펜하겐서 온 허스크밋나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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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
한국-덴마크 수교 기념전
허스크밋나븐 - 빅 픽쳐
한국-덴마크 수교 기념전
허스크밋나븐 - 빅 픽쳐
후드 모자를 깊게 눌러쓴 채 벽에 그림을 그리는 한 남성. 익명으로 작품활동을 펼치는 이 남자의 '진짜 얼굴'과 본명은 단 한 번도 미디어에 알려진 적 없다. 사람들이 그를 부르는 이름은 허스크밋나븐. 이것 또한 덴마크어로 '내 이름을 기억해 주세요' 라는 뜻을 가진 가명일 뿐이다.
베일에 싸인 작가 허스크밋나븐이 서울을 찾았다.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는 그개인전 '허스크밋나븐 - 빅 픽쳐'를 위해서다. 회화부터 3D 드로잉, 영상 등 그가 지금까지 작업해온 158여 점의 작품이 나왔다. 그는 코펜하겐을 중심으로 활동을 펼치는 덴마크 작가다. 도시 곳곳 그래피티를 그리며 예술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러다 점차 벽화, 회화, 3D 드로잉, 영상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 왔다. 대중에게 얼굴과 이름을 철저히 숨기는 것도 그래피티 작가 시절 숨어다니며 작업을 했던 과거의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 서울 전시 오프닝에도 "자신의 얼굴을 촬영하는 건 삼가해달라"는 당부를 몇 번이고 거듭했다.
그는 전시 2주 전인 지난 13일 허스크밋나븐은 스프레이와 페인트를 들고 사비나미술관을 찾았다. 벽에 그래피티를 연상케 하는 작품을 흩뿌리거나, 초대형 회화를 그려 넣었다. 미술관에 놓여 있는 오브제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관람객들이 앉을 수 있는 소파나 작품을 올려놓는 좌대 등 모든 것이 캔버스가 됐다. 그 위에 페인트로 그림을 그리고, 벽화 앞에 배치하며 미술관의 모든 요소를 회화 안에 녹여냈다. 전시장에 입구의 붉은 색 벽화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가장 큰 규모의 작품이다. 허스크밋나븐은 미술관 벽에 일반 연필로 밑그림을 그린 뒤 그 위에 색을 입힌다. 프로젝터 등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모든 작업을 눈과 손, 그리고 감각으로만 이뤄냈다.
이번 전시에 나온 벽화 작품들 중 단연 돋보이는 건 '프레임 아트'다. 벽화와 일반 회화가 만나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 회화를 감싼 액자까지 모두 작품의 일부가 됐다. 모나리자가 떠오르는 흑백 액자 작업과 벽화를 함께 배치해 마치 벽 속 인물들이 모나리자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작업도 소개됐다. 그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변주에 집중했다. 모두 비슷한 작품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디. 벽화 하나는 한 가지 색으로만 그리고, 또 다른 벽화엔 다양한 색을 쓰고, 어떤 그림은 흑백이다. 작품마다 리듬이 모두 다르다. 관객으로 하여금 한 곳에 서서 조용히 관람할 수 없게 의도했다. 한쪽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그대로 재현한 공간도 마련했다.
같은 그래피티와 벽화 작품이라 하더라도, 그는 글씨 대신 사람, 동물 등의 캐릭터를 주로 그리고 있다. 캐릭터 작업을 주로 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남녀노소, 국적에 상관없이 캐릭터는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알아들을 수 있다"며 "언어의 벽 없이 어디에 있든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것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양한 색감으로 캐릭터를 그려낸 그의 작품이지만, 그 의미는 가볍지 않다. 일상 속의 장면을 포착해 그림으로 옮기며 그 속 즐거움뿐만 아니라 아동 권리, 전쟁, 질병 등 사회 문제에 대한 풍자 메시지를 전한다. 그의 작업 과정엔 계획이 없다. 마치 알파벳을 조합하듯 눈, 코, 입을 하나씩 그린 후 합친다. 그 속에서 모든 캐릭터는 즉흥적으로 창조된다. 미술관에 이번 전시를 위해 그린 벽화도 모두 이러한 방식으로 그려졌다. 그는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으면서도 전시 구상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고 오지 않았다고 한다. 오직 스케치만 갖고 한국을 찾았다.
그 스케치를 미술관에 들여와 공간에 맞게 배치했다. 이미 이 미술관에 있는 집기를 활용해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그에게 색다른 도전이자 즐거움이 됐다. 모두 계획되지 않은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허스크밋나븐은 "벽화나 오브제 작품은 전시 끝나고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오직 지금, 이 곳에서만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 전시는 오직 이곳 사비나미술관만에서만 볼 수 있는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전시가 끝나면 벽화가 모두 사라지기 때문에 이 기간에만 그의 벽화를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현장성, 즉흥성이 두드러지는 전시다. 허스크밋나븐은 자신의 작품이 단 한 번의 전시 이후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상실감은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그에게 세상 모든 존재란 곧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덮어씌워지고 사라지는 것이 당연한 그래피티 작가로서의 경험이 만든 신념이다. 그에겐 자신의 작품 위에 다시 페인트가 덮히는 것이 꽃이 지고 비가 땅에 스며들드는 것과 같은 이치로 여겨진다.
이번 전시는 한국과 덴마크의 수교 65주년을 기념해 이뤄졌다. 지금까지 한국 미술계에서 잘 소개되지 않았던 덴마크 작가를 소개하는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덴마크 정부도 전시 마련에 적극적이었다. 이번 전시에 필요한 예산의 80%를 지원했을 정도다. 전시는 10월 27일까지다.
최지희 기자
베일에 싸인 작가 허스크밋나븐이 서울을 찾았다.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는 그개인전 '허스크밋나븐 - 빅 픽쳐'를 위해서다. 회화부터 3D 드로잉, 영상 등 그가 지금까지 작업해온 158여 점의 작품이 나왔다. 그는 코펜하겐을 중심으로 활동을 펼치는 덴마크 작가다. 도시 곳곳 그래피티를 그리며 예술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러다 점차 벽화, 회화, 3D 드로잉, 영상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 왔다. 대중에게 얼굴과 이름을 철저히 숨기는 것도 그래피티 작가 시절 숨어다니며 작업을 했던 과거의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 서울 전시 오프닝에도 "자신의 얼굴을 촬영하는 건 삼가해달라"는 당부를 몇 번이고 거듭했다.
그는 전시 2주 전인 지난 13일 허스크밋나븐은 스프레이와 페인트를 들고 사비나미술관을 찾았다. 벽에 그래피티를 연상케 하는 작품을 흩뿌리거나, 초대형 회화를 그려 넣었다. 미술관에 놓여 있는 오브제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관람객들이 앉을 수 있는 소파나 작품을 올려놓는 좌대 등 모든 것이 캔버스가 됐다. 그 위에 페인트로 그림을 그리고, 벽화 앞에 배치하며 미술관의 모든 요소를 회화 안에 녹여냈다. 전시장에 입구의 붉은 색 벽화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가장 큰 규모의 작품이다. 허스크밋나븐은 미술관 벽에 일반 연필로 밑그림을 그린 뒤 그 위에 색을 입힌다. 프로젝터 등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모든 작업을 눈과 손, 그리고 감각으로만 이뤄냈다.
이번 전시에 나온 벽화 작품들 중 단연 돋보이는 건 '프레임 아트'다. 벽화와 일반 회화가 만나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 회화를 감싼 액자까지 모두 작품의 일부가 됐다. 모나리자가 떠오르는 흑백 액자 작업과 벽화를 함께 배치해 마치 벽 속 인물들이 모나리자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작업도 소개됐다. 그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변주에 집중했다. 모두 비슷한 작품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디. 벽화 하나는 한 가지 색으로만 그리고, 또 다른 벽화엔 다양한 색을 쓰고, 어떤 그림은 흑백이다. 작품마다 리듬이 모두 다르다. 관객으로 하여금 한 곳에 서서 조용히 관람할 수 없게 의도했다. 한쪽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그대로 재현한 공간도 마련했다.
같은 그래피티와 벽화 작품이라 하더라도, 그는 글씨 대신 사람, 동물 등의 캐릭터를 주로 그리고 있다. 캐릭터 작업을 주로 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남녀노소, 국적에 상관없이 캐릭터는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알아들을 수 있다"며 "언어의 벽 없이 어디에 있든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것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양한 색감으로 캐릭터를 그려낸 그의 작품이지만, 그 의미는 가볍지 않다. 일상 속의 장면을 포착해 그림으로 옮기며 그 속 즐거움뿐만 아니라 아동 권리, 전쟁, 질병 등 사회 문제에 대한 풍자 메시지를 전한다. 그의 작업 과정엔 계획이 없다. 마치 알파벳을 조합하듯 눈, 코, 입을 하나씩 그린 후 합친다. 그 속에서 모든 캐릭터는 즉흥적으로 창조된다. 미술관에 이번 전시를 위해 그린 벽화도 모두 이러한 방식으로 그려졌다. 그는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으면서도 전시 구상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고 오지 않았다고 한다. 오직 스케치만 갖고 한국을 찾았다.
그 스케치를 미술관에 들여와 공간에 맞게 배치했다. 이미 이 미술관에 있는 집기를 활용해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그에게 색다른 도전이자 즐거움이 됐다. 모두 계획되지 않은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허스크밋나븐은 "벽화나 오브제 작품은 전시 끝나고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오직 지금, 이 곳에서만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 전시는 오직 이곳 사비나미술관만에서만 볼 수 있는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전시가 끝나면 벽화가 모두 사라지기 때문에 이 기간에만 그의 벽화를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현장성, 즉흥성이 두드러지는 전시다. 허스크밋나븐은 자신의 작품이 단 한 번의 전시 이후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상실감은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그에게 세상 모든 존재란 곧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덮어씌워지고 사라지는 것이 당연한 그래피티 작가로서의 경험이 만든 신념이다. 그에겐 자신의 작품 위에 다시 페인트가 덮히는 것이 꽃이 지고 비가 땅에 스며들드는 것과 같은 이치로 여겨진다.
이번 전시는 한국과 덴마크의 수교 65주년을 기념해 이뤄졌다. 지금까지 한국 미술계에서 잘 소개되지 않았던 덴마크 작가를 소개하는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덴마크 정부도 전시 마련에 적극적이었다. 이번 전시에 필요한 예산의 80%를 지원했을 정도다. 전시는 10월 27일까지다.
최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