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세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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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생계를 등지고 온 건데…언제 끝날지 모를 대치 상황에 속만 타들어갑니다."

26일 오전 9시30분께 서울 강남구 신사동 티몬 사옥 앞. 전날 감감무소식이던 티몬이 문을 열고 구매 대금 환불에 나서자 대기 번호가 순식간에 1900번대로 불어났다. 정산 지연 사태 이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아 원성을 샀던 티몬이 소비자들 점거에 이날 새벽부터 환불을 시작했다.

현장 환불 접수 소식을 들은 피해자들은 새벽부터 몰려들었고 이날 오전 티몬 사옥 앞에는 수백 명이 줄을 섰다. 순식간에 인파가 몰리자 경찰은 폴리스라인을 치고 도로 위 차량 통행을 통제하는 등 안전사고 예방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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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완 티몬 운영사업본부장은 이날 오전 0시40분께 소비자 수백 명이 점거 중인 티몬 신사옥 지하 1층을 찾아 "위메프 대응보다 많이 지연된 점 정말 죄송하다"고 했다. 그는 "자금 사정이 여의찮아서 모든 걸 한 번에 해결해드리기는 힘들 것 같고 순차적으로 해결할 것"이라며 "성수기이기도 하고 많은 분이 피해를 볼 수 있는 부분이니 일단 여행 상품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단 부분만 알아달라"고 부연했다.

전날 아침부터 티몬 본사 앞에 모여든 소비자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순번표에 따라 접수를 시작했다. 권 본부장은 당초 티몬 홈페이지를 통해 환불 접수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현장에 모인 수백명의 피해자들이 "어떻게 믿고 집에 가느냐", "당장 환불해달라"고 거세게 항의하자 오전 2시께부터 티몬 관계자들이 현장 환불 접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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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께 현장 직원 4명가량은 지하 1층 사무실에서 이름과 전화번호, 주문번호 등을 받아 환불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이날 오전 9시께 환불 방법을 수기로 접수하다 QR코드로 바꾼다며 혼선을 빚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오전 10시 기준 전날 오후 3시께부터 본사 앞에서 대기하던 400여명이 환불 피해 접수를 완료했다. 현재 약 150여명이 환불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으나 티몬 측이 정확한 집계 인원을 밝히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은 이날 새벽 환불 소식을 듣고 택시를 타고 속속 티몬 신사옥 앞에 도착했다. 밤을 꼴딱 새운 이들은 지하 1층 사무실 책상에 엎드리거나 바닥에 앉아 눈을 붙이기도 했다. 기존 사원들이 일하던 사무실 자리는 직원들이 재택근무로 전환한 탓에 텅 비어있어 피해자들이 점령한 상황이었다. 사옥 내부 전자레인지와 종이컵 등 탕비 용품이 흐트러져 있었고 돗자리를 깔고 휴식을 취하는 이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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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왔다는 30대 박모 씨는 "티몬에서 상품권을 구매해 270만원이 물렸다"며 "새벽 3시에 왔는데 대기 번호가 1000번대"라고 말했다. 연차를 내고 방문했다는 40대 직장인 서모 씨는 "제주도 여행상품으로 쓴 40만원을 돌려받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전날 티몬 본사 사무실에서는 이번 사태의 피해 규모를 대략 짐작게 하는 직원 메모가 발견돼 주목받기도 했다. 메모에는 "5000억∼7000원(티몬)+예상 1조원 이상"이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에 따르면 티몬의 모회사인 큐텐과 위시, 위메프 등의 계열사까지 합하면 1조원을 넘길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티몬과 달리 전날 대표가 직접 나와 현장 환불을 진행한 위메프는 이날 오전 8시 기준 약 2000여명이 환불받았다. 전날 오후 9시까지 1400여명이 환불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으며 밤새 수백명이 추가로 돈을 받아 갔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